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감정은 물리적인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고 여기지만, 저는 사랑의 흔적을 믿습니다. 겨울 외투에 붙어오던 그 사람의 머리카락 따위의 것들이요. 더욱 깊게 새겨지는 흔적도 있지요. 닮아가는 것. 저는 그 무엇보다, 닮아가는 것은 불가항력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을 의심하는 지점에 호기심이 있다면, 사랑의 시작에는 동경이 자리합니다. 그가 가진 것, 그가 좋아하는 것, 그가 보고 듣는 것. 왜 이걸 가지겠다 마음먹었을까, 왜 이걸 좋아할까, 이걸 보고 들으며 어떤 생각과 감상을 품었을까. 상대를 이해해보겠다는 사랑의 다짐은 그를 닮아가게끔 만듭니다. 사랑의 시작에 동경이 있는지, 동경으로부터 사랑이 시작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내가 이 대상을 사랑하는구나' 깨닫는 순간이면 늘 이미 닮아가고 있었거든요.
그를 사랑하여 따라 해보겠다고, 닮아보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사랑이 떠난 뒤에도 나에게 흡수되어 온전히 나만의 가치로 남곤 합니다. 그것이 사랑의 흔적이자, 영향이자, 잔여물이겠지요.
사랑 이야기로 시작해서 오늘의 취향은 과연 무얼까 궁금하실 것 같은데요. 오늘은 특정한 형태의 사랑에 대해 적어보려고 합니다. 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덕질'입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이기 전부터 뜨거웠던 화제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올 9월에는 정식 개봉을 했고, 지금까지 10회차가 넘는 GV가 이어지고 있어요. 영화 소개부터 옮겨볼 텐데요. 영화 소개 중 이렇게 흥미를 자극하는 문구가 있었나 싶어요.
어느 날 OPPA가 범죄자가 되었다
'최애'를 부르는 그 오빠가 맞습니다. 감독님께서 청소년 시절부터 덕질해오던 오빠가 어느 날 범죄자가 되어버린 뒤, 아직도 그의 편을 드는 사람은 왜 그럴까-라는 호기심에서부터 영화가 시작됩니다. 왜 그를 잊지 못하는 걸까, 다름 아닌 성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제목이 '성덕'인 이유는 감독님께서 성덕이셨기 때문인데요. 영화에 그런 고백이 나와요. 그를 닮고 싶어서 기타를 샀고, 추운 겨울날 라이더 자켓을 입었고, 자유로움을 닮고 싶었다고요. 좋아하는 이가 하는 것은 더욱 멋져 보이고, 닮고 싶어지는 것. 동경하는 마음에서부터 우러난 사랑은 가치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저는 지금까지 영화를 두 번 보았어요. 첫 감상 때는 어느 시점부터 웃음이 터지기 시작해서, 때로는 탄식도 하였지만 대체로 웃으며 봤습니다. 두 번째 볼 때는 정말 심각했어요. 솔직히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내용이니까요. 덕후로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애까진 아니더라도 차애, 차차애, 차차차애... 누군가는 사회면에 데뷔했을지도 모릅니다.
최애를 향한 팬들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측면이 있죠. 쉬운 말로 명확하게 표현하기 어려운데요. 어쩌면 평생 한 번도 닿지 못할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부터가 무조건적이지 않을까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떻게든 가까이 다가가고 싶고, 실제로 마주해 말을 섞기도 하지만 덕질은 그 누구의 압력에 의해 시작한 것이 아니니까요. 자발적으로, 나에게 먼저 다가온 적 없는 대상을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쉽게 설명하겠어요.
사랑을 중독이라 표현하기 아이러니하지만, 덕후 DNA를 가지고 끊임없이 덕질을 해오셨다면 공감하실 거라고 생각해요. 덕질은, 사랑은 중독입니다. 덕후로 태어남을 인정했다면 대상이 어떤 것이든 온 마음 다해 사랑할 것을 갈구합니다. 내 삶의 목표 중 하나가 무엇에 사랑을 쏟는 일인 양 에너지를 다하죠. 그런 마음을 바탕으로 닿고 싶다는 기대와 염원이 더해지면, 그가 남긴 흔적들을 살피기 시작합니다. '여기에 가서 밥을 먹었대, 이 노래를 좋아한대, 이 영화를 봤대, 이걸 갖고 있대-' 하면서요. 그와 무언가 닿기를 열망하거든요. 가깝지만 너무 먼 당신이기에 더욱 동경에 몰입하는 것일지도 몰라요. 이런 점에서 동경이라는 사랑의 흔적이 가장 강렬하게 작용하는 형태는 덕질이 아닐까 싶고요.
