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 소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삽니다. 얼마 전 읽은 책은 한 권 빼곡히 불확실에 대해 적고 있었어요. 불안을 다스리는 방법은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하더라고요. 그중 우리가 가장 불안해하는 소멸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죠.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불안은 죽음에 대한 것일 텐데 그를 다스리는 법은 말처럼 쉽지 않고요. 모두의 삶은 소멸과 죽음으로 향하지만 그런 결말을 받아들이는 건 생의 끝에서도 어려울 것만 같아요.
사실 저는 꽤나 퉁명한 편입니다. 모든 소멸과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그 어쩔 수 없는 필연을 받아들이려고 해요.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려고 노력합니다. 소멸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기엔 품고 사는 걱정이 너무 많아서, 그중 가장 큰 것을 가장 퉁명스레 대해보려고 애쓰는 일종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어요.
몇 해 전, 3년 내리 장례식을 겪으며 죽음을 닦고 보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올해는 주변의 죽음이라는 불운은 피해갈 듯싶어요. 참 다행이지요.
태어나 장례식을 가 본 것도 한두 번이 전부였던 과거가 아득할 만큼 상복을 입거나, 입을 필요도 없이 다급하게 누군가를 떠나보냈어요. 그러면서 죽음은 숨의 끝이 아닌, 말 그대로 소멸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하게 됐어요. 세상에 어떠한 흔적으로라도 남아 있으면 소멸하지 않는다고요. 숨이 멈춰 떠났을지 몰라도 물리적인 당신의 흔적이 모두 사라지기 전까지는 그 죽음이 실감 나지 않습니다. 묘를 쓰지도, 납골당에 모시지도 못했던 때가 제가 경험한 소멸 그 자체였던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을 겪으니 소멸의 단계는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가듯 조금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런 일들을 겪기 전까지만 해도, 장례식이라는 절차에 대해 회의감이 컸어요. 형식적이라고만 생각했었죠. 남들 다 하고, 안 하면 죄짓는 것 같으니까 하는 거라고요. 죽음을 굉장히 냉대하던 시기였어요. 하지만 이제는 장례식을 소멸의 절차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를 온전히 떠나보내기 위해 그나마 시간을 들여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떠난 뒤 치를 장례식을 미리 계획해뒀어요. 원치 않더라도 언제고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니까요. 어떻게든 준비해두고 싶어서요.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남겨두는 거예요. 이 이야기는 친한 친구들 몇에게만 한 적이 있는데요. 오늘 이렇게 편지를 적어 보내니 구독자님도 제 유언의, 장례식의 증인이 되어주셔야 해요.
우선, 장례식은 이틀 차에 딱 하루만 치를 거예요. 첫날은 다들 소식을 듣고 저를 찾아올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진심으로 저의 죽음을 슬퍼해 주고, 어떻게든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은 친구라면 꼭 시간을 내 와줄 거라고 믿어요. 그게 아니라면, 굳이 소중한 시간을 빼서 제가 없는 자리에 저를 위해 인사하러 오게 만드는 게 미안하거든요. 남은 하루는 각자 편하게 쉬면서 보냈으면 좋겠어요. 특히, 가까운 사람들은 며칠 일을 쉬기도 하잖아요. 괜히 하루 이틀 더 고생하지 말고, 제가 주는 휴가라고 생각하면서 편히 보냈으면 좋겠어요. 마음도 편치 않을 텐데, 부족했던 낮잠이나 자면서 마지막으로 제가 준 선물처럼, 휴가를 즐기길 바라요. 저를 핑계로 삼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테니까요.
