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끈이 있는 양장본 책을 읽고 덮을 때마다 고민해요. 어느 페이지에 책끈을 놓고 덮어야 다음에 잘 펼쳤다고 생각하려나. 해서 오늘은 오래 전 읽었던 시집을 펼쳤고 잘 펼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때 고민하며 책끈을 놓았던 페이지에 실린 이 시를 읽고 한참 널브러져 있다가 한여름에 옷장 서랍을 열어 회색 털장갑을 찾아 끼고는 형광등이 있던 자리에 LED등을 새로 달았습니다. 36W 형광등을 빼고 기존의 안정기와 호환이 된다는 18W LED등으로 갈아끼우고 나니 방 안에서의 시간이 한결 만족스러워졌습니다. 이 간단한 걸 왜 진작 하지 않았을까요.
눈에 오는 파장도 적고 소비전력도 줄어든다는 친환경 제품이라 해도 오래 쓰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요.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저는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장점에 마음이 자주 이끌리더라고요. 나날이 마음의 에너지가 부족해지는 것인지. 되도록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싶지만 그런 노력을 아끼게 되는 모순 속에서 지내게 된달까요.
어떤 대상이나 환경과 오래 함께하려면 나부터 정리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요즘도 하던 일을 자주 멈추고, 헤매고, 혼자 있고, 미룰 수 있는 데까지 미루고 그러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저는 요즘 무엇을 기다릴까. 가만히 생각을 해봐도 아무 생각이 안 납니다.
그냥 딱 좋다고 느껴지는 거. 이상형을 물어봤을 때 느낌이 좋아야 한다고 대답하는 사람처럼 이런저런 조건들을 재는 건 아니지만 이래저래 무언가 좋은 것이 있어도 부담없이 소개받기는 어려운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만큼 겁이 많다는 것일 수도 있고, 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들이 추상적이라 공유되기엔 아직 투박한 것일 수도 있겠어요.
아무튼 제가 오랜 세월 기다리지 못하고 새로움을 탐한 시간만 줄여도 고통을 정통으로 받아들이고 지금보다는 깊이 있게 살았을 거란 후회는 돼요. 그래서 요즘은 귀찮아서 그대로 두고 있는 것과 소중해서 먼지 한 번 더 털어내고 그대로 두는 것을 분별하고 지내려고 노력해요.
"항상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기다리지 않는 사람에 비해 더 고통스러운가?" 잘 모르겠습니다. 대신 오늘은 질문을 다시 해보려고요. 어떤 것을 기다리며 겪는 고통인가? 고통의 크기에 따라 기다림이 계속되고 일단락되는 거라면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는 거 아닌가? 단순히 좋은 것을 기다리고 있다면 삶이 그저 삶을 지망하는 척 머물러 있는 거 아닌가?
댓글 4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초록이아닌연두
시인님 축하드려요! 에세이 얼른 읽고 싶어요..🫶🏼
만물박사 김민지
반가운 댓글에 대댓글 못 참죠. 고맙습니다. 밝은 기운 한 조각 한 조각 맞추는 그림 같은 여름날 보내셔요. 🧩🫶🏻🧩
의견을 남겨주세요
오월
비공개 댓글 입니다. (메일러와 댓글을 남긴이만 볼 수 있어요)
만물박사 김민지
오월님, 응원의 댓글 고맙습니다. 내년 봄쯤엔 새 에세이가 나올 텐데 그 무렵 시집 관련 소식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열심히 즐겁게 쓰겠습니다. ✨✨✨🌱🫢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