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구두를 신어도 물집 하나 잡히지 않고 뒤꿈치가 까지거나 붉어지지 않는 발을 가지고 싶어. 그게 어렵다면 타고난 발에 무리 없이 잘 맞는 여러 켤레의 구두를 가져야겠지. 구두를 안 신어도 되는 상황을 이어가거나. 근데 그럴 수는 없으니까 구두를 신기 전에 발에 일회용 반창고 몇 개를 붙여보는 거야.
구두를 신을 때마다 가장 중요한 걸 잊곤 해. 그 상태에서 최대한 무리하지 않는 걸음걸이를 찾아내는 것. 난 늘 중요한 날이면 처음 걷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 하루하루 중요한 날들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면접, 데이트, 경조사 등을 치러야 하는 그런 날들 있잖아.
대학 시절 굽이 닳아가는 저렴한 힐을 신고 친한 선배 결혼식에 간 날이 생각난다. 성인이 되고 처음 찾아간 누군가의 결혼식이었는데. 탭댄스화라도 신은 것처럼 탕탕탕 바닥을 못질하듯 식장을 오가던 시간 동안 발이 참 아팠지만 그 소리에 스스로 웃음이 나기도 했다. 좋은 날이기도 했고, 그날 잠시 느꼈던 부끄러움도 처음이라서 추억으로 포용될 수 있었던 게 아닐지.
이제 남은 처음은 몇 개일까. 노력은 하지만 모험하지 않는 삶에 내가 견뎌야 하는 구두는 몇 개일까. 평소보다 더 단정하고 세련된 차림을 요하는 날들처럼 성의 있게 걸을 순 없을까. 편한 차림이라서 풀어졌던 자세들이 나 스스로도 그렇게 마음에 들 정도로 흡족한 게 아니란 걸 깨닫게 됐을 땐 참 씁쓸하더라.
길들인 운동화 몇 켤레와 곧은 자세. 그리고 오랜만에 신은 구두가 어색하지만 그것 나름대로 근사한 기분을 안겨주는 날들 속에서 정말로 내 것 같은 편안함을 찾아보려고. 여름날 슬리퍼를 질질 끌며 다니는 기분도 포기할 순 없겠지만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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