한국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성인의 평균적 하루는 대략 이렇다. 수면, 식사 등 생리 현상을 위한 생활시간이 11시간, 일 관련 시간 8시간, 가사시간 2시간, 자유시간 3시간. 한 사람의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은 자유시간의 양과 질에 좌우된다. 이러한 자유시간의 확보 여부는 생존을 위해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생활시간을 빼면, 24시간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점유한 일 관련 시간에 따라 결정된다. 이 시간을 줄이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나는데도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라이프스타일이 바로 ‘과로’다.
— 강민정, 「과로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간밤에 꾼 꿈에서 나는 지대 높은 곳에 지어진 어느 아파트 거주민이었다. 조용히 집에서 쉬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누우려는데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그 문을 곧장 닫으려고 나갔는데 산 중턱에 놓인 철조망 틈으로 또 열린 문 하나가 보였다. 가파른 언덕바지. 그 근처에서 동네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혹여나 아이들이 그 열린 문 바깥으로 나서다 다치는 일이 생길까 싶어 황급히 내려갔다. 아이들에게 올라와서 놀라고 손짓하며 달려가는 도중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무릎 위로 차오르던 빗물에 겁을 먹고 숨이 가쁘게 뛰어 오르던 와중에 깨어났다.
계속되는 새벽 퇴근에 퇴사각을 재다가 바빠서 잊고 잠들기를 반복했던 최근. 과로로 인해 모든 사고 회로가 마비되었다. 그나마 기력이 남아 있을 때 샛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기저기 이력서를 뿌려 보려 했지만, 잡플래닛에 들어가 근무자들의 후기를 보면 다 거기서 거기였다. 이런 이유로 이직을 할 때는 내가 무엇을 그나마 참을 수 있고 도무지 참을 수 없는지 잘 파악해야 뒤탈이 없는데 생각할 수 없었다.
모든 일들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야 한다는 조건하에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과로의 주원인이었다. 지금 다니는 곳을 1년 이상 다니면 어떻게 될까.
1월 2주 차 금요일 오후. 클라이언트로부터 현재 진행 중인 일들로 바쁜 건 알지만, 월요일까지 병렬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 기획안을 조금 더 뎁스 있게 만들어 달라는 말을 들었다. 뭐? 뎁? 스? 있? 게?
그냥 깊이 있게 만들어 달라고 하면 될 것을. 시안을 보내면 피드백에 가끔 이런 말이 따라온다. 데! 꼬! 보! 꼬! 있! 게! 부탁드려요. ‘있어빌리티’의 세계에선 이런 말들이 줄줄이 딸려 오는구나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그치만 이 또한 내가 선택한 나의 길 아닌가.
회사 대표가 연말연시 종무식과 시무식에서 직원들에게 당부한 것은 두 가지였다. 누가 봐도 멋진 거 만들어야 한다. 이 회사를 구성하는 개개인으로서도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회사는 뭘 지원할 건지, 야근 없이도 집중도 있게 그 일들을 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어떤 비전이 생기는 건지 먼저 고민해 줄 의향은 없어 보였다.
입사 후 3개월 수습 기간이 끝나고 연간 대행 프로젝트 하나를 도맡게 되었다. 부서장과 임원직에 있는 분들이 내가 담당하게 된 프로젝트의 업무 프로세스를 함께 개선해보자고 제안했다.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템플릿화된 문서 양식이나 회의 보고 양식, 디테일한 과정이 현재 회사의 맵시와 따로 노는 듯한 기분이 든다는 게 이유였다. 똑똑하게 일할 방법을 고민하자는 제안이었으나 일순간 변화를 꿰하기엔 현실이 너무 과중했다.
여기 내부를 거쳐 저기 내부를 거쳐 무언가가 통과되는 과정은 하루하루를 더욱 납작하게 만들었다. 이 결과물. 아니. 여기 방식에 맞춰 말하면. 이 크리에이티브. 그거 내가 만들었냐고 누가 묻는다면 쉬이 대답하기 어려울 만큼. 자기 주도 업무가 가능한가 혼란스러웠다.
이번달 하루 최장 근무시간은 16시간이었다. 요즘 유행한다는 ‘조용한 사직’을 할 생각도 없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는 구조라는 걸 체감한다. 지난 연말부터 나는 과로를 돌파하는 마음으로 틈틈이 인수인계서 만들기 시작했다. 언젠가 하게 될 퇴사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어느 정도 일하고 어느 정도 받아야 삶이 허덕이지 않을까. 계속 다니든 그만두든 자유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남들 다 버티는 일을 내가 못 버티는 것이라 해도 상관없다. 이건 나의 일이고, 그에 대한 무게는 그 일을 하고 있는 나만 느낄 수 있으니까. 그 느낌을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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