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 가현의 시 같은 나날, 내 플레이리스트에선 동요가 흘러

제 49회, 탄생

2022.12.02 | 조회 2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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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갑작스레 바뀐 주제에 냉장고 원고가 세이브되었다. 아마도 나 때문일 것이다. 

 

세찌가 태어났다. 드디어 나의 자녀 계획을 완성했다. 딸 아들딸로 귀결되는 수미상관 구조는 실패했지만, 막내는 정말이지 사랑이었다. 절로 입을 틀어막게 되는 귀여움이었다. 소년은 그런 내가 더 귀엽다며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그러면서도 본인도 반짝이는 눈으로 들여다봤다. 아이는 선우와 준우보다도 조그맣고 가볍고 올망졸망했다. 태지 하나 묻어있지 않아 말끔했고, 때라곤 하나도 묻지 않은 바닥 아래가 훤히 다 드러나 보이는 냇가에서 꺼내 올린 하이얀 돌멩이 같았다. 반질반질하고 소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왔다.

 

하루에 세 번 아이를 볼 수 있다. 면회를 다녀온 다음에는 점심을 꼭꼭 눌러 씹었다. 저작 운동을 하면서도 직전의 얼굴을 떠올리며 새어나가는 미소를 막을 수 없다. 반찬이 필요없이 밥이 달다. 퇴원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병실 안에서는 어찌나 아이가 그립다. 집에 가면 이젠 무르고 싶어도 무를 수 없고, 지겹도록 볼 얼굴인데. 곁에 두지 못하는 지금은 아이가 어떻게 눈을 뜨고 감으며, 찡그리고 소리를 내는지, 얼마나 평온한 얼굴로 잠을 자는 지, 새근거리는 숨의 냄새가 어떨는지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어진다. 

 

“ 솔직히 우리 애가 제일 귀엽게 생긴 거 같애. ”

 

소곤소곤 소년에게만 들리게 말하고 낄낄 웃는다. 면회실을 돌아서며 소년은 내가 진짜 객관적인 사람인 거 알지, 근데 자기가 봐도 그렇다며 비밀스럽게 귓속말을 한다.

 

 

예정일은 10일이었지만, 막달에 접어들면서 배가 너무 많이 쳐져서 금방이라도 출산할 것 같은 매일이었다. 사실상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11월에 집안 경사가 너무 많아 11월만 넘겨보자는 심산이었다. 그리고 이왕이면 12월 말일에 태어난 우리 선우처럼 12월의 초입을 장식해주면 좋겠다, 하는 마음으로 내심 1일 탄생을 바랐다. 마지막 검진에서 수축이 잦고 양수가 줄어들자 선생님은 유도 분만을 제안하셨다. 나는 옳다구나, 디데이를 정한 후 퀘스트를 깨듯 집안을 정리했다. 그리고 열 번쯤의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마지막이야, 마지막. 진짜 마지막이야. 이게 최종이야, 진짜진짜 최종. 기어이 떡볶이로 대미를 장식하며 매운맛과도 안녕을 고했다.

새벽 동안 아이가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플을 켜고 진통 주기를 체크했다. 오 분 안쪽이면 사이렌이 울린다. 그러면 병원으로 향해야 한다. 잘 준비하는 소년의 만류에도 불안해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놓고 가는 게 없을까 싶어 여러 번 가방을 확인했다. 다행인지 규칙적인 통증은 아니었지만, 분명 경험한 적 있는 느낌이었다. 지긋이 뻐근하게 사타구니에서 무릎까지 힘이 들어갔다. 

 

“ 세찌가 자꾸 자궁 입구에 머리를 요렇게 이렇게 대보는 느낌이 나. ”

 

소년은 그게 무슨 말이냐며 웃었다. 애기가 나올 준비를 하긴 하나 보다. 성격이 급한 친구네, 아주. 아니지, 어쩌면 엄마 소원대로 11월이 마치기를 녀석이 기다려준 지도 모르지.

