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이 내게 가르쳐 준 것 ① | 미역국 속 갈치가 가르쳐 준 새로운 세계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시간이 흘러도 가슴속 한구석에 잊히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있는 장소가 있으신가요?
누군가에게는 태어난 고향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했던 공간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그런 특별한 장소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부산 기장입니다.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바다와 익숙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 흙길이 익숙했던 파주의 시골 소년
저는 충청도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은 파주의 한 시골 마을에서 보냈습니다. 논과 밭, 흙길과 들판이 세상의 전부였고 가장 익숙한 풍경이었죠.
그때 제게 바다는 지도 속 멀리 있는 낯선 세계였습니다. 생선은 그저 어머니가 시장에서 사다 주시던 반찬이었고, 바닷가 사람들의 삶과 문화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훗날 제가 부산 기장에 둥지를 틀고 바다의 삶을 깊이 배우게 될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
"흙 냄새가 전부였던 시골 소년에게, 바다는 파도 너머의 아득하고 멀고 먼 세계였습니다."
🐟 부산과의 첫 만남, 그리고 미역국 속 갈치
대학교 시절, 서울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인사를 드리기 위해 아내의 가족들이 살고 계신 부산 해운대로 내려갔을 때입니다. 처음 만난 부산은 모든 것이 새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처음으로 장인, 장모님께 인사를 드리며 평생 잊지 못할 음식을 만났습니다. 바로 ‘갈치 미역국’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소고기 미역국에만 익숙했던 저에게, 국물 속에서 하얀 속살을 드러낸 갈치는 일종의 문화적 충격이었습니다. "국에 생선이 통째로 들어간다고?"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죠.
하지만 부산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다정한 일상의 맛이었습니다.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미역과 싱싱한 생선이 어우러진 한 그릇.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새로운 문화와의 만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 필리핀을 거쳐 마주한 삶의 터전, 부산 기장
시간이 흘러 저는 필리핀에서 봉사하고 생활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타국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삶의 지평을 넓혔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제 인생의 새로운 터전이 되어준 곳이 바로 부산 기장이었습니다.
저는 2003년부터 2008년까지 꼬박 6년을 부산 기장에서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었지만, 바다는 금세 제 삶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왔습니다.
- 아침 창문을 열면 밀려오던 알싸한 바다 냄새
- 항구를 메우던 만선 배들의 활기찬 소리
- 기장시장에서 들려오는 상인들의 활력 넘치는 목소리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이 제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다정한 일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 바다가 가르쳐 준 진심: 기장 미역과 멸치
기장에 살면서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바다 음식에 담긴 깊은 진정성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기장 미역과 남해·기장의 멸치였습니다.
육지 사람인 저에게 미역은 그저 다 똑같은 미역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장에서 직접 주민들과 호흡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미역은 단순한 요리 재료가 아니라, 바다와 사람이 수개월간 함께 흘린 땀방울의 결정체라는 사실을요.
"기장 앞바다의 거센 거품 파도를 견뎌낸 미역은, 수많은 사람의 정직한 손길을 거쳐 비로소 우리 식탁 위 따뜻한 한 그릇이 됩니다."
바다에서 거두어 올리고, 깨끗한 용수로 손질하고, 해풍에 정성스럽게 말리는 과정. 그 숭고한 시간을 생각하면 미역국 한 그릇도 결코 허투루 넘길 수 없게 됩니다.
대변항의 멸치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작고 흔한 생선이라 여겼던 멸치가 기장에서는 바다 사람들의 자부심이자 삶 자체였습니다. 새벽 바다를 가르고 들어온 멸치 털이의 역동함, 그리고 처음 맛본 은빛 멸치회의 고소함. 육지 소년이었던 저는 기장에서 비로소 바다가 주는 풍요로운 맛과 삶의 경외감을 배워갔습니다.
🛍️ 단골 건어물 가게와 기장시장의 기억
기장 생활 동안 제가 가장 자주 드나들던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기장시장입니다.
시장에 들어서면 제 발걸음이 늘 가장 먼저 향하던 곳이 있었습니다. 시장 입구 오른쪽 첫 번째에 위치한 건어물 가게였습니다.
그 작은 가게 안에는 기장 바다의 전부가 담겨 있었습니다. 거친 해풍을 견딘 억척스러운 미역, 빛깔 고운 멸치, 정갈하게 말려진 건어물들…. 타지에 계신 고마운 지인이나 소중한 분들에게 마음을 전해야 할 때, 저는 항상 그 가게로 달려갔습니다.
제가 기장에서 느끼고 배운 이 진정성 있고 따뜻한 바다의 가치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 편지를 마치며
지금은 부산 기장을 떠나 충북 음성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기장에서 보낸 6년이라는 시간은 지금도 제 가슴속에 가장 따뜻하고 푸른 빛깔로 박혀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기장은 저에게 단순한 거주지가 아니었습니다. 흙에서 자란 시골 사람이 바다의 경외감을 배우고, 낯선 문화 속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법을 깨달은 인생의 학교였습니다.
"좋은 장소는 화려한 풍경 때문에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흘린 시간과 함께했던 사람들의 온기 때문에 가슴속에 영원히 남습니다."
구독자님의 가슴속에도 오늘, 따뜻한 바다 바람 한 줄기가 불어들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 [다음 이야기 예고]
기장이 내게 가르쳐 준 것 ②
|기장시장 입구 오른쪽 첫 번째 건어물집, 미역과 멸치에 담긴 추억
"시장에 들어서면 제 발걸음이 늘 가장 먼저 향하던 곳이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거친 기장 바다를 견뎌낸 진짜 미역과 멸치가 있었습니다."
육지 출신 청년이 기장시장 단골이 되기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진짜 좋은 먹거리를 고르는 눈을 뜨게 해준 추억이 다음 주에 이어집니다.
"더 자세한 내용과 꿀팁은 정리해두었습니다. 링크를 남겨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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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이 내게 가르쳐 준 것 1편: 흙에서 자란 사람이 부산 기장의 바다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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