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과학기술] 기침하지 않는 내일, 범 코로나 백신

감기-사스-메르스-코로나19, 한 번에 잡아낼 수 있을까?

2022.06.13 | 조회 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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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여우원숭이

매주 월요일, 따끈따끈한 최신 과학기술을 짧고 쉬운 글로 소개합니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 유행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대유행을 겪은 우리나라는 이제 엔데믹 단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고 분석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우리는 코로나19를 없애는 데에는 완벽하게 실패했습니다. 앞으로 코로나19는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찾아오는, 독감 비슷한 계절 손님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모든 재난에는 양면성이 있지요. 2년 동안 인류는 코로나19에 맞서 싸우며 엄청난 희생을 치렀지만, 그 과정에서 면역학과 백신 기술이 크게 발전하기도 했습니다. 1년 만에 백신을 개발하고 승인하는 전례 없는 속도전이 펼쳐졌습니다. 백신 개발과 감염병 예방에 투입되는 연구비 지원도 큰 규모로 늘었습니다. 한편으로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이제 부스터 샷, 스파이크 단백질, 메신저 RNA 같은 전문적인 용어들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변화한 연구 환경에 힘입어, 요즘 세계 각지의 면역학자들과 바이오 기업들은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를 넘어, 모든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을 한 번에 막아내는 “범 코로나 백신(pan-corona vaccine)”의 개발이지요. 좁게는 앞으로 나타날 코로나19의 변이에 대응하는 한편, 넓게는 코로나바이러스속(coronaviridae)에 속하는 더 많은 질병을 막아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동물의 서식지가 시시각각 파괴되면서, 박쥐나 철새 따위를 감염시키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언제 변이를 일으켜 인간에게 넘어올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감기를 일으키는 리노바이러스의 모습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Thomas Splettstoesser, File:Rhinovirus isosurface.png, CC BY-SA 4.0.
감기를 일으키는 리노바이러스의 모습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Thomas Splettstoesser, File:Rhinovirus isosurface.png, CC BY-SA 4.0.

감기 얘기를 먼저 해 볼까요?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감기에는 마땅한 치료제도 없고 백신도 없습니다. 그건 사실 감기가 특정한 균이나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하나의 질병인 것이 아니고, 최대 200여 종의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가벼운 호흡기 질환을 뭉뚱그려서 부르는 이름이기 때문이에요. 200종의 바이러스 모두를 막아내는 만능 백신을 만들어내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우리가 가을마다 맞는 독감 예방 접종은 보통 3가 백신인데, 고작 세 종류의 바이러스를 막아낼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200가 백신을 만들기는 훨씬 어렵겠지요.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인간이 걸리는 감기의 60%는 리노바이러스가 일으킵니다. 그런데 리노바이러스는 쥐를 감염시키지 않아요.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는 쥐를 이용한 실험 단계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때문에 리노바이러스를 막아내는 백신 개발은 처음부터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1970~1980년대에 감기 백신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꽤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지요. 최근에는 코로나19 백신으로 유명한 모더나(Moderna)에서도 감기 백신을 연구 중입니다만 아직 임상 전 단계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계통도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계통도입니다.

2021년 기준으로, 코로나바이러스과에는 54종의 바이러스가 존재합니다. 감기보다는 훨씬 쉬운 상황입니다만 그래도 범위가 대단히 넓지요. 때문에, 바이오 업계에서 이야기하는 “범 코로나 백신”도 사실은 여러 단계로 나뉩니다.

가장 좁은 범위의 1단계 백신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변종을 모두 잡아내는 백신입니다. 우리는 알파와 델타, 오미크론을 거쳐 변이하며 백신을 자꾸 우회하는 코로나19 변종 때문에 크게 곤욕을 치른 바 있지요. 오미크론 변이에 맞추어 백신을 개발하기도 했지만, 생각 외로 부스터 샷을 접종했을 때 기존 백신에 비해 눈에 띄는 면역력 향상은 없었다고 해요. 1단계 백신은 2020년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원종과 현재 우세종인 오미크론은 물론, 미래에 나타날 최후의 변종인 이른바 ‘오메가 변이’까지 모두 잡아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조금 더 넓은 범위의 2단계 백신은 사베코바이러스를 모두 막아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사베코바이러스에는 모든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에 덧붙여 2002년에 유행했던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바이러스가 포함되지요. 재미있게도, 2021년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과거에 SARS에 감염된 적 있는 사람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받았을 때 SARS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모두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중화항체가 생성된다고 해요. 인체에서 범 사베코바이러스 항체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경험적으로 관찰되었기 때문에, 2단계 백신 개발까지는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3단계 백신은 베타코로나바이러스속 전체를 대상으로 합니다. 2012년에 발생했던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바이러스까지 범위를 넓힌 건데요, 현재 3단계 백신을 연구하는 곳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시작한 바이오 스타트업 디오신백스(DIOSynVax) 뿐입니다. 4단계 백신은 알파~델타코로나바이러스 등 4개의 속(genus)을 모두 잡아내는 백신인데요, 아직 완전한 4단계 백신을 연구하거나 개발 중인 기관은 없습니다. 모더나에서 알파와 베타코로나바이러스 각각 2종을 막아내는 감기 백신을 연구하는 정도이지요.

범 코로나 백신은 어떤 원리로 여러 종류의 코로나바이러스를 한 번에 막아낼 수 있을까요? 비록 세부적인 특징은 다르다 하더라도, 모든 코로나바이러스는 ‘스파이크 단백질’이라고 불리는 돌기 모양의 단백질을 표면에 갖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범 코로나 백신은 스파이크 단백질의 공통적인 특징을 인체에 보여줌으로써 앞으로의 감염을 예방하는 접근법을 취합니다.

한 가지 방법은 “키메라 단백질(chimeric protein)” 기법입니다. 키메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 머리는 사자, 몸통은 염소, 꼬리는 뱀이라고 하지요. 키메라 단백질은 여러 개의 스파이크 단백질의 부품을 섞어서 만들어 낸 스파이크 단백질입니다. 키메라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난 우리 면역계는 여러 코로나바이러스의 특징 중 보편적인 부분을 인식하게 되리라는 접근이지요. 키메라 스파이크 단백질의 설계도를 담은 mRNA 백신을 쥐에게 주사했더니 SARS와 코로나19 등 여러 종류의 감염에 면역을 얻어냈다는 연구가 발표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모자이크” 기법입니다. 여러 바이러스의 특징을 뒤섞어 새로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키메라 방법과 달리, 모자이크 접근법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섞어서 제시합니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 중인 GBP511이 바로 모자이크 방식의 범 코로나 백신입니다. GBP511은 인간이나 박쥐를 감염시키는 사베코바이러스 3~4종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섞어서 사용하지요. SK바이오사이언스는 GBP511의 개발을 후원하는 목적으로 국제감염병혁신연합(CEPI)에서 5천만 달러의 투자를 받기도 했습니다.

범 코로나 백신의 개발은 물론 2020년의 “워프 스피드 작전(Operation Warp Speed)”에서처럼 1년 만에 완료되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빌 게이츠가 누차 경고한 바와 같이, 신종 감염병은 앞으로도 우리의 일상을 때때로 위협할 거예요. 범 코로나 백신의 개발은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입니다. 아직 우리가 만나보지 못한 신종 감염병에 맞서 보다 넓은 범위의 보호를 제공하는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접근이지요. 코로나19 대유행처럼 광범위한 인명 피해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 최종적인 목적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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