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도 감정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감정이어도 누군가와 나눠야만 할 때는 그래야 한다. 말장난을 좋아하고 다짐을 좋아하는 내가 일기를 쓴다면 아마도 이런 허세의 라임과 훅이 가득하겠지. 그래서 일기를 자주 쓰지 않는다.
다 핑계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나만 보고 덮을 일기여도 나를 풀어놓는 법을 몰라서 쓰기가 싫다.
싫다. 이 말을 생각하면 짜증이라는 단어처럼 그저 무책임하게 느껴질 따름인데도, 그 말 하나로 모든 부정을 정직하게 고백한 것처럼 표현해 버릴 때가 있다. 무성의한 정직함에 익숙해지면 무서운 신념가가 될 뿐이라고. 매일 나만 보고 덮을 일기장에 누군가가 빨간펜으로 그 말을 써주고 가면 좋겠다.
나는 뭐가 그렇게 싫은 것일까. 오늘은 짚고 가야 할 것 같다.
1. 나는 가식이 싫다. 가꾸지 못하고 꾸미는 마음이 싫다. 2. 나는 기만이 싫다. 속이면서 감추는 마음이 싫다. 3. 나는 다 가지려는 마음이 싫다.
그렇게 싫어하는 가식과 기만이 나에게도 가득하다. 내가 나를 꾸미고, 내가 나에게 들키지 않고 지나가는 오늘을 편하게 여긴다. 그러면서도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끼는 나의 마음이 버거울 때가 많아 버려두는 날이 많은 것이다.
그날들 속에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어떤 대상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이유가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대할 길을 몰라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대상에 대한 미움이 깊어지면 연을 끊는 결정에 대해서도 더 깊게 생각해보니, 사랑은 좋은 것만 줄 것이라는 어떤 맹목이 있었다. 그 맹목이 나를 번번이 망쳐놓았다는 것을 모르고 도망가기 바빴다. 그때 알았다. 왜 내가 그 많은 성취의 문턱에 집착하면서도 넘지 못했는지.
내가 만일 아주 작은 부정의 씨앗도 부정하지 않고 끌어안고 있었다면, 조금 더 우직한 사람으로 나아가고 있었을까. 관심이 가고 좋아하는 대상일수록 나에게 많은 것을 준다. 그 안에는 당연히 좋은 것만 있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마다 포기를 해야 할까. 그렇게 하나둘 포기하다가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나를 포기해야 할까.
그 질문에 한동안 대답을 하지 못했다가 오늘에서야 대답을 쓴다.
항상 좋은 것만 있을 수 없다. 그럴 수 없대도 좋은 것을 골라주려는 마음만 바닥에 있으면 된다. 내가 바닥일 때도, 서로가 바닥일 때도 그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믿고 가는 인생이었으면.
추신,부끄러움을 모르면 문제라는 말. 그러나 얼마나 진실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루하루를 지나가는 걸까, 생각하는 아침입니다. 체면 때문에 처신을 잘하는 사람을 어른이라고 부를 순 없을 거예요. 부끄러움을 모른 척하는 부끄럼에 대해서 쓰고자 했는데 결국 또 저의 이야기로 귀결되었어요. 누구나 이렇게 자기 이야기로 고이는 답답함이 있겠지요. 만물박사 김민지, 오늘은 동네를 산책하다가 버려진 냉장고 문에 붙어 있던 재현이와 재윤이의 칭찬 기차의 마지막 객차가 어딜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마무리합니다. 제 밑바닥이 자주 드러나는 메일링 서비스가 되어가는 느낌 지울 수 없지만, 가만히 봐주시는 모든 분들께 좋은 것을 골라서 전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 마음으로 쓴 시로 결국 문턱을 넘었던 것처럼, 그렇게 여러분의 마음 문턱도 정중하고 성실하게 넘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만물박사 김민지의 뉴스레터는 구독자 여러분의 긴장성 두통, 과민성 방광 및 대장 증후군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좋은 텍스트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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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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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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