 

 

소식을 들은 모두가 제 몸을 걱정해주시지만, 너무 말짱히 지내고 있다. 병실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소년은 그냥 일반인이나 다름없다고 그랬다. 부정할 수가 없네. 그냥 요양하러 온 사람처럼 잘 지내고 있다. 선우와 준우에게 엄마 조금만 혼자 있고 싶어, 넌지시 말했던 어느 저녁의 소원을 세찌가 이뤄준 것 같다. 오붓이 소년과 쉬고 있다. (아이는 소년이 낳은 것 같다. 내리 자고 먹고 논다.) 

 

사실 산모에게는 순산했다는 말이 정말 실례지만, 순산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너무 숨풍 아이를 낳아버려서 나는 머쓱할 지경이었다. 친구들은 여유가 넘친다며 역시 경험에서 나오는 짬바가 있다고 농을 쳤다. 새벽에 회진을 오신 의사 선생님도 나에게 물었다.

 

“ 안 아프죠 ? 안 아플 거야.

 뭐 찢고 상처 낸 데도 없는데 괜찮아야지. 잘하셨어. 너무 잘 낳더라. 그래요~ 쉬어요~ ” 

 

 

이전에 경험한 두 번의 출산과 가장 크게 달랐던 점은 회음부 절개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아이가 나올 때에 머리가 잘 나오라고 입구를 칼로 자른다. 말만 들으면 끔찍하게 아플 것 같지만, 애기가 나오는 와중에는 글쎄, 째는 줄도 모를 만큼의 거대한 고통이 전개되고 있으므로 아무런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 절개의 이유는 추후에 말끔하고 청결하게 관리하기 위함이다. 인위적으로 길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거칠게 찢어져 오히려 상처 회복에 어려우므로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지만,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괴로운 일이다. 간혹 절개 없이 아이를 낳기도 하는데 산모가 직접 부탁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틀림없이 경험하게 되는 일이고, 초산에서는 대부분 이뤄진다.  

아이가 태어나고 나면 절개 부위를 꿰맨다. 마취를 하지만 바늘이 내 살갗을, 그것도 연하디연한 부위를 들어갔다 나왔다가 하는 기분은 역시 유쾌하지 않다. 아이가 떠난 자리에 기진맥진한 나는 여전히 다리를 벌리고 피를 흘린다. 고요한 와중에 수치스러움이 몰려오고, 온몸에 오한이 찾아온다. 덜덜 떨린다. 종료된 다음에 남은 나는, 전쟁에서 승기를 든 전사가 되지만 어딘가 초라하다. 해냈다는 뿌듯함 뒤로 비참한 기분이 혼란하게 찾아왔다. 부산스레 피와 오물을 닦는 간호사가 현장의 생생함을 말끔하게 지워내고 나면 아이를 만났다는 잠깐의 황홀도 현실감이 없이 부유하게 됐다. 꼭 꿈을 꾼 것처럼.

 

그런데 후 처치, 그것 하나 하지 않았다고 출산 과정이 꽤 단출해지더라. 벌어져 있는 두 다리를 가지런히 모아다가 선생님은 이불을 덮어주었다. 아래가 욱신거리긴 해도 이전처럼 따끔하지 않고 너무 말끔한 거야. 그게 아주 좋았다. 도넛 방석이 없이도 어디든 잘 앉을 수 있었다. 괴로워하지 않으며 소변을 눌 수도 있었다. 그래서 세찌가 더 예뻤나. 작게 나와줘서 고마워, 머리가 안 커서 고마워, 엄마가 덜 괴롭도록 해줘서 정말 고마워. 

 

 

세세하게 출산 후기를 적어서 만천하에 탄생의 명암에 대해 말해볼까도 싶었지만, 그건 내 몫이 아닌 것 같아 살짝 내려두기로 한다. 나는 임신 과정과 출산을 순조롭게 경험했으므로 그런 내가 살풀이를 하는 일은 염치없는 짓이다. 아이를 낳는 일에는 예측도 불가한 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무탈하다는 건 너무나 다행인 일이다. 하늘에 감사한 일이다. 내 경우가 희박하고 귀하단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건 절대로 내가 젊어서도, 건강해서도 아니고 그저 운이 좋았던 것이리라. 불운은 너무 곳곳에 있어서 나도 혹 잠식당하지 않을까 내내 불안에 떤다. 아이와 만나는 날까지 그 위태로움을 견뎌내는 일이 꽤 외롭고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누군가에게 찾아온 불운이나 불행에서 안도를 느끼지 않으려 늘 노력했다. 언제든 내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견뎌낸 열 달이었다.

