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고실험] 에피소드는 현 시점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 중 하나이자, 20년 넘게 구글이 지배해온 검색시장에 균열을 내고 있는 AI 검색엔진 퍼플렉시티Perplexity의 아라빈드 CEO와 함께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스럽게 사용 중인 서비스기도 하고, 앞으로 인터넷 역사에 남을 중요한 회사가 될 거라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뷰에 임했는데요. 영어로 진행된 데다 AI라는 주제가 낯설게 느껴지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만큼 시간 내어 시청하실 가치가 있도록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영상 링크를 서두에 달아달라는 구독자분의 피드백을 받아 먼저 적어둡니다 :)
0 저는 지금 동네 카페 구석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채널을 오픈한 지도 3주가 지났는데요. 그동안 여러 일로 너무 정신이 없었던 터라, 커피를 앞에 두고 천천히 글을 쓰는 시간이 더없이 호사스럽게 느껴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채널 오픈 직후에 느낀 감정을 잊기 전에 기록해두려 합니다.
1 먼저 2024년 10월 4일의 기억. 자랑은 못 되지만 저는 발행날이 되면 꽤 예민해지는 편입니다. 시야가 좁아져서 화면밖에 보이지 않고 누가 불러도 잘 못 듣기도 합니다. 패시브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혼자 중얼중얼거리는 습관이 들어버려서, 발행날에는 출근을 안 하고 재택을 하는 게 루틴이었습니다.
2 하지만 그날만큼은 혼자 집에서 발행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나름 격을 차리고 싶어 촬영날도 아닌데 셔츠까지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외장하드를 두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 덕에 왕복 2시간을 낭비했고, 우당탕탕 몇 시간을 보낸 뒤 8시에 사고실험 채널의 첫 영상을 발행했습니다.
3 일단 인스타로 급하게 소식을 알린 뒤 저녁을 먹으러 내려갔습니다. 동료들이 고생했다며 축하를 건네는 와중에도 마음속에는 극도의 불안감이 휘몰아쳤습니다. 첫 영상이 어떤 성과를 기록할지 정말 아.무.도. 예상을 못하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으면 어떡하지. 괜히 독립을 한다고 했나. 그동안 마음을 다스렸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저를 믿어준 사람들을 실망시키게 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때 제 보스가 물었습니다. 성운님, 그래도 행복하시죠?
4 무심결에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행복할 수가 있겠어요? (다시 생각해봐도 참 싸가지 없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자 보스는 고통 속에서도 행복은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본인은 제가 제 이름을 걸고 채널을 여는 게 자랑스러운데 스스로는 그렇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그제서야 말실수를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과했습니다. 다만 솔직한 심정으로, 여전히 행복감의 실루엣은 불안감에 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5 다음날 늦게 눈을 떴습니다. 멍하게 1분을 보내고서야 문득 어제 채널을 오픈했다는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곧장 유튜브 스튜디오 앱을 켰습니다. 반갑다, 축하한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내용의 댓글이 100개 가까이 달려있는 풍경을 보았습니다. 안도감과 부끄러움, 고마움과 뭉클함이 덩어리째 밀려와 저를 타격했습니다. 그 감정의 이름은 틀림없이 행복이었습니다.
6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 그래프는 잔잔해졌고, 차분히 스스로의 상태를 관조해볼 기회도 생겼습니다. 지난주에는 아마존글로벌셀링에서 주최한 컨퍼런스에 강연자로 설 일이 있었습니다. 강연자료를 준비하며 아마존의 리더십 원칙을 뒤적거리다가, 그 유명한 제프 베조스의 2016 주주서한을 다시 읽었습니다. Day 1이라는 글자를 보는 순간 즉시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그게 사고실험의 Day 1이었구나.
7 제프 베조스는 아마존 같은 큰 기업일수록 매일매일이 Day 1인 것처럼 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Day 2는 곧 정체이고, 그 다음에는 고통스럽고 긴 쇠퇴가 따르며, 마지막은 죽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일하던 아마존 본사 빌딩의 이름을 Day 1이라고 지을 정도로 이 정신에 집착했습니다.
