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다들 이란에 별 관심이 없을 겁니다. 이번 계기로 관심을 가져봅시다. 북한과 비교하며 아는 척하기 매우 좋은 소재입니다. (설문 바로가기)
이승환(ㅍㅍㅅㅅ 발행인): 이란은 대체 어떻게 미국과 맞설 수 있는 거죠?
인남식(국립외교원 교수): 이란은 만만한 나라가 아닙니다. 우선, 석유 생산만으로 최소한의 생존을 꾸릴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제재가 강화됐다 해도 석유를 염가에 구매하고자 하는 나라는 있으니까요.
그리고 중동의 대부분 국가가 유목 문화 기반인 반면, 이란은 페르시아 때부터 정주 문화 기반이었습니다. 농업과 경공업 기반 제조업도 발전했죠. 그렇기에 기본적 생필품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저항경제를 꾸릴 수 있습니다. 인구도 8500만 명 이상으로 굉장히 많고요.
이승환: 아무리 그래도 미국이 그렇게 쪼는데 버틸 수가 있나요?
인남식: 여기에는 역사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1979년 이란 혁명이 일어나며 친미 성향의 팔라비 왕조가 무너집니다. 이후 1980년부터 8년 간 벌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이 이라크를 지원하면서, 이란에는 강압적인 동원체제가 만들어집니다. 이 때문에 이란이 버티는 것도 가능했던 거죠.
미국은 계속해서 제재를 가해왔지만, 이란은 79년 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국제 네트워크가 잘 돼있는 나라였습니다. 때문에 비공식적으로나마 송금도 가능하지요.
이승환: 대체 이란 핵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겁니까?
인남식: 79년부터 이미 미국은 이란을 강하게 제재했습니다. 그러다 2002년부터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지요. 이제 이란 제재는 미국만의 이슈가 아니게 되었고, UN 안보리를 통한 고강도 제재로 들어가게 됩니다. 미국 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도 제재에 동참하게 된 것이죠.
이승환: 대체 이란은 왜 쓸데없이 핵을 개발한 거죠?
인남식: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1년 9.11이 터졌을 때, 이란의 대통령은 하타미였습니다. 그는 이란 역사상 대통령 중 가장 개혁파였습니다. 79년부터 계속된 미국의 제재가 너무 힘드니까, 끊임없는 러브콜을 미국에 보냈습니다.
클린턴 2기 후 민주당의 엘 고어가 당선됐다면 양국 관계는 회복됐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화당의 조지 부시가 당선됐고, 9.11까지 터지며 미국은 이란을 ‘악의 축’으로 꼽게 됩니다.
이승환: 부시와의 관계가 안 좋았나 봐요?
인남식: 이란의 하타미 대통령은 끊임 없이 부시 정부와의 관계 개선에 나섰습니다. 9.11 당시 해외 정상 중 가장 먼저 조의를 보낸 축에 속했다는 썰도 있습니다. 테헤란에서의 추모 시위도 있었고요. 더 중요한 건, 탈레반이 오사마 빈 라덴을 인도하지 않으니 이란의 영공을 열어줘서 아프간을 공격할 수 있게 합니다. 9.11은 사우디와 이집트 출신의 수니파 테러리스트 저지른 일이고, 시아파 중심의 이란은 그들과 대척점에 있다, 미국과 손잡고 수니파 극단주의자를 엄벌하겠다는 메시지죠.
이승환: 그렇게까지 미국을 도왔는데, 왜 악의 축으로 지정된 겁니까?
인남식: 79년 혁명 당시, 미국인 50여명이 1년 이상 인질로 억류된 적이 있습니다. 때문에 미국에는 페르시포비아(percyphobia)라고, 이란에 대한 증오가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렸듯 이란은 굉장히 잠재력이 큰 나라입니다. 아무리 제재해도 살아남은 이란이 제대로 힘을 갖추면, 미국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공포가 깔려있지요.
