쫀득한데 든든하네, 10593 베이글커피하우스

[출처: unsplash_mae mu]

나는 확실히 밥파다.
빵보다는 밥이 좋고, 면보다는 밥이 좋다.
한식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어떻게 스페인에서 살았을까 생각해 보면,
스페인도 쌀을 먹기 때문인 것 같다.
그곳에 있을 때도 언제나 구매 리스트에서 쌀은 빠진 적이 없다.
돈이 아무리 부족해도 쌀은 꼭 구매했으니까.
아, 맥주도 빠질 수 없지
그렇기에 내가 빵을 먹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정말, 엄청, 아주, 맛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월 모일, 이른 아침,
맛있는 베이글 집이 있다고 해서 가기로 했다.
'베이글이 다 거기서 거기지 얼마나 맛있겠어'
아침밥으로 김치볶음밥이 땡겼지만,
나름 인싸가 되고 싶었던 나 역시,
사람들 사이에서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는 '베이글'이 궁금해졌다.

차를 주차하고 내리자마자 눈앞에 보인 것은 거대한 베이글 간판이었다.
내가 지금 차를 타고 수원의 베이글 가게로 온 것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베이글 가게도 온 것인가?
마치 샌프란시스코 고속도로 중간에 위치한 베이글 가게에
잠시 들린 것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었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풍기는 빵 냄새.
베이커리 향수가 나온다면 아마 이런 향이지 않을까.
그런 향수가 나온다면, 사무실에 두고 기분이 우울해질 때마다 맡을 것이다.

돈을 버는 회사원으로서 가장 기분이 좋을 때는 바로 이때다.
아무런 걱정 없이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고를 수 있다.

"플레인 베이글, 바질 베이글, 에브리띵 베이글, 잠봉뵈르 베이글 샌드위치..."

베이글 이름을 하나하나 말하면서
'이건 무조건이지'하고 고른 것이 5개가 되었다.
사람은 셋인데, 다섯 개면 적게 고른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닌가, 너무 과한 걸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잠시,
베이글은 우유, 버터, 달걀을 넣지 않아 다이어트할 때 좋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던 것이 생각나, 이 정도는 양반이지 하고 쿨하게 넘겼다.

그럼 뭐 해. 바로 옆에 화려한 자태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크림치즈가 잔뜩인데.

근데 왜 가게 이름은 10593일까. 지번이었다.
가게의 위치가 '권선동 1059-3'이기 때문이다.
요즘 가게들 중에 이렇게 지번을 활용한 곳이 많은 것 같다.
고소한 베이글의 향과
쌉싸름한 커피의 향으로 입안은 모든 준비를 끝냈다.
조금만 더 기다리다간 내 모든 세포들이 불만을 표할 것 같았다.

다행히 때마침 우리가 주문한 커피와 베이글이 나왔다.
바로 한입 물었다.
베이글을 베어 무는 순간, 내가 밥파였다는 사실을 까먹었다.

쫀듯하면서도 고소하고, 살짝 짭조름한 이 느낌.
이게 바로 베이글이지.
베이글을 만들어준 유대인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는 밥파가 아니었다. 완벽한 빵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