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김화랑의 생생 월드 쏙쏙

제 13회, 빛

2022.03.25 | 조회 3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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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처음 빛이란 개념에 대해 생각한 게 언제였더라.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그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책을 처음 읽었다. 당시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두꺼운 책을 아무거나 집어다가 그 책의 내용과 재미와 상관없이 무조건 완독하는 나만의 챌린지를 하고 있었는데,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없을 것이다) <코스모스>는 그 챌린지에서 <상실의 시대> 다음으로 나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책이다.

  물론 <코스모스>가 빛에 대한 개념만을 설명하고 있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 대해 말하며 그때까지 나에게 정립되어 있지 않던 빛과 공허라는 개념에 대해 알려주었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빛과 공허에 대한 개념은 그저 그 단어의 반복 혹은 읊조림에 불과한 것이었다. 내가 인지하고 있던 빛이 고작 아르곤으로 가득 채워진 형광등에 불과했다면 새롭게 알게 된 빛의 개념은 내가 살고 있던 지구를 단숨에 작고 나약한 창백한 푸른 점으로 보이게 할 만큼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고,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는 것만 같았던 세상 어딘가에 사실은 실측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커다란 빛과 공허와 어둠이 있었다는 사실.

  당연히 책을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지만 (예를 들어 이런 문장이 있다. 예시를 들기 위해 찾아낸 것이다. p.62. ‘우주 생명이 들려줄 음악은 외로운 풀피릿 소리가 아니라 푸가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우주 음악에서 화음과 불협화음이 교차하는 다성부 대위법 양식의 둔주곡을 기대한다. 10억 개의 성부로 이루어진 은하 생명의 푸가를 듣는다면, 지구의 생물학자들은 그 화려함과 장엄함에 정신을 잃고 말 것이다.’ 이런 문장 말이다.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도 잘 모른다) 그러나 그저 그런 개념을 접하고 공상에 빠지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코스모스>를 조금 인용해 말해보면 천문학에서는 빛의 빠른 속도를 이용하여 거리를 측정한다. 코스모스는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길이 단위로는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빛은 1초에 약 186000마일 또는 거의 30만 킬로미터, 즉 지구 7바퀴를 돈다. 빛은 태양에서 지구까지 약 8분 정도면 도달한다. 그러므로 태양은 지구에서 약 8광분(光分)만큼 떨어져 있다. 빛은 1년이면 10조 킬로미터, 6조 마일을 간다. 천문학자들은 빛이 1년 동안 지나간 거리를 하나의 단위로 삼아 1광년(光年)이라고 부른다. 광년은 시간을 재는 단위가 아니라 거리를, 그것도 엄청나게 먼 거리를 재는 단위인 것이다.

  단위로서의 빛의 개념에서 볼 때 우리는 과거의 빛들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태양은 언제나 지금으로부터 8분 전의 태양이다. 또 밤이 되면 우리는 조금 더 아득해진다. 달빛이 지구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초에 불과하지만 별빛은 다르다. 수십 년 전, 혹은 수억 년 전 머나먼 별에서 반사되어 출발한 빛이 매일 밤 우리 머리 위에서 빛나는 것이다.

The moment of rainbow clouds with colorful colors in Tokyo
The moment of rainbow clouds with colorful colors in Tokyo

  빛의 과거를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빛의 산란을 생각해도 마찬가지다. 산란이란 물리학에선 파동이나 입자선이 어떤 물체와 충돌하여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 현상을 말하지만, 한글 차원에서 보면 산란하다는 말은 무언가 흩어져 어지럽거나 어수선하고 뒤숭숭하다는 뜻이다. 중학교 시절 나의 작은 방을 밤마다 비추던 주황색 가로등 불빛을 기억한다. 어떤 날엔 일부러 불을 켜지 않고 가로등 불빛에만 의지해 책을 읽곤 했다. 달빛의 속도를 몰랐던 시절의 이야기다. 주로 유럽의 고전문학을 읽으며 이른 밤을 보냈던 시절. 나의 밤은 고요했고 또 어수선했고 산란했다. 언제나 바쁘신 부모님들의 부재 속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보냈던 많은 밤들. 언젠가 학교 운동장에서 보았던 무지개도 생각난다. 그 빛의 산란. 하굣길에 무지개를 발견하고 나는 그대로 운동장에 드러누워서 그 풍경을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격한 둥근 원형의 무지개였다. 빛의 산란이니 하는 개념 따위는 몰랐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지난 20206, 일본 도쿄 상공에 무지개 구름이라는 희귀한 현상이 포착되었다. 이는 SNS를 통해 빠른 시간 동안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었다. 하늘의 여러 가지 빛깔의 불꽃이라는 의미로 불 무지개라고도 불리는 이 광학현상은 사실 무지개보다는 태양이나 달, 가로등 같이 강한 빛 주위에 생긴 동그란 고리처럼 보이는 무리 현상에 가깝다. 광륜(廣輪)이라고도 한다. 다른 곳에서는 희귀한 현상이지만 미국 등 북미에서는 생각보다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한다.

The moment of rainbow clouds with colorful colors in Tokyo
The moment of rainbow clouds with colorful colors in Tokyo

  과학적 사실이야 어찌 됐든 빛은 아름답다. 빛의 확산도 산란도 명멸도 존재도 모두 아름답다. 우리는 좋든 싫든 과거의 빛 속에서 빛에 의지해 살아간다. 언젠가 그 바닷가에서 당신을 향해 다가오던 파도를 비추던 빛도, 언젠가 당신이 말없이 들여다보던 눈동자 속 빛도 모두 과거의 빛. 우리는 매일 빛이, 우리의 눈길이 닿는 곳까지 바라보고 눈빛이 닿는 곳까지 세상을 인식한다. 언젠가 당신을 사랑하는 누군가를 바라보던 눈빛도, 미안하다 말하며 바라보던 그때도, 지금도 모두 과거의 빛 속 어딘가. 어린 나의 작은 방을 비추던 가로등 불빛도, 언젠가 단숨에 뛰어들었던 해질녘 오키나와 해변의 윤슬도 모두 과거의 빛. 오늘도 그 빛 속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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