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4년 동안 나를 꽉 붙잡고 있었던 박사 연구가 끝이 났다. 아직 심사를 거쳐야하고 그 후 수정도 해야하지만, 어찌됐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하고 마침표를 찍어 제출했다.
평소에 나의 많은 시간과 생각을 차지하고 있었어서, 해방의 순간을 기대하며 달려오고 있었다. 해방되면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모든 종류의 탐험을 즐기는 탐험가 성향을 따라 내가 머물러있던 틀을 벗어나서 완전히 새로운 것들을 맞이하고 싶었다. 똑같은 주제를 오래 붙드는 일은 내 성향과 거리가 먼 일이었다!
논문을 제출한 다음 날, 내가 원했듯 잊혀져있었던 새로운 것들을 수용하는 감각들과 수많은 가능성을 탐색하는 생각들이 찾아오는 걸 경험하고 감격했다. 와! 이게 사는 맛이었지! 지금까지 많이 억눌려있었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찾은 정신적 해방을 소중히 여기고 자유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자유를 활용하여 나의 효용을 극대화 하고 싶었다. 그게 나에게도, 남에게도, 세상에게도, 하나님에게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유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일단 몸과 정신이 지쳐있기 때문이다. 분명 박사 연구로 인해 몸과 정신이 지쳤다고 느껴 해방되고 싶어했는데, 그게 끝나니 또 다른 것들로 나를 지치게 만들고 있다. 선천적인 에너지 양이 남들보다 높은 편이라 그게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고, 스스로도 잘 못 느낀다 (둔함). 하지만, 몸이 점점 지쳐가는 것을 느끼고, 또 정신도 자유롭기보다, 내게 주어진 자유를 극대화하는 일에 매어있다. 이렇게 지쳐가는 나, 자유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오늘도 자다 깼다 자다 깼다 10시 쯤 일어나서 늘어진 것도 아니고 긴장해있는 것도 아닌 나를 보며 불만족스러웠다. 내게 주어진 자유를 생각만큼 잘 활용하지 못하는 모습이 미웠다. 더군다나 몸도 조절 못해서 늘어져있다니.. 오히려 박사 연구하며 루틴이 잡혀 운동도, 수면도 꾸준할 때보다 더 별로다! 라고 생각하며 일에 매여있을 때를 그리워했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 요한복음 16장을 묵상했고 예수님을 통해 드러내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곱씹어보게 되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기쁨을 누리기 원하시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신데, 나는 그 사랑 안에 거하고 있나? 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나는 그 사랑을 분명히 맛보았고,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전하고, 사람들끼리 잘 어울리게 하는데 마음을 다하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하나님이 원하시는 상태를 이루기 위해 실행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게 내겐 너무나 기뻤어서, 다른 모든 것들을 제쳐둔 채 그 상태를 이루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다.
만약 하나님이 사랑으로 가득한 궁극적인 상태를 원하신다면, 단번에 그렇게 만드셨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고 절대로 강압적이지 않은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 상태를 이루는 것을 일로서 접근하지 않으셨다. 사랑의 대상을 인격적인 대등한 상대로 여기시고 관계를 맺어가신다.
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분명 하나님의 사랑을 인격적으로 경험했고, 그것이 그 어떤 것보다 기쁘고 소중했어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도 알고 느끼게끔 하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나는 인격적인 상대로 사랑을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서 목표에 다다르는 방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것은 어떤 상태에 다다르는 데는 최적의 방식이지만, 그것은 모두 인격이 없는 것들에 대한 방식이다.
더 심각하게 말하자면, 문제 해결 방식을 인격을 갖춘 사람에게 적용하면, 그 사람이 가진 인격의 무시로 다가올 수 있다. 이게 왜 F가 T 유형에게 쉽게 서운함을 느끼는 이유가 아닐까..? (ㅋㅋㅋ)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내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불만족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나 또한 내 스스로를 인격이 아닌, 비인격적인 존재, 문제로서 바라보지 않았나 싶다. 나는 자유를 최대한 활용해서 내가 지어진 모습대로 살고, 또 가장 기쁘고 궁극적인 일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을 잘 해야지 그것이 올바른 상태인데,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침대에 늘어져나 있으니 시간이 너무 아깝고 낭비되는 기분이 든다….! 에휴!
이런 생각들이 마음에 떠올라서 (이렇게 정돈된 형태가 아닌 그냥 감각으로), 말씀 묵상 후 하나님 앞에 한 인격으로 머물러 있는 시간을 보냈다.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많은 것들이 마음에 안든다고. 스스로 쓸모없는 느낌이 든다고.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전할지 목표 생각만 해왔지, 내가 누리진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금 이 순간 즉각적으로 누리고 거하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정말로 즉각적으로 누리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덥혔다. 불만족과 긴장이 사르르 녹았다. 하나님 앞에 머무르는 순간을 있는 그대로 누리게 되었다. 그 자체로 평온하고 기쁘고 바라는 게 없었다.
그리고 한 문장이 마음에 새겨졌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목적 그 자체라는 말이었다. 그렇다. 나의 불만족, 긴장 그리고 피로의 원인은 내 자신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는 효율적인 도구로 여기고 있었다. 그 마음은 진심이었지만, 잘못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를 수단으로 여긴다. 일에서는 더할 말이 없고, 심지어 사적인 관계에서도 서로를 역할로서 여기거나 심지어 요즘은 이익을 교환하는 사이로 여기기도 한다. 가치감의 문제로 고민하지 않는 이가 드물 정도로 정체성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스스로를 수단이라 여길 때 “쓸모”의 개념이 들어가게 되고, 가치감의 문제가 생긴다. 나 또한 이 세상의 흐름에 잘못된 정체성을 부여받는 사람이겠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는 가장 궁극적인 상태를 놓고도 그것을 이루는 수단으로서 살아가려 했던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의 대상이자 목적으로 만드셨지 수단으로 만든 게 아닌데 말이다.
오늘 하나님 앞에 인격으로 거하는 한 순간에 정체성이 뒤집혔다.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다. 할렐루야~~~ 내가 가장 먼저 추구할 것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 그 뿐이었다.
오늘도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기쁨이다. 나는 똑같이 사람들이 내가 누리는 것을 누리길 원한다. 다만, 오늘은 그 사람들을 수단이 아닌 인격으로 더 여기고 싶다. 또 그 안에서 내 자신도 그것을 누리는 한 인격으로 여기고 말이다. 어떤 의무감도, 불만족도, 긴장도 없이 그저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고 싶다. 그리고 이 글의 톤은 매우 침착하고 건조해보이지만, 내 실제 마음은 엄청 벅차올라 있어서.. 얼른 사람들에게 오늘 깨달은 걸 전하고..! 더 중요하게 그 사람들을 한 인격으로 소중히 대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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