이승환: 그런데 이란은 왜 핵 같은 걸 만들어서…
인남식: 바보 같은 일이긴 하죠. 국가의 핵무장은 보통 3가지 목적으로 설명합니다. 안보(security), 정치(politics), 위신(prestige)이죠. 북한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안보 목적으로 핵을 보유한 전형적인 국가죠. 반면 이란은 ‘위신’을 위한 거죠. 이슬람에서 소수인 시아파 국가이고 미국의 제재를 받지만, 주변국들 입장에서는 이를 이겨내고 핵까지 만든 이란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대가도 큽니다. 국제사회는 고강도 제재에 들어갔고, 이란 민중의 삶은 훨씬 힘들게 됐죠. 어쨌든 핵을 확보한 이란은 나름 줄타기를 잘하고 있습니다. 선을 넘기 직전까지 능력을 과시하고 있지요. 이란은 국제사회 네트워크도 잘 돼 있고, SNS도 자유롭고 시위도 합니다. 그래서 북한처럼 벼랑끝 전술을 펴거나 협박에 나설 우려는 별로 없는 편이지요.
이승환: 부시 이후 양국 관계는 어떻게 되었나요?
인남식: 테러와의 전쟁 1년 만에 이란 핵개발 의혹이 터졌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알 카에다와 WMD(대량살상무기)가 결합한 최악의 모습을 상정하여 이란을 다루기 시작했지요.
이후 10년 이상 고강도의 제재가 계속됐습니다. 민주당 오바마 정부도 국방수권법을 통해 2012년 이란 제재를 강화했죠. 고강도의 제재였습니다. 금융과 석유를 틀어막았지요. 어떤 나라든 이란과 거래할 경우 미국과의 거래를 끊어버리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승환: 우와, 무시무시하네요…
인남식: 허나, 동시에 오바마는 다른 메시지도 던집니다. 미국은 이란이라는 나라가 미운 게 아니라 핵 개발을 막으려는 거다, 핵개발만 안 하면 제재도 좀 풀어주고 신정체제도 인정하겠다, 부시처럼 민주화를 내세운 인위적 정권 교체에 나서지 않겠다고 공언했지요.
그러다 2013년 이란 대선에서 변곡점이 생깁니다. 현 대통령인 하산 로하니가 당선된 것인데요, 그 전 대통령인 아마디네자드는 강성의 완강한 보수파였지요. 미국과 일사결전을 벌이고,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우겠다고 주장했던 사람이었어요.
이승환: 로하니의 당선이 왜 그렇게 특이한 일이죠?
인남식: 당시 중도파인 로하니가 당선될 거라 생각 못한 거죠. 여론조사 초기에는 선두 후보들이 모두 보수 강경파였습니다. 그런데 후순위였던 로하니가 결선투표없이 1차 투표에서 바로 대통령에 당선된 겁니다. 오랜 경제제재로 국민들이 먹고 살기 힘드니까, 미국과의 싸움은 일단 그만하고 먹고 살도록 개방하자는 쪽을 택한 거죠.
이승환: 이란의 정치 제도도 신기하네요. 종교지도자가 개짱짱인 신정인 줄 알았는데 민주주의 국가였나요?
인남식: 신정이 맞습니다. 국민 뜻대로 돌아가는 민주주의도 아니고요. 그래도 선거로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뽑기에, 국민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무시할 수 없는 구조 정도는 있습니다. 종교지도자인 ‘최고지도자’라 해도,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절대왕정의 사우디 국왕이나 강력한 권한을 가진 이집트 대통령처럼 맘대로 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종교지도자인 ‘최고지도자’의 실질적 권력은 매우 강고하지만,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바꾸는 나라이기에 최고지도자의 권력행사에도 일정정도 제약이 있는 셈이지요.
이승환: 무튼 그래서… 로하니가 대통령이 되니 상황이 좀 풀렸나요?
인남식: 오바마는 기다렸다는 듯 액션에 들어갑니다. 2년 만에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 합의하죠. 보통 ‘이란 핵합의’라고 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미국이 내놓는 조건을 15년 간 잘 따르면 단계적으로 제재를 풀어주겠다는 겁니다.
오바마 정부는 15년 동안 이란이 인적교류도 하고 전세계와 무역도 하면, 이란이라는 국가의 형질이 변화할 거라고 본 겁니다. 그렇게 15년을 잘 따르면 감시와 관리감독이 없는 보통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거죠.
이승환: 그런데 이걸 트럼프가 깬 거죠? 왜죠?
