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시 쓰고 생활하는 만물박사 김민지입니다. 2022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구독자님은 2주 가량 남은 올해를 어떤 마음으로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오늘은 저와 잠깐 몇 가지 마음의 방점을 찍는 시간을 보내시면 어떨까 해서 메일을 보냅니다.
저는 일평생 계획을 못 지키고 살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계획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알고 보니 어설픈 작정에 불과하더라고요. 그래도 어떠한 결정을 할 무렵 충분한 에너지가 있으면 그것들이 가시화되긴 했습니다. 이 메일링 서비스도 그런 때에 시작하게 됐고, 어쨌거나 어설프게나마 작정함으로써 생각보다 괜찮은 한 해를 보낼 수 있었어요.
하지만 반성할 부분은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느 순간 체력이 떨어지고, 새로운 직장에 적응한다는 이유로 여러분께 보내는 메시지에 활력과 위트를 포함하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어느 밤엔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감돌다가도 눈을 뜨면 그냥 모든 게 싫어지기도 하고, 뭐 하나 잘될 것 같다는 낙관을 쉽게 하지 않으려고, 실망하지 않으려고, 주변에 크고 작은 감사한 일들에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던 최근이었습니다.
잘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을 이제는 하는 수 없다 하는 도움닫기로 쓰려고 합니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몸과 마음을 잔뜩 굳게 하기보다는 다치지 않기 위해 준비운동에 힘쓰는 새해를 보내려고요. 시시해 보이긴 해도 준비운동을 무시했다가는 큰코다치니까요.
“결핍으로 성장하는 거 이제 좀 지겨워지네.“
어느 날 침대에 누워 무의식적으로 위와 같은 혼잣말을 내뱉게 되었어요. 10대와 20대, 30대 초반까지 저는 줄곧 성취에 집착했던 것 같아요. 그게 사회가 잡아놓은 틀에 맞거나 주변 사람들의 기준에 맞춘 건 아니었어도 좋아하는 일을 할 때도 이상하게 열등감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어요.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 하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자존심도 세서 주변 사람들에게 방법을 묻기보단 혼자 더 알아보고, 초조해하며 필요 이상의 겸손을 두르고 다녔습니다.
흐느적대는 마음 자락에 두 발이 엉켜 넘어지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다음과 같은 기획을 준비했어요. 구독자 분들이 무엇을 좋아할진 모르지만 일단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드리고 싶어서 준비한 내용입니다.
🍚 본격 밥상머리 활극 <가까이 가까스로>
야근 범벅인 일상에 야식 뿌리기를 멈추고 한 주에 적어도 세 번은 점심 도시락을 싸서 출근을 하려고 합니다. 매일 아침가까이 가까스로 챙겨 나온 도시락. 칸칸이 놓인 음식들. 그날그날 직접 섭취한 건강한 식재료 정보를 소개하고 지난 제인생을 뒤흔든 폭식증의 실체를 밝혀내는 짤막한 푸드 서스펜스물입니다.
🐛 한 번이 두 번이 될까 <원데이 클래스>
전문 학위를 따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다양한 전문가들을 만나 하루 교육을 받고 그 다음을 엄두 내지 못할 만큼 모든 일에 경외감을 느끼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열중해서 하는 일을 두고 나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겠다 말만 하는 한심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이것저것 직접 배워보는 하루를 보내려고 합니다. 그날의 소회를 바탕으로 저에게 가르침을 주신 다양한 전문가 분들을 인터뷰할 예정입니다.
🤸🏻 기초 대사량 높이는 <스피닝 데이>
그동안 각종 운동 센터 방문을 멈추고 헌납한 돈이 얼마인가. 그런 계산은 관두고 바닥을 치는 기초 대사량을 높여줄 운동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스피닝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3개월만 제자리에 서서 페달을 밟아 보려고 합니다. 그 사이 얼마나 많은 아이돌 노래를 절로 외울 수 있을지도 기대가 됩니다. 스피닝 도중에 듣게 된 아이돌 명곡을 선별하고 뮤비 또는 가사를 해석한 내용을 버무린 힘겹고 즐거운 운동일지입니다.
🤷🏻♀️ 본업과 생업의 간극 <시인이고요, 에이전시인입니다>
올해 몇 회 쓰고 나서 알았습니다. 이 생업 생각보다 생각 없이 일만 해서는 멘탈이 남아나질 않겠다. 본업과 생업의 간극에 안타까움만 느끼기보단 그 간극을 직접 글로 메우는 것도 좋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씁니다. 에이전시에서 제가 도맡게 될 다양한 업무들. 그 업무를 해내며 느낀 것들. 그게 저와 비슷한 꿈과 현실의 갭이 큰 일상을 살아가는 분들에게 양질의 애수가 될 수 있도록 웃픈 에세이를 쓰겠습니다.
📚 만물박사 김민지의 <시작을 위한 노트>
본업에 매진하는 만물박사의 시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요. 두고 보겠다 지켜보셔도 됩니다. 시에 대한 마음은 언제나 진심이니까요. 그 진심을 일렁이는 번잡한 생활 속에서 시작을 위한 노트를 펼칩니다. 시를 생각하는 시간, 시가 뭔지도 모르고 시를 쓰는 시간, 시를 떠나 시를 그리워하는 시간. 그 모든 시간들을 구간으로 잡고 원을 그려 보려고 합니다. 이 노트를 덮을 즈음엔 꼭 첫 시집이 나올 수 있도록 원고 청탁과 계약의 등불을 서서히 밝혀보겠습니다.
● 만물박사 김민지의 뉴스레터는 구독자 여러분의 긴장성 두통, 과민성 방광 및 대장 증후군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좋은 텍스트로 보답하겠습니다.
댓글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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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
아직 저는 내년의 계획을 세우지 않았는데, 만물박사님의 글을 읽고 나니 저에게 숨어 있던 새해 열정이 조금씩 나오는 것 같아요. 2023 다이어리가 얼떨결에 생겨서 내년엔 어떻게 채우게 될까 기대됩니다. 저도 어설픈 작정 참 좋아하는데요, 이번에도 작정을 좀 해보면 좋겠습니다. 박사님의 작정은 제 기준에선 꽤나 거대하게 느껴지지만, 내년의 편지로 소식 챙겨볼게요! 박사님과 친구들이 건강하길 바라요. 매번 좋은 글 감사해요!
만물박사 김민지 (424)
배롱 님 안녕하세요. 달아주신 댓글에 저도 기운이 배로 나네요. 어떤 모양의 다이어리인지 궁금해요. 그 안에 채우실 기록에도 응원의 마음 보탭니다. 저도 이번 레터를 보내고 제가 다 지킬 수 있을까 살짝 걱정은 됐지만 지켜볼 테니 다른 한 쪽에서 지켜봐주셔요. 올 한 해 고생 많으셨고, 남은 연말 따뜻하게 마무리하셔요. 무엇보다 새해 복 듬뿍 받으셔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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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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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424)
오월님, 올해 많은 날들이 몸과 마음을 통과했네요. “꿈은 이루어진다“던 20여 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문구에서 여전한 투지가 느껴져서 좋더라고요. 일부러 마지막날에 답글을 달면 좋을 것 같아서 기다렸다가 달아 둡니다. 고생 많이하신 만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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