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문공작소

오래 붙들고 있던 시와 함께 부치는 말

2022.07.21 | 조회 8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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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생활 전공자를 위한 내적 대화 콘텐츠

많은 사람들이 시 읽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세상에는 의외로 자유로운 감각에 의지하는 것에 난처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텍스트의 매력을 떨어트리는 교과서적인 해석을 요구하지 않아도 읽는 데 많은 부담을 느끼고 맙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처럼 성글면서도 농익은 텍스트를 읽기 위해 필요한 공식 같은 게 따로 없기 때문이죠. 

시를 좋아하는 저도 시집 한 권씩 읽을 때마다 모든 시가 단번에 잘 읽힌다고 느낀 적이 없습니다. 오래 두고 볼 시집은 펼쳐 읽을 때마다 좋았던 소수의 시편들을 따로 강아지 귀를 접듯 상단 모서리를 세모로 접어 둘 뿐이죠. 읽는 회차를 더할 때마다 강아지 귀가 많아지는 시집. 그렇게 귀엽게 책배의 부피를 키우는 책장 속 시집을 볼 때면 무의식의 통로가 많아진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좋더군요.

좋은 시를 읽으면 개인적으로 무의식 속을 헤매는 뜻모를 감정이나 골치 아픈 사건에 길을 하나 터 준 듯한 느낌이 듭니다. 또 가끔은 오래도록 몇 번이고 돌아와 머물고 싶은 집의 형태처럼 편안하거나 단정한 시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잠결에 꾼 꿈 속에서 나 자신이 시공간을 무한정 쓰고 돌아다니는 것처럼.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움직임을 부추기는 게 시인 듯해요.

시를 읽고 쓰는 데에는 별다른 묘수가 없습니다. 저의 예시를 들어보자면 그저 '나'라는 현실을 양심껏 살아가는 게 첫 번째, 내 뜻대로 안 되는 많은 일과 관계를 풍경처럼 풀어 놓고 보는 연습이 두 번째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때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풍경 앞에 서서 기념할 만한 사진을 남기는 것보다는 함께 어우러져 있거나 따로 동떨어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순간순간들을 둘러보는 게 우선이 될 때 그럭저럭 읽히는 시를 만났던 것 같아요.

그런 만남들이 무성하게 영글 때쯤 저도 첫 시집을 엮어낼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오늘은 작년에 공개된 제 등단작 열 편 가운데 가장 오래 품고 있던 시 한 편을 레터 끝에 두고 갑니다. 읽다 보시면 요즘 수요일과 목요일마다 우리 곁에 찾아오는 반가운 드라마의 주인공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기러기'나 '토마토' 같은 단어들이 나옵니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인 '우영우'의 바람처럼. "오롯이 혼자 좌절"할 자유가 있는 상태로 제 인생을 책임을 지는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꼭 시를 읽고 쓰지 않아도 나를 둘러싼 풍경, 나와 주변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의 호흡과 행간, 열거되거나 함축된 의미들을 읽어가는 그런 사람은 충분히 아름다우니까요.

회문(回文)공작소 엄마는 핑킹가위를 사 주지 않았다 옆 짝꿍이 가위질 한 번에 여러 계단을 쌓아 올리는 동안 나는 계단을 헛딛는 상상을 하면서 가위질을 배웠다 지그재그 들쑥날쑥 기러기와 토마토 같은 단어를 생각하면서 마음 한쪽에 빛이 들어도 다른 한쪽에 그늘이 진다는 사람 앞에서 양면 색종이 한 장을 집어 들고 무엇이든 접어 보이는 연습 검정을 뒤집으면 주황색 같은 살갗과 빨간 피부터 보이는 뒷면도 있었지만 나는 딱지 같은 검정을 매만지면서 전면이라는 말을 배웠다 그때부터 모든 전면전에는 기억할 만한 어둠이 있음을, 꿈자리에 풀을 바르고 일어서면 따라붙는 간밤의 기억들 엄마는 핑킹가위를 사 주지 않았다 쓰다 남은 풀들만 늘어났고 어느 순간부터 야맹증을 앓았다 전면 승부는 밤에 시작되는데 낮에 만난 친구들은 계단 옆에 난간이라도 세워 보라 했다 그런 난관쯤이야 나는 기어서라도 오를 거야 생각했으니까 나는 무언가 세워 올리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계단은 오르는 것 계단은 오르는 것 어느 날 다시 가위를 들고 잠에 들었을 때 문을 열고 지하실 계단에서 구르는 꿈을 꾼다 온몸을 계단이 두드린 순간, 엄마는 키가 클 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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