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소년은 새부서로 발령이 났다. 최선은 아니었고, 차선이었지만 기피부서에서는 벗어났으므로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그는 내심 섭섭했는가 보다. 소년은 나름대로 구상했던 계획이 있던 것 같은데, 그 계획은 철저하게 나를 위해서 짜여져 있었으므로 속이 상했던 것이리라.
나는 자기 마음 잘 안다고, 늘 고맙다고 그랬다. 그리고 걱정말라고 처음도 아닌데 잘 할 수 있다고 했다. 해낼 수 있다고. 나의 씩씩함이야말로 그에게 위로가 될 걸 알고 있기에 희망찬 말들을 토해냈다. 마치 주문처럼 말이다.
돌아보면 크던 작던 일말의 기대를 품으며 살아온 듯하다. 애석하게도 기대를 저버리는 쪽으로 인생은 주로 전개되었다. 첫사랑이나 인간 관계. 시험 성적이나 면접들. 나아가 매주 당첨되지 않은 복권의 종이를 찢으며 주말 밤을 마무리하니 말 다했다.
가족을 만드는 일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 중에 하나였다. 일찍이 엄마가 되고 싶다고 어릴 적부터 노래를 불렀으니까. 꿈꾸던 모습 그대로 구현해나가기 위해서 이 사람이다 싶은 짝을 찾고, 만나 사랑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 이만큼 나의 기대를 완벽에 가깝게 충족시켜준 것이라곤 없었다. ( 반대로 내가 내 인생에서 쟁취한 것이 이만치 없어서 그리 느끼는 지도 모른다. )
허나 기대는 자꾸만 더해졌다. 자꾸 바라는 것이 생겨났다. 딸이었으면. 검사 전 날까지 잠 못 이루곤 뜬 눈으로 아침 진료를 보기 위해 나섰다. 아직 나오지 않은 배를 동그랗게 만지며 가꽁아 오늘은 너를 만나러 가는 날이야, 혼잣말 하고. 마침내 선생님의 분홍 옷 준비하셔도 될 것 같아요, 넌지시 건네는 말에 새어나가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그 다음에는 얼굴이 궁금해 참을 수 없었다. 너무 긴 아홉달이었다. 28주 입체 초음파로 아이의 얼굴을 또렷하게 볼 수 있지만 선우는 쉬운 녀석이아니었다. 태반에 얼굴을 묻고 삼십 분 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진료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그냥 낳아서 보세요, 그랬다. 그리고 아이를 처음 만나던 날. 정말이지 너무 못 생겨서 소년과 나는 화들짝 놀라버렸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는 말하는 목소리가 어떨는지 상상하면서 보냈다. 우리 애들은 말이 늦어서 나는 오래도록 기다려야했다. 걱정이 우습게도못하는 말이 없는 어린이가 된 선우를 보면서 이 녀석 커서 뭐가 되겠다고 하려나, 싶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으니 심신이 튼튼한 어른으로 크렴. 간절히 고대한다.
아이들이 다 자란 미래를 아득히 그리다 보면 의지가 솟는다. 오래 살아야지 싶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 마지막으로 했는지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라는 인간에 대해 얼마나 기대가 높았는지 십대의 대부분을 절망하며 보냈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내가 굳게 믿고 있는 내가, 진정 나라는 위험한 확신은 어찌나 얄상하여 몸을 부풀리는지. 그리하여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 했던 선택은 얼마나 무거웠고 가벼웠는지 거스르다 보면 우습다. 수치스러워 내내 어딘가 숨고 싶은 마음으로 지냈다. 겨우 삶을 견뎠다.
그러다 소년을 만났고. 나는 이 만남으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 그 역시 나를 만나 인생이 예상과 다르게 흘렀다고 말한다. 너를 향해 나아가던 일 년이 아깝지 않다고. 슬프고 무너졌지만, 비로소 사랑이 되었으니까.
나란히 누운 밤마다 나는 공들여줘서 고맙다 말한다. 함께 걷는 미래를 꿈꿔줘서, 외 사랑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줘서. 당신의 기대를 포기하지 않아줘서 고맙다고.
배신당할 때마다, 내가 내 등에 칼을 꽂을 때마다, 기대를 저버릴 때마다 나를 살린 것은 결국 또 다른 기대였다.
기대는 시간의 품을 팔아야 한다. 기다림을 동반한다. 시간은 공평해서 부지하듯 여기까지 왔다. 앞선 시간을 기다려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는 건 축복이다. 기대를 품고 살아갈 수 있다니 기쁜 일이다.
아이들이 내게로 와주어서 나는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를 그리게 됐다. 고사리 같은 손과 발로 이뤄내는 작은 성공을 목격하는 일이 나를 살게 한다. 좀처럼 얼굴을 보여주지 않던 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던 마음으로, 나는 깜깜한 육아를 오늘도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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