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과학기술] 200년 사는 볼락, 장수와 회춘의 비밀을 풀다

2022.05.17 | 조회 1.02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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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여우원숭이

매주 월요일, 따끈따끈한 최신 과학기술을 짧고 쉬운 글로 소개합니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사실, 사람뿐 아니라 거의 모든 생물은 수명이 한정되어 있어서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죽습니다. 홍해파리(Turritopsis dohrnii)와 같은 단순한 생물들은 늙지 않고 영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등생물 중에 그런 사례는 없지요. 인간은 여러 동물 중에서도 제법 오래 사는 편입니다만, 의학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100세를 넘기기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영생하는 생물로 유명한 홍해파리입니다.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Tony Wills, File:Turritopsis rubra 10893104.jpg, CC BY-SA 4.0.
영생하는 생물로 유명한 홍해파리입니다.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Tony Wills, File:Turritopsis rubra 10893104.jpg, CC BY-SA 4.0.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은 죽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영생까지는 아니더라도 늙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요? 최근에는 단순히 장수를 의미하는 수명(lifespan)이 아니라 건강한 상태로 보낼 수 있는 시간인 건강수명(healthspan)에 주목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설령 120세까지 산다 하더라도 50세 이후를 질병에 시달리며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보낸다면, 수명은 길지만 건강수명은 짧은 셈이니까요.

현대 생물학의 중대한 화두 중 하나는 노화의 생물학적 기전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역전시키는 연구입니다. 이미 노화 연구는 기초학문의 틀을 조금씩 넘어서 서서히 원숙기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노화의 종말》, 《불멸의 꿈》 같은 대중과학서가 출판되어 있고, 건강 관리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NMN이나 레스베라톨과 같은 성분이 들어간 보충제를 구입해 먹곤 합니다. 최근에는 미국의 항노화 스타트업 알토스 랩(Altos Lab)이 3조 6천억 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노화 연구는 어렵기로 악명 높은 분야입니다. 노화가 일어나는 생물학적인 기전을 이해해야 항노화 전략을 세울 수 있을 텐데, 생물이 나이가 들며 일어나는 변화 중 어떤 것이 노화를 일으키는 원인이고 어떤 것이 노화로 인한 증상인지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예요. 예컨대, 만성 염증이 원인이 되어 노화가 진행되는 것인지, 아니면 세포 노화가 진행되면서 만성 염증이 심해지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잡하고 방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생물학적인 현상을 이해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여러 생물종을 비교하며 유전체 분석을 해 보는 것인데, 그렇다고 수명이 긴 생물과 짧은 생물을 단순히 비교해서는 노화의 원인을 찾기 어렵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비슷하면서도 수명이 크게 다른 생물들을 비교하면 좋을 텐데, 그런 생물 쌍이 흔치는 않겠지요. 유전적으로 가까운 생물은 수명도 비슷하기 마련이고, 수명이 차이가 많이 나는 생물들은 보통 생물학적으로도 차이가 큽니다.

200년 이상 산다고 알려진 한볼락(Sebastes aleutianus)입니다. 출처: Bulletin of the United States Fish Commission
200년 이상 산다고 알려진 한볼락(Sebastes aleutianus)입니다. 출처: Bulletin of the United States Fish Commission

그런데 2021년 11월, 정말 노화를 연구하라고 자연이 던져준 선물 같은 종을 찾아내어 연구한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볼락속(Sebastes)은 태평양에 서식하는 물고기 종들인데요, 흥미롭게도 볼락속의 어종들은 수명의 범위가 매우 넓어서 짧게는 11년 사는 종도 있지만 최대 200년까지 살 수 있는 종도 있다고 합니다. 이들은 같은 속(genus)에 속하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는 가까운 친척임에도 불구하고 수명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나타납니다. 때문에 볼락속의 여러 어종을 비교하면 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가 어떤 것인지 분석할 수 있지요.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 섬의 핀치들을 비교해서 진화론의 단서를 얻었던 것처럼요.

유전자 수준까지 내려가지 않더라도, 일부 볼락 종들이 장수하는 이유는 이들이 살아가는 환경으로부터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관찰된 바에 의하면 대체로 덩치가 커서 천적에게 잡아먹힐 염려가 적으며 찬물에 살아서 신진대사가 느린 종들이 장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극단적인 사례로는 북극해 깊은 곳에 잠수하여 500년 이상 살아간다고 밝혀진 그린란드상어가 있지요. 볼락에게도 비슷해서, 200년을 살 수 있는 한볼락(Sebastes aleutianus)은 심해의 암초 지대에 살며 크게는 1미터 길이까지 성장합니다.

연구진들은 현상론적 관찰에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102종에 달하는 볼락의 유전체를 수집하고 분석하여 수명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골라냈습니다. 당연하게도, 장수하는 볼락들은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유전자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생물은 살아가며 수많은 환경 자극에 노출되며 DNA가 조금씩 망가지는데, 이를 제때 수선하지 못하면 암에 걸려서 금세 죽어버리지요. 장수하는 볼락은 망가진 DNA를 찾아내어 고치는 데 관여하는 유전자를 많이 갖고 있다고 합니다.

좀 더 흥미로운 유전자들도 숨어 있었습니다. 연구진이 수학적 모델을 동원하여 좀 더 정밀하게 분석한 결과, 수명이 긴 볼락의 유전체에는 부티로필린(butyrophilin) 단백질군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더 강화되어 있었습니다. 부티로필린은 젖소의 젖샘에서 발견된 단백질인데, 처음에는 우유에 지방질을 분비하는 기능을 한다고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구가 거듭되면서 부티로필린이 백혈구 등 면역세포를 조절하여 염증 반응을 억제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에 의하면 염증 반응을 효과적으로 억제하는 것이 노화를 막고 장수하는 데에 대단히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오지요.

염증은 양날의 칼입니다. 우리 몸에 병원균이 침입했을 때 빠르게 퇴치하기 위해서는 염증 반응이 필수적이지만, 한편으로 뚜렷한 이유 없이 계속되는 만성 염증은 노화의 원인이 되고 심혈관계 질환이나 암, 근감소증과 치매 따위를 일으킨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노화와 동반되는 만성 염증을 부르는 이름으로 ‘염증성 노화(inflammaging)’이라는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서두에서 언급했다시피, 노화 연구에서는 수많은 인자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염증과 노화 사이의 상관관계는 거의 확실하지만 그 인과관계는 아직도 분명치 않거든요. 이를 확실히 하기 위해 의학 연구자들은 만성 염증을 억제하는 치료를 했을 때 실제로 퇴행성 질환이 감소하는 효과가 있는지 임상시험을 통해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을 생각해 볼 때, 이번 볼락 연구는 우선 염증 억제와 수명 사이의 상관관계를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가 됩니다. 한편으로, 부티로필린이라는 유전자군을 특정하여 밝혀냈기 때문에 실제로 인간 대상의 약물이나 치료법을 개발할 때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도 하지요. 결국 노화의 원리를 다루는 수많은 연구는 실제로 인간의 노화를 늦추거나 되돌리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물론 볼락과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매우 다른 종이지만, 이번 연구 결과가 ‘회춘’의 비밀을 밝혀내는 중요한 한 걸음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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