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 가현의 시 같은 나날, 내 플레이리스트에선 동요가 흘러

제 14회, 거짓말

2022.04.01 | 조회 422 |
0
|
금요시음회의 프로필 이미지

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거짓말처럼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아이가 하는 일이 있다.

돌멩이를 주워서 주머니에 넣기. 천 바닥의 물이끼가 흔들리는 걸 오래도록 들여다보기. 날리는 머리칼이 얼굴을 가르는 것을 느끼기. 쓰러져 있는 표지판은 왜 항상 일으켜 세운 다음에 제 갈 길을 가는지. 소년은 보여준 적도 없는 행동인데, 어쩜 너같이 구는 걸까 신기해했다.

 

소년은 차 안에서 우리 모녀가 유난히 빼다 박아 운전에 방해된다고 한다. 겁쟁이 모녀라고. 차창 밖으로 트럭이라도 지나가면 목이 사라지며 움츠러들고, 갑작스레 차선을 변경한 차를 피하려 핸들을 틀면 "아빠-아 선우가 놀랬잖아요 ! 조심해주세요 !!! " 힘주어 말한다. 안전띠에 집착하고, 고속도로에서 차가 평소보다 빨라지면 속도계의 바늘만큼 아이의 데시벨도 올라간다.

바닥이 훤히 다 보이는 다리 건너는 걸 무서워하고, 흔들다리는 꿈도 못 꾼다. 불이 꺼져있는 복도를 앞서 걸으면 몇 번이고 잘 따라오고 있느냐고 살핀다. 트램펄린에서 신 나게 뛰다가 덩치 큰 친구가 오면 혹시 자기가 넘어져 피해를 줄까 슬그머니 지루해진 척 내려오는 모습마저도 전부 나를 닮았다고 한다.

길 위에서 다친 고양이를 만나면 못 지나치고 도와줄 방법을 궁리할 때나 맨날 보는 아빠의 오랜 흉터를 볼 때마다 마음 아파하고 그 위에 스티커를 붙여주는 순간에도 내 얼굴이 덧입혀진다고 했다.

 

엄마는 손녀를 씻길 때마다 나를 생각한다. 얼굴에 물이 조금만 흘러도 앞이 안 보인다고 팔다리를 흔드는 선우 때문에. 눈에 물이 들어가는 게 무서운 가현이를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번쩍 들어 머리 감겨준 엄마였다. 나는 그때마다 "엄마 살려주세요, 떨어질 거 같단 말예요 !!!!! " 절규했다. 엄마는 선우와 목욕하면서 잊었으면 좋겠을 기억을 매번 소환한다. 지 엄마랑 똑같다고. 나도 선우가 공포에 질린 소리를 낼 때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간다. 금방이라도 바닥에 머리가 부딪칠 것 같은 공포의 순간으로, 엄마의 품으로.

 

나도 아이에게서 나를 본다. 선우는 그네를 타면 자기 발이 동동 떠있는 걸 너무도 무서워한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놀이터 순회의 마지막을 늘 그네로 장식한다. 혼자 탈 수 있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선우는 발을 구르고 붕 몸이 뜨면 “엄마아-! 나 날고 있어-어.” 말한다. 아이는 하늘을 안고 있다. 하늘은 바다같고, 중력을 거스르면 물 속에 있는 기분이 된다. 나는 아이가 만끽하는 자유로움을 제일 잘 안다.

공룡 영화가 보고 싶다고 해 '굿다이노'를 틀어줬지만 엔딩을 한 차례도 보지 못했다. 알로와 스팟에게 시련과 위기가 닥치는 시점에만 도달하면 울먹이기에 바빠서 채 끝을 보지 못한다. 공감성수치가 높은 내 유전자도 선우에게 갔는지 공룡이고, 사람이고 캐릭터가 곧 본인이 되어버려서 엄마도 잃고, 바위에 깔린 발을 아파하는 거다. 오감을 예민하게 세운 채로 힘들게 영화를 본다.

생긴 건 스쳐 지나가다 봐도 소년 딸인데 부정하고 싶지만 아이는 나를 많이 닮았다.

 

오래도록 관성처럼 내가 해온, 나에게 작은 성취감을 안겨주는 소박한 일을 아이도 하는 걸 발견한 날에는 더욱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장면을 만날 때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그 사이에서 소중한 보물을 찾은 듯 탄성을 지른다. 나를 아주 조금 더 사랑하게 된다. 작은 성공이었다.

