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김화랑의 생생 월드 쏙쏙

제 45회, 변명

2022.11.04 | 조회 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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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약속시간에 늦는 일을 싫어한다. 염려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보통 약속이 있다면 적어도 삼십분 전에는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려고 하는 편이다. 특히 조금 먼 곳에서 약속이 있거나 교통상황이 그곳에 닿기에 조금 복잡하다면 적어도 한두 시간 쯤 전엔 그곳에 도착해 있으려 한다. 일찍 도착해서 별다른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길가 아무 카페나 들어가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거나, 주변 가게들을 살펴보고 골목들을 구경하고 날씨가 좋으면 길거리를 멍하니 배회하며 아무 이유 없이 지나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한다. 딱히 할 일도 없으면서 굳이 일찍 그곳에 도착하려고 하는 이런 행동 기저에는 누군가에게 변명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깔려 있다. 나는 되도록 누군가에게 누가 되는 일을 하고 그 사유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물론 변명의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일도 싫지만 사실 궁극적으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 싫은 것이다. 나의 과오로 하여금 누군가에게 금전적 혹은 시간적 손해를 주거나 그 어떤 이에게 불필요한 마음의 소요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싫다. 그래서 언제나 잘 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일을 함께 하는 누군가의 상황을 생각하려 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살피려고 애쓰고, 되도록 누군가에게 폐가 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두려고 애쓰는 것이다. 물론 그러함에도, 그러한 수많은 노력에도 어쩔 수 없이, 피치 못하게 누군가에게 변명의 말들을 늘어놓게 되는 상황이 온다. 폐를 끼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살다보면 아무리 미리 준비를 하고 염려를 하고, 그러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써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폐가 되지 않으려 하는 노력들과 어떤 염려들이 헛된 일이라는 뜻은 아니다. 만의 하나로 그런 상황이 온다 해도 그런 상황에 대비해 준비하고 대비했다면 적어도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미국 법정드라마 슈츠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너의 어떤 질문에 상대방이 네, 아니오 로 말하지 않고 온갖 장황한 말들을 늘어놓는다면, 그건 그가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누구나 그렇지만 변호사는 특히 재판에서 거짓을 말해선 안 된다. 변호사법에는 변호사가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 진술을 해선 안 된다.”는 진실의무에 관한 규정이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명시되어 있는 진실은 적극적 의미가 아닌 소극적 의미의 진실이다. 거짓을 말하는 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거짓을 직접적으로 진실이라고 말할 순 없으니, 핵심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지 않은 소극적 진실에 대한 장황한 말들로 변죽을 울리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이태원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드라마 속 악역 변호사보다 훨씬 질이 나빴다. 소극적 진실에 대한 장황한 변명도 아닌 책임을 회피하고 변명하기 급급하여 국민에게 적극적 거짓을 일삼았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로 156명이란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외 151명의 부상자를 포함해 총 307명이 참사의 현장에서 죽거나 다쳤다. 아주 평범한 어떤 날,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태원 참사 발생 다음 날인 지난 30,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첫 공식 브리핑이 있었다. 정부의 공식 브리핑 발언들을 요약하자면 이번 참사의 발생과 결과에 대해 경찰과 행정안전부에겐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이 장관은 해당 장소에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모였던 것은 아니며, 경찰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단 입장을 밝혔다. 또한 서울 시내 곳곳의 시위를 위해 경찰 경비 병력이 분산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또한 이튿날인 31, 대통령실은 발표를 통해 현재 경찰은 집회 시위가 아니면 국민을 통제할 법적 권한이 없다며 이 장관의 발언에 동조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이상민 장관의 발언 전체를 검증한 결과, 그의 발언이 하나도 빠짐없이 거짓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시 공공데이터에 따르면 참사 당일인 20221029, 이태원에는 사상 최대의 인파가 몰렸고, 경찰은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혼잡경비를 수행했어야 하며, 서울시내에서 개최된 집회 때문에 경찰 인원이 분산됐다는 주장도 데이터에 의하면 개연성이 부족했다. 국민 안전을 총괄하는 행정안전부 장관과 대통령실이 책임을 회피하려고 국민에게 거짓 변명을 당당히 늘어놓은 셈이다. 그리고 참사 사흘만인 111, 이상민 장관은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국민 앞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대통령 윤석열은 115일까지 일주일간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전면에선 애도기간을 선포한 정부와 대통령은 뒤에서는 다수 언론에서 이번 이태원 참사를 참사로 보도하고 있는 와중에 용어를 이태원 사고로 굳이 정정 표기하고 희생자대신 사망자로 용어를 통제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1029일 이태원 참사 발생 4시간여 전부터 압사 위험 신고가 경찰에 11건이나 접수됐지만 경찰은 4건만 현장에 출동하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청이 공개한 112 신고 내역 자료에 따르면 오후 634분 경 압사라는 단어가 들어간 첫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너무 불안하다. 사람이 내려 올 수 없는데 계속 밀려 올라오니까 압사 당할 것 같다. 통제 좀 해주셔야 될 것 같다라며 신고했다. 이에 해당 신고를 받은 경찰은 출동해서 확인해보겠다라고 답했다. 그러나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상황을 종결하고 그곳을 떠났다.

