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락스타다. 은퇴하고 나면 밴드를 할 거다. 밴드 이름은 오늘내일. 이렇게 숨넘어가게 어울리는 이름이 또 있을까. 호흡이 달려서 노래는 못 할 거고, 작사 작곡을 담당하며 코어 팬들의 사랑을 받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장난 같은 화려한 옷을 입고 다녀야지. 머리도 무지개색으로 염색할 거다. 벌써 새치가 나는 걸 보니 그때쯤엔 탈색도 필요없겠다.
올해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싱어송라이터 락스타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사실은 기타를 치고 싶었는데 당장 가진 게 피아노였다. 언젠가 작곡을 배우겠다며 사 둔 66건반 키보드. 이걸 아이패드에 연결하면 리듬게임처럼 건반을 치며 피아노를 배울 수 있다. 건반이 22개나 모자라서 연주가 될까 싶었는데, 시작한 지 7달이 지난 지금도 66건반 넘게 필요한 곡은 칠 일이 없다. 바이엘이며 체르니는 손도 안 댔다. 간단한 재즈 코드부터 초인종 소리로 유명한 미뉴에트까지 재밌는 것만 쏙쏙 골라 배우고 있다.
유치원 때 2년쯤 피아노 학원에 다닌 적 있다. 어딘가 설운도를 닮은 원장 선생님과 푸근한 미소를 짓는 아내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어슴푸레 떠오르는 뚱땅뚱땅 피아노 소리, 보라색 하농과 하늘색 바이엘 교재. 이사를 가며 그만두게 되었을 땐 원장님 부부가 더 아쉬워하셨다. 조금만 더 치면 체르니 들어가는데 하시면서. 집까지 찾아와 이사 선물도 주고 가셨다. 어린이용 바디워시 세트였다. 구름을 탄 알라딘과 자스민 피규어를 누르면 핑크색 거품이 나왔다. 꿈처럼 달콤한 향이 났다.
이사간 곳에서도 피아노 학원에 다녔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눈꼬리가 잔뜩 올라간 선생님이 무서웠다. 연주를 틀릴 때마다 가는 회초리로 손등을 때린다는 소문도 있었다. 회초리를 보기도 전에 도망치는 바람에 체르니는 표지도 못 봤다. 학원비 한 푼도 아까운 시기였고, 기껏 배운 바이엘은 거품처럼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몇십 년 전 잊어버린 것들을 이제야 다시 배운다. 할 만하다 싶던 것도 잠시, 악보에 샵과 플랫이 붙기 시작하면서 손가락이 꼬이는 중이다. 좀 더 오래 피아노를 배웠다면 이 정도쯤 아무것도 아니었을 텐데. 어쩌면 진작에 락스타가 되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그렇게 락스타가 되었다면 몰랐을 거다. 어쩔 수 없이 그만둔 걸 내 의지로 다시 시작하는 뿌듯함. 아무런 기대가 없을 때 생기는 의외의 즐거움 같은 것들.
5분짜리 곡 하나를 25분 걸려 완주했다. 몇 번이나 틀려서 다시 쳤다. 질려서 그만둘까 싶었지만 끝까지 해냈다. 손등을 노리는 회초리도 없고, 할머니가 되려면 한참 남았다. 지금이니까 괜찮다. 아무리 틀려도 혼나지 않는 연주는 지금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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