인남식: 트럼프 입장에서는 여전히 이란이 사악한 국가라고 본 것입니다. 이게 오히려 미국 주류의 시각입니다. 오바마 정부의 견해가 소수파죠. 그리고 JCPOA의 조건들이 그렇게 빡빡하지 않았습니다. 이란에게 유리한 부분이 많습니다. 오바마 정부도 굉장히 큰 도박을 한 거죠.
이승환: 그러면 오바마가 도박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남식: 당시 이란은 핵무장 직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란이 1년 안에 핵을 가질 수 있다고 보고 강한 경계심을 보였죠. 이른바 BOT, 브레이크아웃 타임이란 건데요.
이란이 핵무장에 성공하면 이후 미국에는 큰 부담이 됩니다. 이미 이란보다 훨씬 약한 이라크와의 전쟁만으로도 미국 경제가 초토화됐습니다. 많게 추산하면 1조2천억 달러의 비용을 퍼부었지만, 5천명 가까운 미군이 죽고 여론은 악화됐습니다.
이라크 민주화라는 목표도 대실패했습니다. 원래 미국은 이라크를 민주화로 이끌어, 제재 중인 이란 국민들이 이라크를 부러워하게 만들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라크에서 지옥도가 계속되며 이라크를 이란에 헌납하는 모양새가 됐습니다.
이 전쟁의 명분이 테러와의 전쟁이었는데, 알 카에다를 물리치니 IS가 이라크에서 국가 선언을 합니다. 이렇게 테러와의 전쟁이 끝없이 늘어지며, 미국인들도 전면전을 통해, 즉 지상군을 투입해서 정권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군사력으로 안 된다면 외교적 수단을 써야하겠죠. 그런데 2013년 이란 대선으로 그 기회가 온 겁니다.
이승환: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과 핵합의를 한다고 하니, 공화당 측 반발이 크지 않았나요?
인남식: 반발이 컸죠. 그래도 오바마는 이를 추진합니다. 그 결과가 바로 159페이지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인 거죠. 타결후 3개월만인 2015년 10월, 이란에 대한 미국, 유럽, 그리고 유엔안보리 삼중 제재가 동시에 해제됩니다.
이승환: 나름 국가간 계약인데, 트럼프는 이를 어떻게 깰 수 있었던 거죠?
인남식: 이란에 대한 미 의회의 반발심은 굉장히 컸습니다. ‘이란을 어떻게 믿냐? 15년 후 감시 끝나고 2030년에 또 핵무기 만들려 하면 어떻게 할 거냐?’
그래서 미국 의회는 ‘이란 핵합의 검토법(INARA)’을 만듭니다. 쉽게 말해 미국 대통령이 90일 단위로, 이란이 핵협정을 잘 지키고 있는지 인증하는 겁니다. 트럼프는 이를 인증하지 않았고, 곧바로 이란 제재가 재개된 거죠. 여기에 관해서는 어쨌든 오바마가 모험을 했고, 트럼프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는 게 워싱턴 정서이긴 합니다.
이승환: 그 결과는 어땠나요?
인남식: 이란 핵 합의(JCPOA)는 UN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까지, 총 6개국이 서명했습니다. 이 중 유럽 3개국, 즉 영국, 프랑스, 독일은 이 협정을 간절히 원했습니다.
이란은 포텐셜이 굉장한 나라입니다. 9천만에 가까운 인구, 제조업 능력이 있고, 중산층도 많습니다. 특히 여성의 공학 교육은 미국 수준입니다. 북쪽 카스피, 남쪽 걸프, 이렇게 석유가 있고,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문화유산도 있습니다. 다른 이슬람 국가와 달리 술이나 이런 것에도 개방적이었던 역사가 있어요.
이승환: 엄청난 시장이 열리며 다들 신났겠군요.
인남식: 그렇죠. 그간 미국 때문에 닫혀있던 시장이 열렸으니까요. 유럽 각국은 적극적으로 이란에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트럼프 정부 들어 2년 만에 원상복귀됐어요. 특히 프랑스가 피해를 많이 봤습니다. 자동차, 석유 등 제조업 기반을 깔아놨는데, 다 중지해야 했으니까요. 한국도 유럽 급은 아니지만 2700개 중소기업이 진출한지라 나름의 손해가 있었습니다.
