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님에게 시는 무엇인가요. 어떠한 고백 전에 운을 떼듯이. 노래를 부르기 전 첫 음을 잡듯이. 시를 읽거나 쓰기 전에도 내면에 디디고 일어설 '뭔가'가 있으면 좋더라고요.
저는 한동안 '뭔가'라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어떤 말을 망설이거나 어떤 감정과 일들을 떠올릴 때 '뭔가'라는 말을 습관처럼 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가 관념어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상념지 /뭔가/라는 독립출판물을 쓰고 엮었습니다. 관념어를 주제로 다루는 동안 그 속에 다양한 결들이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같은 말이어도 사람마다 그 말을 쓰는 상황이나 그 말을 듣고 떠올리는 의미나 느낌이 비슷한 듯 다르다는 사실이 좋아서 비정기적으로 여섯 권을 연이어 냈는데요. 그 말들의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시를 지을 때면 마치 여러 사람이 모여 손을 포갤 때의 느낌이 들어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또 어떤 시는 내면에 놓인 징검다리 같더라고요. 저는 평소 겁이 많아 대체로 많은 것들을 경계하는 편인데요. 내면에 놓인 생각과 감정들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이것들이 불쑥 떠내려가진 않을지 갈라지거나 부서지진 않을지 망설이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키보드를 두드리기 직전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해요.
하지만 막상 쓰기 시작하면 초고를 완성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때가 많아서 신기했습니다. 아무리 이상한 말을 쓰고 있어도 쓰는 순간에 스스로 지나친 경계를 풀면 오히려 퇴고를 거듭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도 배우게 됐어요. 올해는 다소 더디라도 막힘없이 시에 몰입하는 순간을 경험해보면 어떨까요.
시가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 재미없다고 생각하시는 분. 괜찮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도움이 될 거예요. 기댈 곳이 없거나 숨긴다고 숨겨도 계속해서 불거지는 마음 안에 뭔가를 나의 작은 손처럼 꺼내서 시 안에 포갤 때. 이제껏 없던 든든함을 느낄 수 있도록 1년 동안 24장의 레터를 띄워 드릴게요.
이 작은 또 다른 '뭔가'의 이름은 이 연재명과 동일한 <시작을 위한 노트>였는데요. 2021년 10월 책보부상에 들고 나온 수작업물입니다. 그 해 문예지에 발표한 시들의 제목을 보여 드리고 한 편을 골라주시면 빈 종이에 시작 메모와 함께 적어 동봉해 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올해도 부지런히 시작해야겠죠?
댓글 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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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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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424)
졍님,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늦었지만 아직 설 이전이니 새해 인사 유효하겠죠. 다음 레터도 차근차근 써서 보내겠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두터운 감사의 마음을 담아 댓글 달아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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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ry han
너무 좋았어용! ><
만물박사 김민지 (424)
저 역시 이 댓글 보고 너무너무 기분이 좋아졌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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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半)예술대학 고양이는무엇일과 인생삽질전공 김다연
잘 모르는 만큼 일상에서 환기가 되는 것이 시인 것 같아요. 잘 모르니까 특별한 시! 시각 예술의 조형 요소에 압축적으로 들어가 있는 내용들이 텍스트에는 좀 다르게 배열된 느낌.. 인데 난 잘 모르니까 에잇-하며 그냥 읽어버리는. 그리고 거꾸로 읽어도, 건너 뛰면서 읽어도, 맘에 안들면 3일 쯤 뒤에 다시 봐도 되고, 시각 작품보다 쉽게 꺼내 볼 수 있는 점도 좋고.. 좀 더 길어서(?) 볼게 많은 것도 좋고.. 시각적으로 연상이 잘 되는 시는 좀 더 눈여겨 보고.. 시작은 '그럴듯하게' 쓰려고 할 수록 망한 기억이 있네요 마침 요즘 여유도 생겼겠다 내면에 '뭔가'를 채우려고 민지님 글 찾아왔어요. 내일 시선집 빌릴 건데 미리 시 알려주실 수 있나염...?
만물박사 김민지 (424)
시선집을 빌리신다니...! 이 실행력 무엇인가요... 시 안에 ‘뭔가’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시입니다. 스스로 읽다가 발견하는 재미 남겨 두어요. 요즘 여유도 생겼겠다 그런데 시를 읽는다는 말씀에 안 반할 수가 없습니다 다연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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