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 when they arrest you, do not worry about what to say or how to say it. At that time you will be given what to say, for it will not be you speaking, but the Spirit of your Father speaking through you.” (마 10:19-20)
요즘 잘 살고 있다 (여러가지 해프닝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한국에 다시 돌아와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내가 살아오며 경험한 것들을 직장에서 나누고 나의 친구들과 나눌 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어두웠던 시절에 예수님과의 교제를 맛본 경험이 지금 그것이 필요한 이들에게 등대가 되어준다.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예수님과 한 팀이 된 기쁨을 느낀다. 또 어둠 속에 헤매던 나를 타임머신을 타고 구조하는 듯한 기쁨도 누린다. 그때의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무척 닮은 나의 친구들을 도울 수 있다. 어디로 가야하는 지 방향을 가리킬 수 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게 나에게 큰 기쁨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구원자의 입장도 경험하게 하신다. 예수님은 정말 기쁘셨겠다고 조금씩 조금씩 더 알게된다.
그러나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낌과 동시에 불편함도 느낀다. 만족하고 있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이 느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돌리려 애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었다. 온 세상을 돌아다니고 자유로웠던 지난 시간들과 다르게 비교적 고정되고 경직된 환경에 있어서 그런가 싶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다시 꿈을 만들고 붙들려 애썼다. 아직 경험하지 않은 미국 땅에 가서 그곳에 사람들을 만나 나의 사고와 경험의 확장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답은 여기에 있지 않다고 알고 있었다.
오늘 말씀을 아주 느긋하게 천천히 묵상하며 불편함과 불만족의 근원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내 삶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하는 세계가 내게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일들이 내게 다가온다. 나는 반갑게 여기면서도 두렵다. 지금까지의 나는 알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측이 되지 않는 불확실한 미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곳으로 들어가야함을 안다.
원수에게 붙잡혀서 끌려갈 때에 무엇을 말할까 어떻게 말할까 걱정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아버지의 영이 나를 통해 말할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의 마음을 꿰뚫었다. 모호하던 불편함과 불만족이 사라졌다.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기준이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과 불만족을 통해 여기에 머무르는 게 최선이 아님을 알려주시는 것 같다. 그래서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 앉아 예수님을 묵상했다. 예수님께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나에게 삶의 요모조모를 경험하는 기회를 주셨다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일종의 학교 생활을 하게 하셨고, 그것을 흡족하게 바라보고 계시는 예수님이 그려졌다. 그러다 이제는 그것을 졸업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 내가 알지 못하는 곳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뒷모습을 보며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이제 내가 아는 모습의 좋은 삶은 지나가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세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 느껴진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이제는 예수님을 따르고 싶다고. 이제는 정말로 아버지의 영이 무엇을 말할까 어디로 갈까 누구를 만날까 무슨 일을 할까를 알려주실 것이라고 알고 믿는다고. 이 말을 하면서도 이게 어떤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 잘 모른다. 그저 떠오르는 말을 하는 것 뿐이다.
확실한 것은 이제 불편감과 불만족은 사라졌다. 대신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는 감각이 살아났다. 몸과 마음의 감각이 어색하다. 불확실하다. 그러나 기대된다. 설렌다. 내가 의도적으로 주조한 느낌이 아니다. 어떻게 흘러갈 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시작 되었다. 아버지의 영이 나를 통해 이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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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오늘 묵상을 하며 느껴지는 것들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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