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계신가요? 사실 전 한국에서 만성 피곤을 달고 살고, 수면 패턴이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었는데요. 베를린에 온 뒤로는 놀랍도록 비슷한 시간에 자고, 또 알람 없이도 눈을 잘 뜨고 있어요.
흔히들 여행을 두고 일상에서 '탈출'하는 행위라고 표현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여행지에 가면 오히려 더 일상적인 것들이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동네 산책 하기(풀세팅이 아닌 주민처럼 꼬질하게 나가서 어슬렁어슬렁 다녀야 함), 아침을 느긋하게 챙겨 먹기, 로컬 마트 가서 간식이나 식재료 사기 같은 것들이요.
오늘은 이런 비일상 속 일상적인 순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
moment
꼭 여행지에 가면 하고 싶어지더라
"딸, 꼭 거기 가서 자전거를 타야겠니?"
출국을 앞둔 며칠 전, 베를린에 가서 자전거를 타기 위해 자매들과 따릉이를 연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희 어머니가 하신 말이에요. 평소에 자전거를 즐겨 타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잘 타지 못하는' 애가 굳이 혼자 여행을 가서 타겠다고 하니 영 불안하셨던 거죠.
주변 사람들도 제가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하는 걸 알아서 '여행자 보험은 들었지?' '너 말고 네가 타고 가는 자전거 주변에 있을 사람들이 더 무섭겠다.'라는 말을 할 정도이니 엄마의 걱정도 이해는 갑니다.
베를린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진짜 많이 타고, 대여 시스템이나 전용 도로가 꽤 잘 되어 있어요. 솔직히 혼자서 잘 탈 자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머무는 동네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베를리너가 된 기분으로 자전거를 꼭 타봐야지'라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도착 이튿날, 꽤나 빠르게 실천을 해버렸지 뭐예요!
눈앞에 베를린의 녹색심장, 티어가르텐 숲길을 마주하니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여기서 자전거를 타면 조금 헤매더라도 너무 기분이 좋을 것만 같았거든요.
'어차피 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그냥 끌리는 지금 해야겠다.'
미리 설치해 둔 자전거 대여 어플을 켜서 위치를 확인하고, 빠르게 픽업 완료! 안장 높이 조절부터 난관에 막혀 옆에 지나가던 베를린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지만 어찌어찌 숲길까지 잘 끌고 갔어요. (제가 덜컹거리면서 가니까 할아버지가 뒤에서 계속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시던 기억이....😂)
몇 번의 위기를 거치고 허둥댔지만, 예상보다 금방 감각을 찾았습니다. 아무래도 오기 직전에 아주 잠깐이라도 연습을 한 게 도움이 됐나 봐요. 적응을 하고선 우쭐한 마음으로 자전거 탈 때 듣기 좋은 음악을 더해줬어요. 음악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숲길을 달린 그 순간은 베를린에 도착한 뒤 가장 짜릿한 장면으로 남았습니다. 이몸의 도파민은 거참 역치가 낮구먼~ 싶을 정도로요!
만족스럽게 반납을 하고, 나중에 자전거도 또 타야지~ 라고 다짐했는데, 이틀 뒤에 바로 타버리게 됩니다. 이번엔 아침 런닝을 가는 길에 이동 수단으로요. 숲길을 달리는 것과 도로를 건너는 일은 또 달랐지만 그래도 해보니까 할만 하더라고요.
사실 런닝 역시 일상에서 하던 행위는 아니예요. '우리 동네 주변엔 마땅히 뛸 곳이 없어.' 라는 핑계로 시도조차 하지 않았거든요. 막상 달려보니... 어땠을까요?
그래도 나름 지구력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체력이 받쳐 주지 않으니 러닝 실력은 심각하더군요. 자전거에 비해 즉각적인 행복감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고요. 결국 1km를 겨우 채우곤 마무리를 했어요. 공복에 냅다 라이딩>런닝을 이어했으니 쉬울리 없었겠죠.
그럼에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쉬었다- 뛰었다를 반복하는 과정이, 달뜬 숨을 내쉬며 아침을 맞이한다는 기분이, 그 시간 동안 공원에서 베를리너들의 일상을 관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게 다가왔습니다.
낯선 것들을 탐닉하려고 떠나는 여행에서 굳이 내가 일상에서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것엔 어떤 마음이 깔려 있을까요? 아마 평소에 누리지 못했던 '여유'라는 것을 여행을 핑계로 찾고 싶은 것일지도 몰라요.
