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리스 노템전에서 긴 막대기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 같아. 최선을 다하긴 하는데 묵은 체증이 차올라 곧 질 것 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지. 보통 야무지게 산다 싶은 사람들은 빈 공간을 잘 알더라고. 작은 기회들도 놓치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 대신 고맙다는 말을 자주 해. 물론 너무 고맙다는 말을 인사치레로 던지고 부탁을 하는 건 좀 그래. 얄미워. 순간순간 어떤 블록이 내려올지. 어떤 위치에 내려야 할지. 어떤 기회로 어떤 과정을 보상받을지. 몰라. 늘 조마조마해. 이럴 때 키워야 하는 힘은 순발력이더라. 방향키를 몇 번 누르고도 시간이 남는 게 조금은 지루해서 스페이스바를 '탕' 하고 누를 때. 그게 또 적당한 위치에 잘 놓여졌을 때. 그때마다 작은 쾌감들을 느끼면서. 그렇게만 지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생각하는 안정이란 그런 것 같거든. 나에게 많은 방법을 시도할 기회가, 여유를 지루함으로 받아들일 만큼 자신만만한 상태. 그런데 결국 테트리스도 일정 시점에 접어들면 블록이 떨어지는 속도가 빨라지잖아. 어느 순간에는 순간의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 않더라. 근데 그 순간이 너무 빨리 와 버리는 경우가 있어. 운이 없는 경우지. 운이 없는 사람. 운이 없는 시기에 하필 또 그 블록을 마주하게 된 사람. 유명인, 재력가,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 자기 자신도 열심히 했지만 비교적 운도 나쁘지 않아서 남들이 선망하는 길을 오래 걷고 있는 사람. 최근에 TV를 보던 엄마가 그러더라고. 저 사람도 많이 늙었네. 사람 사는 거 알고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인생 별 거 없다. 왜 살아가면서 점점 더 무상함의 이치를 깨닫는 사람이 많아지는 걸까. 그리고 그 사이에 헤매고 헤매던 시간들은 무엇을 향한 결기였던 걸까. 난 요즘 나이 드신 분들이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세상 귀한 풍경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 나이 드신 분들의 머쓱해 하는 표정을 보면 더더욱 그래. 진짜 그런 표정을 짓는 어르신들이 몇 없는 것 같아. 나도 좀 더 어른이 되면 그런 웃음, 그런 머쓱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을까. 어릴 땐 그냥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어. 막연하지만 멋진 어른. 근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 극과 극은 통한다잖아. 인생에서 아주 어린 시절과 아주 늙은 시절에 가장 환하고 부끄러운 부분들을 애써 감추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지금을 잘 살아야겠어. 너무 낙관하지도 비관하지도 않고 무던하게. 하염없이 긴 막대기만 바라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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