  이어서 89분에도, 833분과 853, 9시 그리고 92, 7, 10, 51분 그리고 다시 10, 1011분에도 비슷한 내용의 신고가 연달아 접수됐다. 그러나 경찰의 특별한 조치는 없었다.

 

 

  구태여 누군가에게 변명을 하거나 얼굴 붉히며 구구절절 그렇게 된 사연을 늘어놓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그런 곤란한 상황에 빠지길 원하지 않는다. 물론 앞서 말했듯 어쩔 수 없이 변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개중 어떤 상황에선 변명이나 거짓 보단 진실 된 사과가 먼저 아닐까. 진심이 담긴 사죄와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게 하지 않겠단 노력에 대한 약속이 먼저 아닐까.

  이태원 참사로 인해 대한민국 역사상 두 번째 국가 애도기간이 선포되었다. 과거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피격 사건 후 선포한 뒤로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4일 동안의 장례기간을 애도기간, 마지막 날인 429일 영결식이 있던 날을 국가 애도의 날로 정한 바 있다. 이태원 참사로 인한 애도기간은 사고 다음 날인 1030일부터 오는 115일까지 총 7일의 기간이다.

  애도란 무엇일까. 애도란 누군가의 죽음, 심한 정신적 고통, 불운을 슬퍼하는 일이다. 한자로 슬플 애와 슬퍼할 도를 쓴다. 슬픈 상태와 슬퍼하는 행동이 합쳐진 말이다. 슬픔에 대하여 슬퍼하는 일.

  한편 이태원 압사 참사와 관련해 오세훈 서울 시장은 지난 111일 사고 관련 입장발표회견을 열고 그곳에서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는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끝내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5일 추진하기로 한 이태원 추모 촛불 집회는 불허됐다. 시민단체 촛불행동은 서울 정무부시장실에 보낸 팩스에서 촛불 행사 관련 시설을 설치하겠다며 시민 통행로를 확보하고 안전조치를 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더불어 종로경찰서에 집회 시위 신청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사용 신청이 정식으로 접수되지 않았다며 집회를 불허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해 현재 서울시 25개구 자치구를 비롯한 전국 17개 시도에 합동분향소가 설치되어 있다. 지난 4일 한덕수 총리는 서울시내 합동분향소는 애도 기간인 내일까지 공식 운영 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분향소 철거 후 사고 관련 이태원 사고 원스톱 통합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진은커녕 희생자 이름도 제대로 명시되어있지 않은 합동분향소와 멋대로 정해진 국가 애도기간은 차치하더라도 애도기간의 종료와 분향소의 철거가 왜 동시에 이뤄져야 하는지 정말 나는 잘 모르겠다. 벌어진 돌이킬 수 없는 슬픔에 대해 충분히 슬퍼하는 일. 희생자를 기리고 추모하는 일. 그것에 정해진 기간이 정말로 있는 것인지, 그것이 정말 있다면 그것을 정할 권리를 누가 누구에게 부여한 것인지 나는 진심으로 묻고 싶다. 그것에 대한 아무리 하찮은 변명이라도 준비되어 있는지. 정말 진심으로 묻고 싶다.

 

이번 주 월드뉴스 인용은 생략합니다.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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