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이 너무 추워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작은 회의실에 모여 점심밥을 먹었다. 평소 식사를 함께했던 같은 팀 두 분과 처음 이야기를 나눈 다른 팀 한 분이 모여 계셨다. 그 어떤 합의도 없었지만 공통 메뉴처럼 샐러드가 모든 사람 앞에 놓여 있어 신기했다.
처음 식사를 하게 된 A님은 일본에서 오신 분이셨는데 한국에서 다니는 첫 회사인 듯했다. 한국어가 서툴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마저 차분하게 하셔서 기분 좋은 의아함이 맴돌았다. 서툴다는 말씀 이후 대화의 적정 속도를 찾은 우리 넷은 오늘 이렇게 애써 건강한 식단의 끄나풀을 잡고자 샐러드를 챙겨온 까닭을 이야기했다.
전날 야근으로 야식을 먹어서. 야근은 없었지만 집에서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고 야식을 먹어서. 일하면서 대부분 계속 건강에 안 좋은 음식만 먹었는지 잔뜩 부은 것처럼 살이 찌고 트러블이 올라와서. 비슷한 고민을 나누면서 샐러드를 한 입 두 입 먹었다. 그때 맞은편에 놓여 있는 흰색 텀블러에 명조체로 쓰인 반듯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의 하루는 소중합니다”
텀블러의 주인은 A님이었다. 경기권에서 출퇴근하면서 이사를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가면서 어느 동네가 좋을지 추천을 해드렸다. 집값이 비싸지 않으면 한강 근처로 가고 싶다는 마음은 비슷했으나 집값을 고려한 추천들이 이어졌다. 물망에 오른 동네들은 대부분 산책하기 좋은 하천이나 공원이 있는 곳들이었다. 평소에 야근이 많으니 치안이 좋은 곳으로 정하셨으면 좋겠다는 당부들도 이어졌다.
추위를 피해 생생한 채소들을 한가득 먹으면서 빠르게 흘러가지만 계속해서 쳐지고 있는 듯한 일상을 새로고침할 방법을 고민하던 시간. 연말은 연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자리를 치운 뒤 함께 식사를 마친 분들과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B님이 기분 좋은 몸동작과 함께 목소리를 살짝 높이시던 와중에 모르는 회사 사람들이 올라타자 일순간 조용해졌다. 같은 층에서 내린 뒤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앉을 때 여느 때보다 긴 호흡으로 햇볕이 사무실 책상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오늘은 누구에게도 업무적으로 시달리지 않은 하루였다. 눈치를 보다 조용하고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로비에서 A님과 마주쳤다.
“고생하셨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A님이 웃으며 건네주신 인사. B님이 챙겨준 붕어빵 하나가 담긴 종이봉투를 챙겨 나온 수요일. 내일만 출근하면 금요일은 쉴 수 있다. 입사 이후 처음 사용하는 연차에 가장 하고 싶은 첫 번째 일은 밀린 글쓰기, 두 번째는 산책, 세 번째는 건강에 좋은 음식 먹기다.
새해에도 오늘처럼 어느 정도 마음의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하루 한 번의 마주침이 있다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염없거나 하릴없는 와중에도 서툴다고는 하지만 차분하게 삶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오늘 나눈 짧은 대화나 인사가 준 여운이 그러하듯. 막간을 타고 오는 깨달음에 의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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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 🍀
만물박사 김민지
W님 따뜻한 밤 보내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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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
만물박사 김민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안전한 하루 보내셔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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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객:선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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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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