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 매정한 취향수집

제 19회, 인연

2022.05.06 | 조회 4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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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오늘의 편지에는

평소 운명을 믿지 않는다 말해왔지만, 결국 믿어버리고야 마는 고백을 담았습니다.

 

 

평소 인연-이라는 말을 자주 쓰시나요? 인연은 꽤 멀리 있는 말 같아요. 반대로 운명-은 보다 자주 쓰이는 듯합니다. 인연보다는 운명이 더 원대한 의미를 품은 것 같은데 말이죠. '우리 운명인가 봐'하기는 쉽지만, '우리 인연인가 봐'는 왜인지 간질거려요. 인연이란 말엔 낭만이 묻은 것 같아요.

 

그래서 괜히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에겐 운명이란 말보다 우리 인연인가 봐-하게 됩니다. 낯간지러운 말을 빌려서라도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면서요. (이 말을 들은 친구가 있다면 제 마음을 알아주세요.)

 

이렇게 인연이란 말을 쓰길 좋아하면서도 운명이란 말은 잘 하지 않아요.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하고요. 사실, 운명을 믿는다고 말하면 모든 걸 우연에 기대는 사람처럼 읽힐까 두려워 주춤하는 거랍니다. 인연이라 적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건 같은데 말이에요.

 

인연은 서로가 잠시 겹쳐지는 듯하다면, 운명은 온전히 하나가 되는 의미처럼 느껴져요. 모든 것을 채울 수는 있겠지만, 인연이 더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언제나 불완전함에 이끌리니까요. 가득 찬 것보다 내가 채울 수 있는 틈이 있어야 마음이 더 기우는 것은 어찌할 수 없어요.

 

 

인연이란 말에는 왜인지 소라 언니 노래가 떠오릅니다. 그의 노래를 더 많이 사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사람 때문일 수도요. 겨울의 노래를 하는 그는, 겨울이면 이렇게 우리가 만난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에 대해 꼭 한마디하곤 했어요. 저는 좋아하는 것을 닮아버리고 마는 습관이 있는지라, 그의 말을 그대로 흡수해 반복하는 사람이 되었지요. 그렇게 순간의 닿음을 우리가 만든 운명 비슷한 것이라 믿게 된 것 같아요.

 

그래도 여전히 운명을 믿는다고 말하긴 싫어요. 운명은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 이미 정해둔 것이라면, 인연은 우리가 만든 것에서 시작된 듯하니까. 모든 인연은 우리가 만들었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 말하고 싶어요. 아무것 하지 않아도 생기는 일이 아니라요. 어떻게든 우리가 겹쳐졌기에 만든 것이라고요.

 

 

이소라 - Track 3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이라 되뇌이는 노래는 왠지 인연처럼 느껴져요. 소라 언니 7집의 노래 제목들은 Track 1, Track 2, Track 3 등으로 지어져 있어요. 노랠 부르실 때면 1번 곡, 2번 노래- 이렇게 칭하시더라고요. 분명한 제목을 붙이지 않은 이유는 듣는 사람이 이름 짓기 위해. 얼마나 다정하고, 세심하고, 재미있기도 한 배려인가요. 이 노래는 3번 곡인데요. 저는 이 노래를 '인연'이라 부를래요.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있고, 그곳에서 우리가 만난다면 그게 우리의 인연 아닐까요? 심지어는 사랑과 존재 자체에 대한 찬가로 들리기까지 해요. 모르는 누구라도, 아픈 나의 손을 꼬옥 잡아주어 외로움을 분홍빛으로 녹인다면. 그만한 인연이 어디 있겠어요.

 

이 노래를 좋아한다 말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의 전구가 켜지는 기분이에요. 저는 같은 것을 좋아한다면 바로 인연이라 부르고 싶어져요. 어떻게 우리가 같은 걸 좋아할 수 있지? 하면서요. 그 많은 노래들 중, 이소라의 노래를 좋아하고, 그 중 '인연'을 좋아한다면. 그게 인연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어요. 특히나 저는 '좋아함'에 쉽게 마음 내어주는 사람인걸요.

 

 

자, 이제 모든 것에 인연이라 이름 붙여 볼까요.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10년이 넘도록 서로 할 말이 너무 많은 나의 친구들. (하지만 너희는 감히 운명이라 부르고 싶어. 나의 힘이 아니더라도 학교 담벼락 덩굴처럼 질기게 엮어 섞인 평생이고 싶어. 사랑해 애드라)

 

 

몇 해 전 만우절의 작당 모의를 시작으로, 시들었던 마음을 서로 채우고, 사랑과 글의 힘을 믿고, 누군가는 결혼을 하고 아이와 함께하기까지. (사실 나는 이것도 운명이라 생각해. 내가 구태여 애쓰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나를 좋아해주었는 걸.)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

 

사실 요즘, 정말 어처구니없는 계기를 통해 열정적으로 좋아하게 된 것이 있는데요. 부끄러우니까 비밀입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과하게 활동적인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어처구니없다고 적었지만, 저는 이런 것도 모두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짧은 순간 좋아하는 것이더라도 열심히 하려고 해요. 내 마음을 쏟으며 사랑할 수 있는 순간을 놓치는 건 너무 아쉽잖아요. 살면서 무언가를 좋아하며 들뜰 시간이 많지 않은데, 그중 하나가 찾아온 것이니까요. 부끄러워 적어 보내지도 못하겠지만- 아무튼 전 지금 매우 즐겁답니다.

 

 

계속해서 인연이라 정리했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 있다고 생각하긴 해요. 각자의 새끼손가락 끝에 매어진 붉은 실 이야기처럼요. 저는 그 실을 기다리는 걸지도 몰라요. 우연이 겹쳐 인연이 되고, 그 인연을 향한 사랑이 한계를 넘으면 비로소 운명이라 부르고 싶어지는 걸까요? 운명을 믿지 않는다 말하는 저는 어쩌면, 누구보다 운명에 기대고 싶은 것일 테고요. 끊어질까 겁나는 인연들이 있으니까요.

 

 

구독자님은 어떻게 이 편지를 받게 되셨나요?

아직 운명이라 말하기보다 인연이라 설명해볼까요.

우리의 인연이 벅차 넘칠 때가 온다면

붉은 실, 그런 것을 믿으며 비로소 운명이라 불러보아요.

 

 

 

 

 

 

사랑이 그대 마음에 차지않을 땐 속상해 하지 말아요.

미움이 그댈 화나게 해도 짜증내지 마세요.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love is always part of me

 

너무 아픈 날 혼자일 때면 눈물 없이 그냥 넘기기 힘들죠.

모르는 그 누구라도 꼭 손 잡아 준다면 외로움은 분홍 색깔 물들겠죠.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love is always part of me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love is always part of me

 

love is always part of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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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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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스타

    0
    over 2 years 전

    입버릇처럼 '내 팔자에 무슨...' 을 달고사는 편인데 제 팔자엔 좋은 글 얻어갈 기회가 잇엇던 모양입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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