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았다. 신혼 시절을 새집에서 보냈다. 대단지 재건축이 끝나 새집이 쏟아져나온 시기였고, 헌 집 월세 값으로 새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나도 최측근도 처음 살아보는 좋은 집이었다. 하자 보수를 수십 번 하며 좋은 집으로 만들어둔 덕분일까. 몇 년 살았지만 아직도 새집 같다. 다음 세입자는 우리가 내는 월세 두 배를 주고 들어온다. 이사 나가기 전에 놀러오시라.
이 집은 A역과 B역 사이에 있다. 조금 언덕이지만 A역에서 오는 게 나을 거다. B역에서 오면 펫샵 두 곳을 지나쳐야 한다. 손바닥만한 강아지가 빼곡히 갇혀 있는 걸 두 번 봤다면, 재건축 때문에 잘 살던 집에서 쫓겨났다는 1인 시위 트럭을 지날 차례다. 다리든 마음이든 아프고 나면 거의 다 왔다. 이제 사랑 단란주점을 마주하게 될 거다. 간판은 낡았지만 밤마다 성업 중. 윗집에서 종종 부부싸움을 크게 하는데 여기가 원인이 아니길 바란다.
밥은 배달음식 시켜 먹자. 옆 동네 맛집 다 배달된다. 지어진 지 제법 되었는데 1층 상가에 밥집 하나가 없다. 그 와중에 근처엔 부동산만 다섯 군데. 지나칠 때마다 괜히 창문에 붙은 집값을 보게 된다. 여기 시세가 말도 안 되게 올랐더라. 이 집이 이렇게까지 비쌀 이유가 뭐람. 새집이라는 것 말고는 대단할 게 없는데. 살기 위한 값을 지나치게 올려 부른다. 여기에 살지도 않는 집주인들이.
여기 사는 것도 올해까지다. 우리는 맛집 많은 옆 동네로 이사 간다. 최측근 회사 가깝고, 근처에 공원도 있고, 산책 나온 행복한 강아지들을 실컷 볼 수 있는 곳이다. 맘에 안 드는 동네 새집을 내놓으니 마음에 드는 동네 헌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20살 먹은 집의 노란 선반이, 노란 바닥이 낯설겠지만 괜찮다. 벽지도 바닥도 하얀 새집에 손님처럼 얹혀 산 날들. 마루에 흠집이라도 날까 어찌나 불안했는지.
두껍아 두껍아 새집 줄게 헌 집 다오. 이젠 언제나 돌봐야 하는 집 말고, 언제고 돌아가고 싶은 집에 살고 싶다. 제법 나이를 먹은 이번 집이 우리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면 좋겠다. 노란 게 뭐 어때서. 물만 노랗지 않으면 되지. 필터 샤워기를 사고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 동네에 두고 가기 아쉬운 게 하나 있다. 초콜릿 라떼가 맛있는 카페. 이사 가는 집으로는 배달이 안 되더라. 얼마 전에 ‘이사를 가서 못 먹는다, 초콜릿 브랜드라도 알려달라’고 물어봤었다. 시중에 파는 제품이 아니고, 그때그때 다른 초콜릿을 블렌딩하는 거라 알려드리기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 이렇게 진하고, 고소하고, 텁텁하지 않은 초콜릿 라떼는 여기밖에 없는데. 어쩌면 이사를 하고서야 알아챌 가벼운 이별이 더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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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솜사탕
나무늘보님 안녕하세요!🍊 결혼식을 하기 전에는 겨우 한 순간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쓰는 게 아까웠는데, 돌아보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다들 나만 본다!!' 에도 살짝 좋아요 눌러봅니다🥰 저도 다시 하라고 하면 기꺼이 또 할 거예요 ㅎㅎ 이번엔 앨범 추가금은 안 내겠지만요...!!!
J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읽고 소식 전해주셔서, 결혼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대학입시 고생 많으셨고 내년 입학 축하드려요!
제 경우에는 20살이 된 게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였어요. 대학에 들어간 것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나이 때문에, 시공간의 제약 때문에 하지 못했던 일들이 한꺼번에 가능해졌거든요. 직접 돈도 벌 수 있고요. 과장하자면 인생 튜토리얼을 마친 기분! J님도 분명 재밌으실 거예요ㅎㅎ 멀어지는 친구들이 있는 건 아쉽지만 언제고 다시 가까워질 수 있으니까요. J님 앞에 새로운 일이 한가득 펼쳐질 거고, 그 새로움을 분명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응원할게요! 생각날 때 또 소식 전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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