이승환: 유럽은 어떻게 대응했죠?
인남식: 그래도 동맹국이고 국방비 원탑인 미국에 맞설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는 NATO라는 동맹에는 굉장히 큰 부정적 메시지였습니다. 미국의 고전적 대외정책은 영불독과 함께하는 ‘대서양 동맹’이고, 이 결과가 NATO이지요.
트럼프가 지속적으로 방위비를 더 쓰라고 하긴 했지만, 이는 예측 가능한 압력입니다. NATO라는 공동의 목적을 깨는 건 아니지요. 하지만 이란이 마음에 안 든다고 다시 제재를 가한 것은, 동맹국 입장에서는 미국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계기였지요. 힘들게 합의한 사항을 여반장으로 바꾸어버린 것이니까요
이승환: 미국의 제재는 UN차원이 아니니, 꼭 따를 이유가 없지 않나요?
인남식: 그래도 대부분의 교역 결제는 달러로 이뤄집니다. 유로는 한계가 있지요. 영불독 삼국 중심으로 INSTEX라는 유로화 결제 메커니즘을 만들었지만 잘 작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재무부에서 이란의 웬만한 거래처를 블랙리스트로 지정했다 생각해 봅시다. 이들과의 거래가 확인되면, 미국이 유럽의 그 회사와 거래를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미 재무부의 금융 제재는 정말 무섭습니다. 당장 지금 한국 정부가 이란 돈 70억불을 갖고 있다고 하잖아요? 이란에서 석유 팔아서 번 이란 돈인데 한국이 못 주는 겁니다. 이 돈이 IBK와 우리은행에 묶여 있는데, 1달러라도 이란에 잘못 보내는 순간, 미국에서 이를 테러자금으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미국 허락을 받기 전에는 절대 보낼 수 없지요. 민간 은행이 손해를 감수하고 위험을 무릅쓰라고 국가가 설득하거나 강제할 도리가 없어요.
이승환: 이란은 어떤 입장인가요?
인남식: 이란 입장에서는 설마 트럼프가 저렇게까지, 석유 한 방울도 못 나가게 할까… 이런 생각이었겠지요.
다시 저항경제에 들어간 이란은 2012년 이전보다 훨씬 힘듭니다. 그간 정상국가로 되돌아간다는 국민 기대감이 컸으니까요. 2015년 즈음에는 CNN 특파원이 테헤란의 미국대사관에 들어가서 취재를 하기도 했어요. 곧 국교가 재개될지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하면서요. 희망에 들떠 있었는데, 갑자기 다시 제재에 들어가니 박탈감이 엄청났지요. 트럼프 하나로 모든 게 무너진 겁니다.
이승환: 안보비용 생각하면, 미국도 손해 아닌가요?
인남식: 미국은 이미 오바마 정부에서부터 중동에서 병력을 빼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트럼프는 어차피 이란이 핵무기를 가져도 미국 본토까지 타격할 수는 없으니 상관없다는 입장입니다. 유대인 표가 있으니 이스라엘 정도만 지키겠다, 나머지 나라들은 이란이 두려우면 미국한테 무기 사가라는 식이죠. 돈 내면 지켜주겠다는 거예요.
트럼프는 애초에 중동국가의 민주화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미국에게 어떤 경제적 이익이 오느냐만 바라보죠. 무기 많이 사고 유가 잘 맞춰주면 도와주겠단 식입니다. 반면 오바마는 중동 내 고만고만한 나라끼리 균형을 만들려 했지요.
이승환: 이러다 진짜로 전쟁 나면 어쩌려고…
인남식: 트럼프는 전쟁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의 아이덴티티는 거래와 협상을 통해서 이익을 거두려는 사람입니다. 그의 리더십 성격을 미루어 짐작해서 보면, 전쟁은 수치스러운 선택이겠지요. 항복을 받아내길 좋아하지, 전면전을 즐기지는 않습니다. 작년 초 미국과 이란 사이에 미사일도 좀 쏘고 했지만, 사실 인명피해는 최소화하는 보여주기 느낌이 없지 않았습니다.