이건 제가 도시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여행은 우리가 사는 장소를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우리의 생각과 편견을 바꿔주는 것이다.] 라는 말도 있듯이, 완전히 다른 세상에 똑! 떨어지는 게 아니라 시선을 약간 바꿔주는 렌즈를 장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요.
결국 이런 여행을 하다 보면 [일상에서도 여행자의 마음과 태도를 가지자]는 뻔하디뻔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요. 원래 결론을 알아도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잖아요. 그 마음이 흐릿해져갈 때 쯤이면 다시 떠남으로써 한 번 더 상기시키는 수밖에요. 생산성과는 상관없는 일상의 소중한 면면들을 포착하고 잘 챙겨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일단 저는 돌아가서도 규칙적인 수면과 바깥 운동을 하리라 선포해 보겠습니다. (이건 떠날 핑계가 아니라 진짜 일상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 2024. 05. 07 | 실물과 사진의 갭차이가 큰 독일 과자에 어이없어 하며(ㅎ) 베를린에서 씀 -
place
🌳 초록의 도시 베를린에 왔다면
베를린엔 크고 작은 공원이 정말정말 많아요. 지내면서도 느끼긴 했는데 찾아보니 녹지 비율이 무려 31.5%라고 하네요. 이런 환경이다 보니 베를리너들에겐 초록만 있으면 털썩털썩 앉아서 쉬어 가는 게 자연스럽습니다. 무엇보다 공원 안에 인구밀도가 높지 않아서 쾌적해요.
베를린의 초록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5월에 방문한 만큼 부지런히 공원을 다니는 중인데요, 제가 다녀온 곳 + 가보고 싶은 곳을 엮어서 짧게 소개할게요.
01 | Großer Tiergarten : 위에서 언급한 자전거를 타고, 러닝을 했던 공원이에요. 베를린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공원이고 실제로 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숲길에 압도당하는 기분입니다.
02 | Mauerpark :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찾고, 또 유명한 공원이에요. 일요일마다 대규모 플리마켓이 열리고 버스킹도 많이 해요. 저는 마켓 열리는 날과 안 열리는 날 둘 다 가봤는데 각각 다른 매력이 있었어요.
03 | Viktoriapark : 유명한 공원은 아니지만, 동네 주민들이 많이 가는 노을 맛집이라고 해요. 꼭대기에 올라가면 나폴레옹 전쟁 국립 기념비+전망대가 있고 중간에는 폭포도 있어요.
04 | Lietzenseepark: 큰 호수가 있어서 물멍하기 좋은 공간이에요. 주변에 딱히 이렇다할 관광지가 없어서 엮어서 가긴 애매하지만, 막상 도착하면 고요한 시간 보내기는 아주 딱인 곳입니다.
이외에도 군용 공항이었던 곳을 시민들이 점령한(?) 템펠호프, 동화의 분수가 있고 산책하기 좋은 볼크스, 강변 따라 있는 동쪽 공원 트렙토어 등 아직 못 가봤지만 꼭 가고 싶은 공원들이 많아요. 남은 날들도 열심히 1일 1공원 하겠습니다...!!
music
🚲 자전거 타면서 듣기 좋은 노래
사심 담아서 제가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합니다~! (온라인 리추얼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만들었던 거고, 영상 최종 편집은 다른 멤버분이 해주셨어요)
라이딩을 생각하고 만든 건 아닌데(왜냐면 평소에 자전거를 타지 않으니까...🙃), SNS에 공유했을 때 지인분이 자전거 타면서 들었다고 한 게 생각나서 이번에 자전거 타며 들어봤어요. 여러분의 자전거 타임을 더 즐겁게 해주리라 장담하면서 추천해 드립니다 :)
✦✦✦
좋아하는 공원, 여행지에서 꼭 하는 것 등 이번 레터를 읽고 생각난 부분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의도치않게 매번 글이 길어지는데(...) 앞으로는 조금 더 가볍게, 자주 찾아올게요~ )
의견을 남겨주세요
참참참
안전하고 즐겁게 자전거 타고 있다니 다행입니다요 ㅎㅎ 서울와서도 또 같이 타시죠~
Moment in Berlin
좋습니다요 ^_______^ 🚲🚲🚲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