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음악과 회고와 < 독립 >
🎧 강아솔 - 엄마
독립을 한지 3주가 되었다. 아직 사람 사는 분위기는 안 나지만 꽃을 주문하고 좋아하는 사진을 걸고, 조금씩 내 것과 다녀간 친구들의 발자취로 다정해지고 있다. 본가에 있을 땐 이 집의 절반은 내 짐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사를 나와보니 생각보다 뭐가 없다. 나와보니 새로 사야 할게 정말 아주 많았다. 비닐장갑을 내 돈 주고 사본 게 처음이다.
나의 자취를 제 일처럼 축하해 주는 친구들은 제각각 재미난 선물을 해준다. 사과, 술, 올리브오일, 연두, 설탕, 행주부터 시리얼 볼, 치이카와 디스펜서와 발 매트, 다리미, 토끼 쿠션, 보석 십자수, 베드 테이블, 화병, 샤워가운, 테이블 조명, 실내 슬리퍼.. 많기도 하다. 이미가지고 나온 짐들 가운데 선물 받은 것 가득한데…
일이 바빠 이삿짐을 빼곡하게 싸지 못했고 첫 3일 정도는 집에 물 끓이는 게 없으니 컵라면도 못 먹고 차도 못 마시고 그렇게 살았다. 보다 못한 아버지가 전기포트를 사서 택배로 보내주셨다. 취급 주의라고 적인 박스를 여니, 내가 초등학교 때 사둔 메모 종이 위에 볼펜으로 꾹 눌러쓴 쪽지가 위에 붙어 있었는데, 출근길에 상자를 뜯다가 돌연 눈물을 왕왕 쏟아버렸다. ‘우리 수비니 아빠가 엄청 사랑하는 것 알지!! 밥 잘 챙겨 먹어’. 같이 살 때는 몰랐던 아버지의 마음을 뒤늦게 알게 된 아침이었다.
혼자 살고부터 가장 큰 변화는 가족과의 통화다. 워낙 용건이 있을 때만 전화를 하는 타입이기도 했고, 시시콜콜하게 연락하는 분위기도아니었는데, 이젠 가족이 모두 흩어져 있다 보니 카카오톡 그룹 페이스 톡으로 자기 전에 통화를 한다. 크게 할 말은 없지만, 얼굴 볼 겸전화를 건다. 부모님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서로 전화를 하시는데 자식들이랑은 데면데면한 감이 있으신가 보다. 항상 첫마디는 밥은 먹었냐는 소리다. 회사를 다니니 점심은 당연히 잘 챙겨 먹고 일이 길어지면 저녁도 곧잘 챙겨 먹을 텐데 그저 딸내미가 혼자 나가 살면서굶고 다니진 않는지 걱정이 되시나 보다.
가현의 원고를 보면서 나의 부모님이 이런 기분이실까 싶었다. 제 품에서 점차 멀어져 가는 자식에게 서운한 마음도 있으실거다. 엄마는가능한 오래 나와 살고 싶어했다. 돈도 좀 모으고, 우리딸 얼굴도 좀더 보고싶어했다. 사실 이렇게 갑자기 나오게 될 줄은 몰랐다. 매일 4시간이 넘는 출퇴근이 너무 힘들지만 않았다면, 계속해서 엄마아부지랑 같이 지냈을거다. 문득 퇴사를 하고 두달동안 여행을 갔을때도 부모님은 외로워 하셨을까.
다행인 것은 나의 엄마 아버지는 아들딸 모두 다 시집장가 보내면 저기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지으며 살겠다는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목수가 되고픈 오랜 꿈이 있으셨고, 일을 쉬지 않고 해온 엄마는 출근 없이 집에서 가족들 식사 챙겨주면서 낮잠도 자고, 작은 텃밭도 꾸미면서 살고 싶다 몇 번 말했다. 당장 내가 결혼 생각이 있는 건 아니지만, 혼자서도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어느 정도 안심하시지 않을까라는 무책임한 생각도 해본다.
이 원고를 마치면 본가(라는 표현을 쓸 수 있게 되었다)로 넘어간다. 아버지 생신이 곧이기 때문이다. 마침 내일 집 근처에서 촬영이 잡혀겸사겸사 못 가져온 짐도 챙기려 한다. 이젠 아무 때나 들리는 게 아니라 모두에게 알리고, 언제 도착할 거고, 밥을 약속 잡고 같이 먹는형태가 된 것이 참 멋쩍지만 우리 가족은 금방 적응하고 더 애틋해지면서 이렇게 잘 살아갈 것 같다. 아직 나는 독립을 멋지게 해낼 자신은 없지만 며칠 밤을 혼자 잘 잤고 그러다 힘들면 돌아갈 집이 있으니 그게 또 참 다행이다. 이제는 엄마가 전보다 더 자주 보고 싶을 테고 아빠도 그리워질 것 같고 ( 오빠는 별로 ) 엄마 아빠가 내 집에 와서 자고 갔으면 좋겠다. 엄마아빠를 빨리 보러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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