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날씨가 지나치게 좋다. 화창하다는 말도 의미를 잃을 지경이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햇빛이 찬란하게 등 뒤로 내리쬔다. 그러나 먼 곳에서는 자꾸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온다. 산불이 연달아 발생하고 산림청 소속 공무원 분들이나 소방관 분들이 고생하는 모습이 관습처럼 아침 뉴스 서두를 채운다. 한낮의 길을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며 걷는다. 나는 여기에 있고 먼 곳에 있지 않으니, 몸은 안온하고 안온한 몸은 어두운 마음에게서 자꾸 고개를 돌린다. 안타까운 마음을 한 켠에 품고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몫만을 감당하며 사는 게 인간이라며 그저 걷는다. 부디 모두 평안하길.
신을 믿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세상 모든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작년 그리스로 여행을 떠났을 때 나와 아내는 크레타 섬에 들렀다. 에게 해 한가운데 위치한 아름다운 섬. 우리는 해변을 걸었고 바다에 몸을 담군 뒤 해변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 바닷물은 따뜻했고 곳곳에 고양이가 많았고 사람들은 즐겁게 웃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야 나와 아내가 크레타 섬을 떠난 이틀 뒤 그곳에 지진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는 모양이었다. 모든 것은 우연일까. 거칠고 아름다웠던 크레타의 풍광을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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