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시음회] 가현의 시 같은 나날, 내 플레이리스트에선 동요가 흘러

제 46회, 사과

2022.11.12 | 조회 3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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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시음회

마음을 움직이는, 움직였던 문장들을 드립니다.

 

 

길을 걸어가다 반대로 걸어오던 사람과 부딪히면 나는 미안하다 말한다. 카페에서 직원이 물을 쏟아도 제가 거기에 있어서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그랬다. 미안하다 말하는 게 입버릇이라며 소년은 늘 염려스러워했다. 잘못하지도 않은 일에 무수히 사과만 하다가 나이 먹겠다고, 우리 미안하단 말보다 고맙다 하면서 앞으로의 날을 살아가자 타이른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욱 조심해달라고 말했다. 신경 써서 의식하고 행동했으면 한다고. 서둘러 미안하다고 말하는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아. 그러나 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나는 세 살 버릇이 여든 간다고 쉽게 고쳐질 리가 있나. 소년은 내가 어느 곳에서건 터무니없이 미안하다 말할 때마다 미간에 힘을 주고 옆구리를 쿡 찌르며 신호를 준다.

 

뭐든 늦었던 선우는 우리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아주 잘해 이제는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재잘재잘 종일 쉬지 않고 떠든다. 엄마 소리는 하루에 최소 이백 번은 부르는 것 같고,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아가에게 틈만 나면 사랑한다 말하는 아이로 자랐다. 신통방통한 말도 하고, 제법 귀여운 소리도 한다. 그거 알아 ? 하며 애니메이션과 책에서 본 정보를 우리에게 일러주기도 한다. 멍하게 있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뜬금없이 말한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어디서 배웠을까. 미안하단 말을 시작했다. 사과를 하는 건 배워야 하는 일이지. 그러나 툭하면. 건드리기만 해도 하니 난처해 어쩔 줄 모르겠다. 소년이 나를 볼 때 이런 마음이었다는 걸 골백번 이해하고 있다.

밥 먹다가도, 물을 마시다가도, 화장실에서도 경중을 모르고 매번 사과한다. 이유는 있다. 밥을 먹기가 싫어서 미안하고, 물 마시다 흘려서 미안하고, 젖은 화장실 바닥 위를 걷기 싫어 미안하다고. 또 신발이 안 신겨져서 미안하고, 사탕을 좋아해서 미안하고, 노래를 시끄럽게 불러서,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서 미안하다고 한다.

 

소년은 미안한 상황과 울 상황을 구분해낸다. 아이의 기준과 자기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고 말해줘도 나에게 일러주듯 미안한 일이 아니야, 그건 고마운 일이지. 이건 울 일이 아니지. 선우가 씩씩하게 이겨내야 하는 일과 흠뻑 젖게 울어도 된다며 품을 내어주는 일을 알려준다. 너무 냉정할 때도, 가차 없기도 하지만 더없이 따뜻하기도 한다. 나와 정말 다른 사람이어서 다행이기도, 가끔은 그런 당신이 무척 싫기도 하다.

 

 

머리가 좀 큰 지금은 미안하지 않은 일에도 미안하다 한다. 무마하기 위함일 때가 많고, 어떤 날에는 미안함을 표시했는데에도 우리가 쉬이 나긋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런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소년은 미안한 사람의 태도가 아니잖아. 혹시 화를 내고 싶어 ? 그러면 화를 내야 하는 거야. 억울할 때는 사과하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닌데 왜 자꾸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야 ! 아이를 혼낸다. 그도 그럴 것이.

 

" 미안해 ! 미안하다구 !!!!! 미안해-요 !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 “ 로 진화하니까.

 

나는 설명해준다. 선우가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는 것처럼, 그래서 잠시 방안에 가 있고 싶을 때처럼 엄마 아빠도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선우가 엄마아빠의 마음을 다치게 하면 미안하다는 말에도 쉽게 풀리지 않기도 해.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줄래. 후하. 숨을 고르고 엄마아빠가 선우를 다시 안아줄 때까지 아주 적은 시간이면 된단다.

 

그러면 엄마를 슬프게 해서, 아프게 해서, 힘들게 해서, 번거롭게 해서, 하다못해 가끔은 기쁘게 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 선우는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미안해. ”

 

선우와 투닥이다 서로의 마음이 다쳤을 때, 녀석이 내게 건네는 사과는 언제나 나를 깊이 빠뜨렸다가 번쩍 떠오르게 한다.

 

 

아침이다. 준우보다 먼저 일어난 선우가 이른 시간부터 소고를 신 나게 치다가 쉿 ! 아가가 자니까 큰 소리를 내면 안 되겠지 ? 준우가 일어난 다음에 치면 좋겠다. 그러면 작게 소리를 내면 되지. 퉁퉁에서 통통으로, 통통에서 콩콩으로, 콩콩에서 동동으로. 치치 말아줄래 ? 이따가 아가가 일어나면 함께 놀자 ! 제안하는 내 말에 선우는 작은 반항을 한다. 찌릿. 눈빛을 보내자 알겠어, 알겠다구 ! 미안해 !!! 말하며 소고를 내려둔다.

 

같이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먹고 바깥을 보고 있는데 나무에 새가 날아와 앉더니 짹짹짹짹 운다. 그러자 선우가 !

 

“ 짹짹이야 ! 울지마 ! 준우가 아직 코코 자고 있단 말이야 ! 조용히 해 !!!

짹짹이는 미안하단 말도 못하는 똥강아지야, 그렇지 엄마 ? 어휴. 아가가 깨면 안 될 텐데. “

 

그러게나 말이야. 훌쩍 날아가 버린 새를 붙잡을 새도 없이 방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기어이. 아가가 깨었다.

 

“ 짹짹이는 사과도 할 줄 모르는 말썽꾸러기. 선우는 사과를 잘하는데. 그렇지, 엄마 ? “

 

세상에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너를 꺼내어 두기가 이 엄만 너무 무섭단다. 마음이 하나도 담기지 않은 미안함이란 얼마나 하찮고, 무용한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단다. 표정이 조금 심각해졌는지 선우가 괜찮은 거야 ? 묻는다. 엄마는 조금 울고 싶네, 하니까.

 

“ 엄마 내가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

 

그래. 사랑해서 미안한 것보단 미안하다, 사랑하다 말하는 게 듣기는 더 좋네. 그런데 선우야, 선우 때문은 아니야. 사과하지 마. 미안하다 말해야 하는 이들은 따로 있는 걸. 마치 날아가버린 저 새처럼 말이야.

 

아이 둘을 안고선 유난히 흐린 하늘을 본다. 내가 쉽게 미안하다 말하는 사람이어서 더 이해할 수 없는 걸까. 과연 언제쯤 기분이 나아질 수 있을까. 평범한 어느 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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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습니다.

오랜만에 '토요시음회' 라고 소년이 진심으로 깊이 사과하고 오라고 하더군요.

부지런히 세이프를 만들어 두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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