다시 만나는 기분으로 산다. 유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지금껏 없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어린 가현이를 매일 만나고 있다. 과거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나는 분명 했던 실수를 반복할 것이고, 치기 어릴 테지만 이 아이는 부디 헛발질을 덜 하면 좋겠다. 내 바람이 아이를 발전시키지 못하더라도, 염치없이 아이가 겪을 실패를 몇 개는 털어주고 싶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아빠들이 하는 가장 큰 거짓말을 알게 되었다. 

 

“엄마도 엄마가,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서 몰랐어. 미안해."

 

그말은 틀렸다. 내가 아이에게 저지르면 안 됐을 일을 나는 반복한다. 뱉지 않았어야 할 말을, 꺼내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을. 언젠가 내가 듣고 상처받았던 말을 우리는 모를 수 없다. 상처는 잊지 못하면서, 아이의 모습은 상당 부분 나로부터 기인했다는 건 왜 이렇게 쉽게 잊히는지. 

사람이어서 실수를 반복할 수 있지만, 번복은 죄악이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일 말곤 우리의 거짓을 변제받을 방법은 없다. 문장을 변명으로 세우지 않는 게 제일 현명하겠지만, 육아는 언제나 녹록지 않으므로 쉬운 일은 아니다. 어린아이를 상대로 어른이 저지른 잘못을 합리화할 방법은 진짜,

없다.

 

저마다 차이는 있더라도 아이들이 가진 기억의 창고는 수습할  없을 정도로 광활한 영역이다. 아직 남은 공간이, 채울 공간이 많아서인지 촘촘히 새겨져 있더라. 그래서 우리는  사려야 하지만, 그러지 못하고 폭격을 터뜨리고 전쟁을 일으킨다. 평화를 무너뜨린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반복되는 사건사고 속에서 이전의 실패 또는 성공을 토대로 나은 선택을 하므로써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라 학창시절 선생님께 배웠다. 인간에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생이 주어지는 것은 같은 이유가 아닐까. 나의 삶을 돌아보고, 어려서 실수를 반성하고 개선하라는. 내가 받은 상처를 행하지 않으며 나보다 나은 인간으로 성장하는 아이를 보면서 위로받으라는.

 

 

 

       혐오를 만드는 정치인이 미디어를 활보하고, 평등 사회를 주장하며 정작 약자가 도달할 수 없는 공정의 기준에는 무감각한 세상이다. 이렇게 주어진 평등이 의미가 있나요, 스스로 좀 공정한 인간이 된 듯 하나요 ? 그리하여 떳떳해졌나요,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던가요 ?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쩌면 시대정신일지도 모르겠다. 당장 나만 해도 너무 나와 같은 이 아이를 미워하고, 목숨을 내어놓을 정도로 사랑하고, 그래서 가여우니까. 용기가 없어지는 건 당연하다. 겁나는 일이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아이를 낳은 건 정말이지 미친 짓이었다고 가끔 생각한다. 순전히 내 욕망과 욕심으로 태어난 아이가 세상에 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아끼며 살아가도록 키우는 일은 내가 응당해야만 하고, 기필코 해내야 하는 숙제이다. 하지 않아도 눈 딱 감고 손바닥 몇 대 맞으면 넘어갈 수 있었던 한여름의 방학 숙제라면, 그만큼 가벼운 정도의 것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끝내 아이를 울린 밤이면 생각한다.

오로지 내 등을 보고 자랄 애가 둘이라니, 이게 진실인가 아찔한 날도 있다. 오늘처럼 사람에 치여 마음이 못되게 되는 날에는 눈앞의 현실 말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사랑하는 두 아이의 존재가 차마 거짓이라면 좋겠다고 바라보기도 한다. 이 험한 세상에 감히 꺼내어서 미안해질 때마다 아이를 더 세게 안아본다.

폭닥 안기는 아이들의 작고 귀여운 몸뚱이는 거짓이 아닌 모든 것을 직시하게 한다오늘도 안 했으면 좋았을 일을 끝내 참았다. 내 뒷모습은 아이에게 거울이어서 나는 옳고 깨끗하 살아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그건 전혀 부담이 아니다사랑하므로 기꺼이 나를 닦는다. 묻은 때를 지워내면서 나는 투명해진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금요시음회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5 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6, 11층 1109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