8 지극히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통찰의 함정은, 너무 상식적이고 당연해보이기에 그 가치를 깨닫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제가 가진 것도 아니지만) 구독자 70만 채널이라는 점프대에서 뛰어내리는 기분을 맛보기 전에는, Day 1을 실천하는 게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인지 몰랐습니다.
9 제프 베조스는 올해 1월 퍼플렉시티의 투자자가 되었습니다. 아라빈드 CEO는 평소 구글의 창업자들을 가장 존경한다고 밝혔지만, 저와의 대화에서 '고객 집착'이나 '진실 추구' 문화를 언급한 걸 보면 베조스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서비스 출시 이후 고속성장하며 2년 만에 4조 가치를 인정받은 기업의 대표로서, 자신감보다 겸허함을 더 앞세우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10 그건 어쩌면 그가 직업적 훈련을 받은 연구자 출신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한때 과학자를 꿈꿨던 사람으로서 저는 연구자들을 동경하고, 그들이 들려주는 연구 이야기를 듣는 걸 무척 좋아합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뛰어난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축적한 지식은 세상의 진실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 매일매일이 거대한 진리를 향해 다가가는 Day 1인 사람들.
11 오픈 후 3주가 지난 현재, 사고실험 채널의 구독자 수는 8000분을 넘겼습니다. 저는 채널을 독립하며 절벽에서 자유낙하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던 셈입니다. 여러분께서 저의 안전망이 되어주셨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12 하지만 그 숫자를 마땅히 제가 가진 것으로 착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시 한번 스스로를 점프대에 세우고 뛰어내릴 준비를 합니다. 더 가진 게 없던 때로, 정말 이 모든 게 시작되었던 Day 1으로.
13 뛰어내리면 발은 2016년 4월 16일에 닿습니다. 그날 비가 무척 많이 내렸습니다. 의무경찰 26명이 우의를 입고 앉아 있는 버스 안에는 퀴퀴한 냄새가 맴돌았습니다. 300미터 떨어진 광화문에서는 세월호 2주기 추모집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볼펜과 키보드가 없어서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들을 입으로 반복해서 외웠습니다. 그렇게 저의 글쓰기는 시작되었습니다.
14 그날부터 출동을 나가서는 머릿속으로 글을 쓰고, 일과가 끝나면 컴퓨터실에서 외워둔 글을 입력하기를 반복했습니다. 휴무날이면 몰래 빈 버스에 올라 어디에도 투고하지 못할 소설을 썼습니다. 몇 명이나 읽어줄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었습니다.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그걸 쓸 수 있다는 사실이 삶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15 어느새 제가 쓴 글을 수천 명이 읽고 제가 만든 영상을 수만 명이 시청하는 날이 왔습니다. 과분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무언가를 잃어버릴 걱정에 도전이 두려워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이 글과 2016년의 저를 떠올리려 합니다. 자신의 시작점을 기억하는 사람에게는 밀려 떨어질 절벽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Day 1은 언제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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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운님 정말 고맙습니다.
메타인지가 아주 훌륭한 분이시네요. 첫영상에 댓글을 달았고, 꽤 많은 공감을 얻었던 사람입니다. 글을 읽는데 왜 최성운님 목소리톤의 음성지원이 되는걸까요? ㅎㅎ 최성운님도 타인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고 인생을 변화시키고, 저도 최성운님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고 인생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을 세계 최고로 만들려고 노력중인데요, 그 과정이 너무 재밌습니다. 언젠가는 최성운님과 인터뷰하는 날이 왔으면 하는 생각도 드네요. 채널 오픈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셨을지 감히 공감은 못하겠지만, 정말 멋지신 것 같습니다. 실행력과 더불어 도전의식까지 갖춘 최성운님의 앞날을 기원합니다. 나중에 시간되시면 "애드 ED" 라는 유튜브 채널을 한번 봐보세요. 이분도 최성운님에게 좋은 생각을 가지게 해줄겁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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