어느 날 OPPA가 범죄자가 되어-서 평생 사회와 격리되길 바라도 지나간 덕질과 동경으로 얻은 가치들은 놓을 수가 없습니다. 나의 사랑을 받으며 뒤로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끼기도, 나의 사랑이 그런 일을 저지를 무력을 준 것은 아닐까 자책하면서도 이미 저에게 새겨진 것들을 단숨에 도려낼 수는 없어요. 그를 보고 닮아보겠다 다짐한 것이었지만, 결국 좋은 점만을 동경하며 닮은 건 저이니까요. 그런 사람에게서도 좋은 점을 발견해낸 것은 재능이 아닐까- 아니, 그가 좋은 점만 보여주려고 포장했겠지- 내가 어리석었다- 이런 갈팡질팡한 마음속에서도, 이미 가진 좋은 것을 놓기란 참 어렵습니다.
저는 사랑하면 세상에 소문내고 다니는 편이라, 저의 덕질은 비밀에 가깝지조차 못했어요. 네, 저도 OPPA가 범죄자가 된 경험이 있습니다. 범죄까지는 아니더라도 물의를 일으킨 경험도 여럿 있고요.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의 이름이 볼드모트라도 되는 것처럼 언급하길 꺼립니다. 온 마음 다해 사랑하던 과거를 바로 옆에서 목격한 친구들에게조차도 이니셜로만 표현할 정도예요. 내가 그의 좋은 점을 봤다-고 적었지만 실은 내가 그렇게 보는 눈이 없나-하는 자괴감이 더욱 큽니다. 사실, 며칠 전에는 친구들에게 "내가 지금 좋아하는 이 사람도 언젠가 터지는 거 아니야? 그만 좋아할까 봐. 내가 좋아하면 다 터지네. 탈덕할래-"라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꺼내기도 했고요.
다시금 동경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저는 덕질을 하며 동경했던 일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로 인해 알게된 세상이었지만 결국 그걸 제 것으로 만든 건 저였고, 저는 그 안에서 저를 발견했거든요. 범죄는 제가 저지른 것이 아니고요.
그를 동경하며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에 나온 노래를 들었고, DVD로 구해야만 하는 영화를 봤고, 지구 반대편의 예술가를 알았고, 나의 존재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어요. 상처로 끝났지만 따지고 보면, 저에겐 얻은 게 더 많은 관계입니다. 그 사람이 준 피해를 생각할 때면 이런 마음을 품어도 되나 망설이는 건 아마 평생 지속되겠지만요.
사랑하며 얻는 상처는 연인과의 관계나 덕질이나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가족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고요. 상처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어요. 이는 마치 중력의 작용과도 같습니다. 저 멀리 우주로 벗어난다면 혹시 모르지만, 다른 별에 당도한다면 다시금 그곳의 중력에 이끌리는 것처럼요. 사랑한다면, 상처받을 수밖에 없어요. 사랑하니까요. (왜인지 어떤 정치인의 말장난이 생각나지만 무시해주세요.)
물리적인 피해를 가한 사람을 향했던 사랑을 고백하는 건, 정말 너무나도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편지도 에둘러 말하고, 더 횡설수설 하겠지요. 그런 점에서 <성덕>은 참 용감한 영화예요. 이런 나의 '흑역사'를 만천하에 드러내며 '백역사'로 만들어보겠다는 용기가 존경스럽기까지 해요.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르면서도, 그 노래를 부른 밴드의 멤버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점에 할 말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사랑은 죄가 없잖아요?
어느새 인생의 절반 이상을 덕후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사랑하길 그만두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어요. 형태가 어떻든 사랑은 우리 삶에 생기를 주고, 앞으로를 기대하게 하고, 지나온 기록을 되짚게 하는 힘을 가졌습니다. 사랑으로 상처받더라도 우리는 사랑으로 인해 새로운 감정을 품고, 미지의 세상을 만납니다. 그 대상이 잘못을 저지를지도 몰라-하는 걱정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포기하기엔, 세상에 사랑해볼 만한 것이 너무 많아요.
지금 마음에 품은 것이 내일 당장 지뢰로 돌변할지 몰라도, 저는 오늘 사랑할래요. 사랑하는 일이 재미있고 신나거든요. 사랑을 즐길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달려 볼 거예요. 사랑의 다짐은 죄가 아닌 행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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