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이라는 글씨를 봅니다. 도로 위 전광판이나 뉴스특보 자막으로 종종 보던 글씨입니다. 사망 인원이 집계되는 시간에도 살아서 사망이라는 글씨를 봅니다. 죽을 사에 망할 망. 아니 이때의 망은 없을 망.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죽음으로 없어진다는 것은 이 세상의 입장일 텐데. 죽은 사람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사람이 죽어서 별이 됐다든가. 혹은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살아간다든가. 그런 이야기도 좋지만, 내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있다면 어떤 세상이고 어떤 모습으로 새 삶을 살지 궁금해요. 전생이니 후생이니 그런 게 정말로 있다면 지금은 몇 번째 생인 건지.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겠죠.
이처럼 습하고 무더운 여름에 죽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합니다. 집일까. 집밖일까. 그런 생각을 스치며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작년 오월 대만에서 산 손부채를 꺼냈습니다. 라운드 와이어가 들어간 동그란 모양의 천 부채입니다. 천 위에는 파인애플이 그려져 있습니다. 펑리수 대신 부채를 사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는 밤. 이생의 합리적인 선택이란 대체 뭘까요.
대만은 겨울에 한 번 더 가보고 싶던 나라였습니다. 덥고 습한 날씨를 피해 가야지 하는 관광객의 안일한 생각으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몇 해 전부터 겨울 한파에 저체온증으로 죽은 사람이 꽤 있다고요. 추위가 낯선 더운 나라 사람에게 치명적인 온도 차. 더위를 견디는 것도 어마어마한 일인데 그 어마어마한 힘을 키워도 갑작스러운 추위를 맞닥뜨리면 더 버틸 재간이 없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애석했던 것 같습니다.
그 애석한 인간이 참 합리적으로 지내온 탓에 이런 기후가 형성되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가끔 비가 내리지 않고 구름 낀 하늘에 해가 조금도 들지 않을 때. 그러한 날씨와 마음이 같은 맥락으로 흐느적거릴 때. 스스로 침착하다고 느낍니다. 요즘은 요즘 날씨처럼 마음을 가늠할 수 없어서 힘에 부치는데 잠시라도 뭐가 올 듯 말 듯 애매하게 흐린 상태가 오히려 확실하다는 느낌이 든달까요.
이렇게라도 안정을 느끼는 밤에 펴보는 책은 대만 작가 황 포치의 『500그루의 레몬나무』입니다. 작년 9월 〈문장의 소리〉에 출연한 나지환 시인의 추천으로 샀던 책인데, 책에 있던 한 구절이 생각나서 다시 펴봤습니다.
“나는 압니다. 죽음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세상으로 돌아오는 거라고 할머니와 엄마가 믿고 있다는 걸요.”
“자신에게 더 잘 맞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요. 오늘은 그 세상을 조금 그리다 자려고요. 내일이면 반드시 까먹고 부랴부랴 살아갈 테지만 조금씩 남긴 세상에 대한 스케치가 어느 동굴 벽화처럼 남으면 좋겠습니다. 천장에 매달린 박쥐의 눈에 그 벽화는 어떻게 보일까요.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빗나가고 있을 때 전남 함평군에서 황금박쥐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신가요? 실외 온도가 일정 온도로 내려가면 1년에 약 220일가량 겨울잠을 잔다는 멸종위기의 황금박쥐가 인간들 몰래 집단 서식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인간들이 또 162kg의 순금을 사들여 황금박쥐상을 만들었다는 사실도요.
그때 30억 가까이 들여 만든 황금박쥐상이 150억 정도 한다는 얘기도 몇 달 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탐욕은 무엇일까요.
실제 황금박쥐는 녹인 금처럼 붉은 모습인데요. 햇빛을 받으면 우리가 아는 황금빛을 띤다고 합니다. 한자 박쥐 복과 복 복의 음이 같아 예로부터 복의 상징이었다는 박쥐 이야기를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부자가 되는 꿈을 꾼 적도 없지만 마음의 가난을 극복하지 못했어요. 그러한 연유로 경제적으로 휘청이게 되고요. 그렇지만 사는 동안 걱정 없이 푹 자고 햇볕을 쐬고 싶어요. 황금빛 인생일까요.
어쩐지 황금빛 불똥에 마음의 눈만 멀어져가는 날들이지만, 몇 날은 기필코 그렇게 살아보겠다고 2024년 7월 31일자 유서에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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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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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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