기다림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고, 이 시작은 틀림없이 가시밭길이란 걸 알아도 거스를 수 없다. 내 앞에 주어진 생 하나가 또 내 등을 보고 자라난다니 다시금 두려워진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고, 대단하지도 않지만, 옆에 누워서 게임 승급 전을 하는 저이가 동반자라 든든하다. 혼자 하면서 중계는 대체 왜 해주는데. 덕분에 한참을 웃는다. 평화롭다. 그러다가 아차, 우리 사이에 잠시 잊힌 아이들의 웃음소릴 발견한다. 요란하고도 복작스러운 기쁨을 되찾으려 전활 걸어보기도 하고. 

 

근데, 여보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거 아니야 ? 그러게, 이상하리만큼 아무렇지도 않네. 갑자기 일 년 전쯤으로 돌아간 것 같다. 배도 금세 들어가고, 튼살 하나 안 생기고 다행이다. 자기 덕분이지, 밤마다 오일 크림을 덕지덕지 발라줬는데 보람 있어야지. 잠도 안 자고 새벽까지 뜬 눈으로 있었다. 시간이 왜 이렇게 잘 가는 거 같지. 집 가면 잠 못 잘 텐데, 지금 자둬야 하는데 아까워서 계속 놀고 싶다, 그치. 또 일 년 하고도 반 이런 쉼은 없을 텐데. 우리 잘할 수 있을까. 잘은 못 해도, 어떻게든 해내겠지. 잘하지 않아도 돼, 가현아.

그렇다고 못 하란 소린 아니고. 

 

새벽에 앓는 소리를 내니 자기 자리를 되찾으려고 봉긋하게 솟아오른 동그라미를 찾아 한참 문질러 준다. 세찌 보러 갈래 서두르는 나를 붙잡아다가 히트텍을 손수 입히고, 약 먹을 시간이 되면 잊지 않고 미지근한 물을 무심히 떠다 준다. 누워서 드라마를 보며 퉁퉁 부은 두 다리나 발을 자연스레 주물러 주기도, 컴컴한 어둠 속에서 내가 차낸 이불을 찾아 다시금 덮어주고 흩어진 머리칼을 매만져주다가 잠든다. 촘촘하게 사랑받고 있다. 아이가 셋이 되어도 바래지 않고, 싱싱하고 물기 있는 마음이라 다행이다. 침대 위에 포개져 지금 이 순간 ! 을 만끽한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두 아이는 막내를 어떻게 맞아줄까. 준우가 태어난 다음 아득하기만 했던 그림이 점점 완성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바야흐로 완전체. 내 미래는 어떤 색깔로 흐를까. 검고 푸르기만 해서 아스라이 밝아오는 아침을 고대하던 내 인생에 태양이 뜰 줄이야. 이리도 다채로워질 줄 십 대의 끝자락에는 몰랐다. 머지않아 이십 대의 끝자락. 애국이 꿈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루아침에 애국자가 되어버린 나. 허나 국가적 대의는 잘 모르겠고, 정작 나는 아이를 낳고 내 부모를, 내 할머니를, 내 가족을 더 사랑하게 됐다.

그들이 그랬듯 나는  아이들을 품고 얼마 만큼을 울게 될까. 터져버릴 같은 가슴을 몇 번이나 다시 붙잡아두게 될까. 무엇도 수가 없는, 사실은 어렴풋이 것도 같은 미지의 밤이 가고 있다이제는 안다. 뜬 눈으로 지새지 않더라도, 구태여 확인하지 않더라도 어둠이 가고 나면 아침이 온다는 걸. 태양이 뜨지 않는 날은 없다는 걸.

 

더는 무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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