그 하루의 장례식에는 조금 특이한 매뉴얼이 존재합니다. 우선, 음식은 안 돼요. 냄새나는 거, 싫어하거든요. 그쯤은 이기적이어도 되지 않을까요? 대신 아주아주 맛있는 커피를 준비할게요. (제가 할 수는 없으니, 사랑하는 친구들이 대장이 되어 준비해줬으면 좋겠어요. 부탁할게!) 저는 커피를 좋아하지만 커피를 잘 못 마시는 친구들도 있으니, 따듯한 차도 준비해둘게요. 얼죽아라고요? 괜찮아요. 저도 얼죽아라서, 얼음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리고 맛있는 디저트! 빵! 진한 버터맛 가득한 크루아상도 좋고, 바삭 촉촉한 까눌레도 좋아요. 생크림 케익도 너무너무 좋죠. 저는 초콜릿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매번 저 대신 남는 초콜릿을 먹어주는 친구들이 찾아올지도 모르니 맛있는 초콜릿 디저트도 부탁할게요.
그렇게 따듯한 차 한 잔 하고 갔으면 좋겠어요. (커피도, 얼음도 있고, 한 잔이 아니어도 좋지만 왜인지 '따듯한 차 한 잔'이 가장 낭만적으로 들리니 그렇게 적을래요.) 제 덕분에 오랜만에 만날 친구들과 일상의 불평불만을 풀어 놓기도 하고, 제 욕을 해도 재밌겠네요. 그래도 저로 인해 다들 만났다는 건 기억해주길 바라요. 제가 이야길 전하며 서로 이름만 알던 친구들이 진짜 친구들이 돼도 너무너무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저의 장례식에는 플레이리스트가 존재합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소개하고 들려주고, 보여주는 걸 정말 좋아하잖아요. 온전히 저를 위한 자리니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의 취향을 소개하고 싶어요. 이거다-싶은 노래가 생길 때마다 한 곡 한 곡 채워가고 있어요. 언젠가 제대로 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싶은데, 아직 머릿속에만 있네요. 늦지 않게 만들어둬야 할텐데 말이에요. 오늘은 장례식에 틀 노래들을 골라둬야 되겠다 느꼈던 첫 노래를 알려드리고 갈게요.
2019년 생일날, 공연에 갔어요. 생일날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정말 감격스러웠죠. 너무 밝고 예쁜 곡인데, 그날따라 완벽한 마무리로 느껴지는 거예요. 공연의 중간이었는데도 그냥 거기서 끝났으면 싶을 정도로요. 이렇게 예쁜 마무리가 존재할 수 있다니. 그래서 저의 마지막도 이 노래로 채우고 싶어졌어요. 이 노랠 같이 들으면 과정이 어땠든 삶을 예쁘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상한 표현이지만, 노래가 끝나는 순간 정말 죽는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제 장례식에 꼭 틀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태양보다 뜨겁게, 저 달보다 따뜻하게, 별보다 더 환하게 너의 날들을 비춰 줄게-하는 다정한 노래인데요. 마지막 가사가 이래요. 우리 처음 널 만났던 때로, 약속했던 그곳에서 꼭 만나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저와 닮지 않아서 더 좋아해요. 저는 죽음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믿거든요. 그런데 저를 떠나보내고 남아 있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는 믿지 않는 어딘가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러면 버티기가 조금은 괜찮을 수도 있으니까. 내가 먼저 가서 널 기다릴게, 누구보다 예쁠 너의 날들을 지켜보면서, 널 그대로 사랑하면서 기다리겠다고. 그러니 우리는 여전히 '우리'이고 함께라고. 스스로 믿지 않는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그러고 싶어요.
재회의 순간이 온다면 처음 만났던 때보다 더 사랑스럽고 반갑겠죠? 기다림은 슬프고 괴롭지만 '다시'는 계속해서 사랑하고 견딜 힘을 주니까요. 언제가 될지 모를 재회를 약속할 수 있는 사이라는 게 좋아요.
원래는 세상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흐르는 물에 녹듯 사라지고 싶었는데요. 이젠 아니에요. 저와의 재회를 그리워하며 살아갈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를 작게나마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쯤은 기꺼이, 기쁘게 받아들이려구요.
긴 편지를 마무리할 때가 왔습니다. 구독자님께 제 장례식의 첫 곡을 미리 들려드려요. 참, 제 묘비명에는 '저의 죽음을 슬퍼해 주어서 고맙습니다.'라고 적어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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