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차선이 있다. 차 하나가 지나가면 꽉 차는 차선이다. 좌측이든 우측이든 시작과 끝은 있고, 길은 어디로든 뚫려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선 규칙이 필요하다. 도로 사정에 의한 규칙을 정하면 한쪽은 일방통행이 가능한, 다른 한쪽은 진입이 불가능한 길이 된다.
지난 주말 비가 그친 길을 걷고 있었다. 인도 옆에는 하나의 차선이 있었다. 얼마 뒤 한쪽 끝에서 거침없이 달려오던 차가 다른 한쪽 끝에서 달려오던 차를 만나 뒷걸음질을 쳐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서로 코를 박을 뻔한 위기를 넘기고 다소 우스꽝스러운 대치 상황을 겪게 된 두 차량을 보면서 생각했다.
어쨌든 사고는 나지 않아서 다행이고, 최대의 위기를 막은 순간엔 저렇게 우습지만 결정적인 귀여움이 따르기 마련인가.
무심코 들어선 인생에서 언제나 일방통행보다는 진입금지의 순간이 많았다. 그 순간에도 주의산만하여 무작정 달려가던 나였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방금 본 장면처럼 운이 좋아 최대의 위기를 겪지 않고 저렇게 뒷걸음질을 쳤던 일들이 수두룩하지 않았나.
금요일에 시작해 월요일로 끝나는 두 개의 연차를 과감하게 쓰고 나흘간 적당히 아무 생각을 하거나 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점점 좋아질 내일을 기대하는 이상한 활력을 그러모으다가 출근한 오늘. 점심 시간에 차도 사람도 쉽게 속도를 낼 수 없는 복잡한 골목에서 정면과 정반대로, 뒤로 걷는 아이를 보았다.
재미있어서 자꾸만 뒤로 걷는 아이의 몸을 옆에서 나란히 걷던 할머니가 몇 번이고 돌려 세웠지만 아이 또한 몇 번이고 자신의 몸을 돌렸다. 제 곁에 머무는 걱정에도 아이는 그저 신나 보였다.
정면으로 실컷 달려도 뒷걸음질이라도 한 듯 동떨어진 기분 같은 거 영영 모른다면 좋겠지만, 이미 알아버린 어른이라면 위기를 간신히 넘긴 순간의 감사함 같은 건 잊지 말아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추신, 만물박사 김민지. 열흘간 잠시 멈추어 있다가 돌아왔습니다. 오늘 점심 그 골목에서 마주한 '화분은 사라지고 화분처럼 굳어 버린 마음'을 깨뜨리면서 이 레터를 띄웁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잘 지내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쭤봅니다. 얼마 뒤 백신을 예약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접종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이렇게 별다른 일 없이 지내도 게으를 수 있으니 레터를 미리 써서 예약을 걸어야겠어요. 생각하는 것만큼 실천이 되는 사람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코로나19가 사라지면 사람들의 일상은 코로나19 없이 어떻게 굳어 있을까요. 방법은 모르겠지만 그날이 오면 서로 굳어 있는 일상을 안전하게 깨어서 다 죽어가는 것들을 다시 살릴 수 있겠죠. 다시 살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쭤봅니다.
● 만물박사 김민지의 뉴스레터는 구독자 여러분의 긴장성 두통, 과민성 방광 및 대장 증후군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좋은 텍스트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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