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의 일상] 새로운 뼈대

7년 영국생활을 마무리 하며

2023.11.28 | 조회 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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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의 모험기

일상을 모험한 기록을 나눕니다 :)

7년 간의 영국 생활 마무리하는 날이 코앞에 다가왔다. 그토록 미루었던 출국일자를 정하는 것도 확정되었다. 사람들과 작별의 이야기를 한다. 이미 내 삶에서 큰 무게를 가진 작별들을 하고 있다. 나의 껍데기가 벗겨지고 나의 몸 안을 지탱하고 있던 것들이 부셔지고 무너진다. 상실의 고통은 지나가고 새로운 기대의 바람이 텅 빈 공간으로 자유롭게 드나든다.

지금까지 의존하고 있던 든든했지만 이제는 낡은 뼈대들이 무너지고 있다. 한동안 낡았다고 느껴도 이미 그 위에 너무나 많은 것들이 놓여있어 변화하기 어려웠다. 모든 것이 비워지고 있는 이 때, 새로운 재료로, 새로운 구조로, 새로운 모양과 디자인으로 새로운 뼈대를 세울 수 있다. 작별의 애상감 이면에 있는 축복의 순간이다. 이 순간은 한 번 새로운 삶의 단계에 진입하고 나면 찾아오기가 힘들다!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는 작별의 아픔에 주저앉기보다 새로운 단계를 기대하는 마음에 집중하고 싶다. 

자자. 무엇을 준비하면 좋을까. 일단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자. 영국에 처음 왔을 때는 나는 경험과 도전이 고팠다. 나는 너무 작은 사람이었다. 안온한 환경에서 무럭무럭 자라기만 했다. 새로운 환경이 두렵고 스스로가 작다고 느꼈다. 상상력이 넘쳤다. 부족한 현실 경험 때문에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상상력으로 대체한 경우가 많았다. 모르니까. 그래서 결단했다. 이대로는 살 수 없다고. 나를 버리고 위험이 도사리는 세상으로 나아가자고. 그 시절에 나에겐 커다랗고 무모한 경험들을 하려고 했다. 지금의 나에게도 무모할 수 있는 도전들을 했다. 부족한 언어 실력으로 동아리 리더를 맡아 사회적 기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학회에 논문을 게재하고, 우간다에서 놀이터를 짓고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을 경험하며 내 세상의 경계를 넓히려 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별난 경험들을 많이 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동시에 세상은 넓지만, 생각보다 사람의 삶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상상력을 통해서가 아닌, 누군가의 말로 들은 것이 아닌 내 두 발로 다니고 내 손으로 만지고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세상의 진실들은 내게 새로운 뼈대가 되어주었다. 

내가 너무 작다고 느끼고 도전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은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끊임없이 불안과 불만을 야기하는 것들이 있었고 더 많은 도전과 경험을 추구하며 세상을 알게 되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삶을 살아가며 느끼는 것은, 나의 문제는 나의 문제라는 것이다. 세상의 객관적 진실과 상관없이 나만이 처한 상황이 있고 나만이 겪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는데, 스스로 문제 삼고 있다거나. 똑같은 상황이라도 저 사람은 괜찮지만 나는 너무나 아픈 그런 상황들이 나에겐 버거웠다. 그 중 하나의 문제는 외로움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뼈 안까지 파고드는 외로움을 자주 느꼈다. 홀로 남겨진 시간 안에 그 외로움은 나를 많이 해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많은 관계들 안에서 증폭되는 외로움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나의 문제 때문에 다른 이들과 진정으로 관계할 수 없을 것 생각했을 때는 영혼까지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느낌은 나를 진짜로 죽음에 이르게 하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런 상태로 버거워했다. 날 것의 혼란이 담긴 수첩이 20권 가까이 되었다. 그 기억은 대부분 회색이다. 그 회색 시간 속에서 나는 생명에 목말랐다. 이 시간 동안 나는 인간에 대해, 마음에 대해, 영혼에 대해 깊은 탐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나를 살게 하는 것은 사랑이고 그 사랑은 오직 하나님에게서만 온다는 것을 경험했다. 모든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기에 사랑은 곧 생명이라는 것. 그런데 올바른 형태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할 때 우리는 사랑과 가장 유사한 것을 사랑으로 둔갑시켜 스스로를 살리고자 한다는 것. 그 왜곡이 곧 우상숭배의 문제이고 그것이 인간 세상 모든 문제의 시발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일한 해결책은 올바른 형태의 사랑임을, 그 사랑은 곧 생명임을 깨달았다. 회색 세계 지평선 근처 아른거리는 태양을 똑똑히 보았다. 내가 달려갈 곳을 직감했다. 