이승환: 바이든으로 바뀌고 변화가 좀 있을까요?
인남식: 그건 분명합니다. 이미 바이든은 이란이 기존의 협약을 지키기만 한다면 경제 제재를 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무엇보다 바이든의 핵심 참모들이 이란 핵합의의 판을 그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당시 이란 핵합의 멤버들을 모두 바이든 정부 요직에 앉혔습니다. 국무장관 앤소니 블링컨, CIA 국장 윌리엄 번스,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좌관… 다들 오바마-바이든-케리와 함께 이란 핵협정으로 외교의 정점을 찍은 멤버들입니다. 기적적으로 평화협정을 이뤘더니, 이를 트럼프가 망쳐놓은 거죠. 이를 되돌리려는 의지를 가진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한 가지 변수는 올해 6월에 있는 이란 대선입니다. 트럼프가 합의를 깬 후, 중도파 로하니 대통령의 인기는 바닥입니다. 이번 대선에서 중도개혁파의 당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오히려 보수강경파인 혁명수비대 출신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높죠. 이렇게 되면, 미국 바이든 정부가 선의를 가지고 있어도 이란 측이 거부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승환: 그런데 아무리 보수다 뭐다 해도, 경제는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남식: 혁명수비대가 가진 이란 내 지분을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지만… 추정하기로 이들 중엔 오히려 저항경제로 먹고 사는 이들이 더 많을 수도 있습니다. 이란이 정상화되고 국제적인 기준을 따르면 버티지 못하는 기득권 세력이 있을 겁니다. 그러면 이들은 국민이 힘들어도 이대로 체제를 지키려 하겠죠.
이승환: 그러면, 수가 없는 건가요?
인남식: 바이든이 취임한 1월 20일부터 이란 대통령 1차 투표를 앞둔 5월 말까지가 골든타임입니다. 이때 미국이 집중적으로 신호를 줘야지요. 제 2의 트럼프는 없다, 즉각 조치해서 전부 원상복귀하겠다… 이런 걸 4개월 안에 보여줘야 중도개혁 후보에게 힘이 실리겠지요.
중도개혁 후보가 나설 자리가 없다 해도, 보수강경파 중에서도 미국과의 협상을 추진할 의지가 있는 후보가 등장할 여지가 있을 겁니다.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의 결정에 달렸지만요. 보수파라도 그나마 미국과 대화가 가능한 대통령이 나온다면 상황은 호전될 겁니다. 그러지 못한다면 또 고난이 계속되겠지요. 미국은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이란과 마주할겁니다. 다만 미국 역시 무조건 복귀 수순을 밟지는 않고 차제에 몇가지 조항을 바꾸려 할 겁니다. 이 과정에서의 합의가 향후 미국-이란관계를 규정하겠지요. 중요한 4개월입니다.
이승환: 미국과 이란 관계가 호전되면, 아랍 내 리더십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인남식: 사우디와 이스라엘은 미국과 손 잡는 이란이 껄끄러울 겁니다. 오히려 트럼프 같은 노선의 지도자가 나와서 지금처럼 계속 이란을 묶어주길 바랐지요. 중동에는 이미 이란을 따르는 작은 나라들이 많습니다. 친 이란 무장세력이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에 깔려 있어요. 애초에 이란은 선거로 권력을 선출하는지라, 혁명이라면 질색을 하는 인근 왕정국가들은 이란 이슬람혁명에 대해 항상 경계의 시각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승환: 바이든 정부의 이란 정책은 한국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인남식: 북핵문제를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바이든 정부의 국무장관, 국방장관, CIA부장, 다들 중동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입니다. 또 이란 핵합의에 대해 큰 자부심도 가지고 있지요. 그렇다면 이란 핵합의가 북핵을 다루는데도 적용 가능한가? 이것이 가장 큰 숙제이고, 정말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겁니다.
분명한 것은, 이미 이란은 부지불식간 국제사회에서 중요 플레이어가 됐습니다. 최근 한국선박 나포도 우연은 아닐 겁니다. 한국도 그만큼 위상이 올라가 있습니다. 현실이예요. 이란 제재가 풀리면, 한국에는 시장이 열린 것이니 좋은 일입니다. 이후 인도적 지원이 이어진다면 더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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