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내게 어딘가 애틋하다. 오랫동안 곁에서 지켜본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 같은 느낌. 조금은 다혈질에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다투기는 하지만 친밀하고 따뜻한 느낌의 친구 같다. 이런 친구 같은 여름은 해마다 때가 되면 우리 내부에서 잊혀가던 열망에 구체적인 온도를 부여한다. 세상이 이토록 뜨거운데 우리라고 가만히 있을 수 있을소냐. 기온이 올라가고 여름이 다가오는 표지가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면 더불어 나의 마음도 어쩐지 부풀어 오른다. 뭔가 해야만 할 것 같아. 어디론가 떠나야만 할 것 같아. 사랑을 시작해야만 할 것 같아. 물론 그러다가도 가끔은 한없이 열정적으로 가만히 있고만 싶다. (솔직히 한국의 여름은 너무나 무덥다. 너무나) 방에 틀어박혀 에어컨 틀어놓고 늘어져 쉬다가, 쉬다가 지쳐 스르륵 잠들고 싶다. 그래도 여름이 오면. 아아, 여름이 오면.
모든 여름이 그렇진 않겠지만 한국의 여름은 너무나 뜨거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너무나 축축하고 우울하다. 여름의 또 다른 얼굴인 장마가 다가오면 열기와 열망이 흘러넘치던 세상은 갑작스레 쏟아진 소나기에 푹 젖어버린 강아지 꼴이 된다. 모두들 귀를 축 늘어트리고 출근을 하고, 등교를 하고, 저마다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을 위해 움직인다. 비가오니 시원해져 좋다는 사람들도 비오는 날이 일주일쯤 계속되면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린다. 우울한 얼굴로 창밖을 보며 출근을 하고, 여행계획을 짜두었던 사람들은 서글픈 표정으로 달력을 넘겨본다.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