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의 묵상] <잠 1-8>

지혜는 생생하다.

2023.12.05 | 조회 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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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의 모험기

일상을 모험한 기록을 나눕니다 :)

 

“날마다 나의 문을 지켜보며, 내 문설주 곁에 지키고 서서, 내 말을 듣는 사람은 복이 있다. 나를 얻는 사람은 생명을 얻고, 주님께로부터 은총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놓치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해치는 사람이며,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잠 8:34-36

잠언을 묵상할 때마다 유난히 시선을 끄는 지혜자의 말이 있었다. 한창 반항기일 때는 “아이들아, 아버지의 훈계를 잘 듣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말아라.” 라는 잠언 1장의 말씀이 마음을 찔렀다. 지금도 여전히 반항적인 마음이 가득하지만, 그 찔림이 나를 어리석은 말이나 행동을 덜하게 만들어준다. 그 다음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 이라는 말씀이 나를 뾰족하게 찔렀다. 한창 세상에 대해 무언가 안다고 느끼고 자신있고 겁없이 말하고 다닐때, 이 말씀을 통해 내가 아직 어리석은 자임을 깨달았다. 주님을 경외하고 있지 않다는 두려운 진실을 알았다. 

오늘은 위의 구절이 마음에 걸렸다. 삶의 새로운 스테이지 문지방에 서있다는 걸 체감하며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나의 안테나를 무엇이 지혜로운가? 에 향해 뻗은 지금,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이 있을 것이라 믿어졌다. 

내 마음에 강하게 꽂힌 첫 문장은 미뤄두고, 두번째 문장부터 살펴보자. “나를 얻는 사람은 생명을 얻고, 주님께로부터 은총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를 놓치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해치는 사람이며, 나를 미워하는 사람은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잠언을 읽어오며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내가 지혜를 얻었느냐? 아니요..

지혜를 얻고 싶은 나는 지혜를 알고 싶어했다. 지혜를 알수록 지혜와 나 사이에 새까맣게 깊은 협곡이 파여있는 것 같았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그렇다고 감히 넘어갈 엄두도 낼 수도 없는 협곡 앞에서 건너편을 서성이며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지혜를 더 아는 데에만 집중했다. 말씀을 더 읽고, 삶에 대해 더 탐구하면서 ‘지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때로는 더 고상하고 철학적인 긴 설명을 하곤 했고, 때로는 삶의 경험을 예로 들며 과거의 상황에서 최선으로 지혜로운 선택이 무엇일지 곱씹고는 했다. 지혜를 더 아는 것이 지혜를 얻게 해주지는 않았다. 

대신에 무엇이 지혜로운 것인지, 무엇이 지혜롭지 않은 것인지 이전보다 더 명확하게 감지할 수는 있게 되었다. 가장 간단하게, 지혜는 생명의 열매를 맺고, 지혜가 아닌 것들은 죽음의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로 과거의 나의 선택을 평가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마치 더 좋은 안경을 낀 것과 같아서 나와 지혜 사이의 있는 암흑의 협곡이 더욱 깊고 멀게 느껴지게 만들기도 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도 더 명확하게 비추어 지혜롭지 못한 모습에 더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서문이 길었는데, 오늘 말씀의 첫번째 문장은 어떻게 하면 지혜와 나 사이의 깊고 어두운 협곡을 건널 수 있느냐? 에 힌트를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나는 멈춰있는 지혜를 아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한참 지난 후에야 지혜를 판별할 수 있었다. 마치 연쇄 살인범이 범행을 저지르고 남긴 특유의 수법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 연쇄 살인범을 알아차리는 것처럼 말이다! (비유가 좀 그렇다..ㅋㅋ) 

지혜자는 날마다 나의 문을 지켜보며, 문설주 곁을 지키고 서있으라 말한다. 매일 의도적으로 마음을 집중하여 지혜가 드나드는 곳으로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라는 말인 것 같다. 나는 하나님의 지혜가 어떻게 삶에서 일하는 지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해보지 못했다. 그저 지혜가 지나간 흔적을 뒤늦게 살피며 지혜로워지길 바랐을 뿐이다. 지혜와 함께 걷고 지혜를 유심히 지켜보고 지혜의 도움을 직접 받으며 보고 느끼고 맛보아야하는데 말이다. 그래서 늘 딱딱하게 굳어있는 지혜의 틀로 현재에 일어나는 일들을 재단하며 많은 마찰이 있었던 것 같다. 그 틀은 듣기 싫은 잔소리, 다가가기 힘든 완고함, 때로는 무서운 열정으로 보이곤 했다. 나는 잔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을 답답하게 보았고, 나와 같이 완고함에 가까운 확신이 없는 사람을 줏대 없이 휩쓸리는 사람으로 보았고, 열정없는 자들을 미지근한 사람들로 보았다. 그리고 그 시선들은 당연하게 마찰을 만들었다. 

지혜는 생생한 데 나는 지혜가 지나간 흔적만 살피며 무엇이 지혜인지 단언했다. 사실은 지혜가 있는 곳으로 갈만큼, 지혜가 드나드는 문의 문설주에 서있을만큼의 간절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내가 있는 자리에서 목을 길게 뻗고 지혜가 무엇인지를 손쉽게 정의하고 스스로 지혜로운 자가 되고 싶었던 마음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마음 뒤에는 두려움이 있다. 지혜를 얻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 그래서 지혜 있는 내색을 하며 스스로 확신을 얻고 싶다는 마음. 

이제는 오늘의 말씀처럼 지혜가 드나드는 곳에 몸과 마음을 움직여 지켜보고 싶다. 깊고 어두운 협곡을 건너고 싶으면, 그것을 건널 있는 자를 지켜보면 된다. 그것을 건널 없다고 건너편과 암흑 속만 쳐다보면, 두려움과 좌절만 커진다. 오히려 주변을 둘러보아 그것을 건너는 사람을 살피고 사람에게 가서 물어야한다. 같이 머물며 지켜보고 배워야한다. 그것이 유일하게 협곡을 건널 있는 방법일 것이다. 나를 채웠던 지혜가 남기고 흔적들을 모두 버리고 가볍고 겸손한 마음으로 지혜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내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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