올바른 형태의 사랑은 고유한 두 존재가 서로 독립성을 유지하며 관계를 맺고 있을 때 성립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사랑은 올바르게 관계맺는 것이다. 그 원형의 사랑에 이르려면 첫번째로 고유한 존재로서 나의 모습을 찾아야하고 두번째로 독립적이야하며 세번째로 다른 고유하고 독립적인 존재와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있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이 정의하는 나의 모습이 아닌 하나님이 지으신 나의 모습을 찾아야하고, 고유성을 발산하며 독립된 존재로서 살아가야하며, 영원히 변함없으실 존재이신 하나님 안에 있어야한다는 것을 내 삶을 통해 배웠다. 이미 아는 사실이었지만, 내 삶의 개인적인 일들이 겹겹히 쌓인 단단한 사실이 되었다. 그 때에만 내 영혼이 온전할 수 있음을 알아버린 것이다. 이 강렬한 깨달음이 있고나서 내가 나아갈 방향을 알고 나니 주변의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보기엔 형태만 다를 뿐 모두 똑같은 문제 안에 처해있는 나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겪는 문제들을 들여다보면 나의 문제와 같은 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이 영혼을 죽이는 심각한 질병임을 알기에 한명의 의사가 된 것처럼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그들의 고유한 면을 드러내주었다. 그리고 그들을 속였던 세상의 거짓말을 명확히 밝혀내어 그들의 고유성을 잃지 못하게 도우려 했다. 동시에 관계 맺으려 했다. 사랑은 올바르게 관계맺는 것이기에, 그들과 관계맺으려 했다. 많은 기쁨이 있었다. 정말로 사람이 살아나는 것들을 생생하게 경험했다. 생생하게 경험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사랑을 확장시키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기뻐 춤추며 뛰어놀았다. 가장 행복한 전염이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게 내 삶에서 가장 기뻤다. 

그러나 그 사랑은 들쑥날쑥했다. 일단 나부터도 배신의 가능성에 불안해했다. 과거의 경험한 뼈아픈 배신의 경험들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어 실제를 왜곡하는 환상을 만들어 관계를 멀어지게 했다. 하나님을 관계 안에서 더욱 깊이 경험해야한다는 직감이 들었다. 이것이 가장 최근의 깨달음이다. 조금의 원리를 파악하고 살짝 맛을 본 것만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사랑의 맛이 너무나도 달았다. 죽었던 존재들이 살아나는 부활의 기쁨은 형언할 수 없게 기뻤다. 그리고 이 지점에 나는 놓여있다. 그래서인지 하나님께서는 내게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도전을 하기를 원하신다는 마음을 주신다. 나를 완전히 의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고, 그 때 하나님을 깊이 경험할 것이라는 직감이 든다. 나는 그 지점에 놓여있다. 

모험의 시간을 준비하는 중이다. 아무것도 계획하거나 미리 판단하지 않고 있다. 그저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고 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삶의 맥락에 충실하게 반응하고 있다. 그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한다. 그와 동시에 지식과 지혜가 필요함을 실감하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 무장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느낀다. 그것이 다음 단계를 맞이하는 새로운 뼈대가 되어주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이 글을 적으며 너무나 추상적인데? 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추상적이다. 왜냐면 짧은 글로 내게 일어난 일들을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에 묘사된 과정들은 생생하게 살아있는 경험들로 가득하다.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냄새맡을 수 있는 오감이 생생한 체험들이다! 이건 어떻게 전해야하나... 아무튼 언젠가 그것들을 모두 공유하고 싶다. 관념적인 글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글을 적어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의 영혼을 동요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 그 때를 기억하며 내 삶을 생생하게 살아가는 데 집중하겠다. 그와 더불어 앞으로 필요한 지식과 지혜를 구하고 찾아가는 과정을 나누고 싶다.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반응하는 이들이 있다면, 기꺼이 동행하고 싶다. 앞으로 쓸 글에 댓글이든 이메일 답장이든 공유해주시면 미리 너무 감사합니다. 새로운 뼈대를 세워가는 과정을 공유할 것이다. 아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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