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 한복판에 얼룩말이 나타났습니다. 얼룩말의 이름은 세로. 세상에 태어난 지 삼 년 남짓이라는 얼룩말이 동물원을 탈출해 세 시간 반 정도 도심을 누비다가 주택 골목에서 생포되었습니다. 마취에서 깨어나 다시 동물원에서 세로는 어떤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요. 기대와는 다른 너무 많은 것들과 마주한 한바탕 꿈 뒤에 초원을 향한 마음이 더욱 간절해졌을까요.
저에게 초원은 추상적인 말들이 뛰노는 곳입니다. 그것은 심상이라는 바탕과 은유라는 붓질 없이 탄생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초원을 시로써 내미는 일은 흥미롭습니다. 사랑, 우주, 인생과 같은 추상적인 말들을 세계관을 지탱하는 기둥으로 세워 두고 다소 미련스럽게 이것저것을 올려보다가 덜어내는 시도도 무용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 이런저런 도움을 주었습니다.
구독자 님이 진심 어린 눈길로 지켜볼 수 있는 추상적인 말은 어떤 것일까요. 얼마 전에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가 요즘 들어 사랑을 언급하는 시가 너무 많다는 토로를 했습니다. 사랑 노래처럼 사랑 시가 많은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죠. 그럼에도 저에게는 특징적인 현상으로 와닿았어요. 그것은 저 또한 그 말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반증이겠죠. 아닌 척했지만 그런 말은 너무 크고 부담스러워 함부로 다룰 수 없다 이야기하면서 중요한 걸 놓쳤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그 말에 주목하고 썼는지 신경쓸 시간에 그냥 제 식대로 그 말을 마음에 풀어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요.
한동안 함축하는 일에 익숙해지다보니 외연 또한 확장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다가 제 안에 놓인 말들이 눈치를 보며 뛰놀지 못하는 현실에 처하다 보니 다시금 초원을 향한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저는 올해 함부로 사살하지도 생포하지도 못하는 사랑의 움직임을 따라가다가 시 한 편을 쓰는 게 꿈입니다. 다작을 하는 것도 목표로 세웠지만, 그 한 편을 쓰게 된다면 언젠가 첫 시집을 계약할 때 강박을 떨치고 쓴 시들을 한데 엮을 수 있을 것 같기에. 그때까지 구독자 님이 주목하는 추상적인 말들에 다양한 경험을 축적하면서 이 레터와 세상에 나온 몇 권의 시집을 찾아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더 여력이 되는 분들은 아래 추신의 내용을 살펴봐주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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