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히 8:1)
7장에선 예수님을 온전한 대제사장으로 소개했다. 온전치 못한 사람들이 온전치 못한 율법을 가지고 대제사장 역을 맡아 매번 제사를 드렸던 시절과 달리, 예수님은 그 자체로 온전하신 분이고 구원에 이르게 하실 분이기에 우리의 구원을 단번에 이루시는 분으로 소개되었다.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 예수님이 어떻게 스스로를 주장하셨는지 아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 구원받은 자처럼 사는 이들이 과연 많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단번에 구원받은 자처럼 살고 있는가? 단번에 구원받은 자처럼 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순백에 가까운 맑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겉으로 드러나는 어떠한 죄스러운 행동도 하지 않는 것?
사실은 구원받은 자처럼 살고 있는가? 에 맞춰 나의 구원의 정도를 판단하는 사고방식이 우리를 구원의 감격에서 멀어지게 한다. 우리의 상태와 상관없이 예수님은 우리를 단번에 구원하셨다. 이것은 고작 우리가 함양해야할 상식이나 필수 지식 정도가 아니다. 우리가 삶에서 맛보고 경험하고 체험해야할 사건이다.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신, 지금도 살아계신, 대제사장을 맘껏 누려야한다! 사실로서가 아닌 사건으로서 말이다.
결혼식을 예로 들면 적절할 것 같다. 결혼식을 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결혼의 참맛을 알게 해주진 못할 것이다. 결혼식을 기점으로 약속 안에 들어선 부부가 서로를 관계 안에서 가장 친밀한 거리, 사적인 공간에서 경험할 때 자신이 결혼한 상태임을 몸과 마음으로 알 것이다. 누가 결혼했다는 사실만 가지고 자신이 진정으로 기혼자인 것을 체감하고 있을까? 그랬다면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결혼 안에서 여러 부정들이 없었을 것이다.
오늘 말씀에서 요점은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고 말한 것처럼, 지금 당장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체감했으면 좋겠다.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신 예수님이 가장 친밀하게 우리와 함께하심을 누렸으면 좋겠다. 영원한 샘물로서 우리의 끝없는 갈증을 채우시고 계시다는 것을 오직 오늘 경험하게 하시는 줄 믿는다. 예수님을 사실로서 알지 않고,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 안에 머물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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