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가을이 오래 간다, 싶더니 찬바람이 쌩쌩 불고💨 감기도 유행이네요. 🤧 건강은 잘 챙기고 계신가요?
살다 보면 사람의 몸이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바이러스에 감염되거나 훌륭한 식사를 챙겨먹지 못하거나 운동 혹은 휴식이 부족하면 금방 더 약해지지요.
다른 동물들에 비하면 체력도 떨어지는 것 같고, 그렇다고 무거운 걸 그리 잘 드는 편도 아니고요. ☹️
우리와 기술의 관계는
그런 까닭에 우리는 ‘기술’🛠️이라는 것을 발전시켰다고 하지요. 인간이 더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 더 건강하고 즐겁기 위해서요.
그래서 기술로 무언가 척척 만드는 공장🏭도 세우고, 더 안전한 집도 마련하고, 또 놀이동산🎢, 게임👾, 유튜브... 🤤 예전엔 누리지 못했던 즐거움을 더 많이 누리게 되었어요.
우리는 보통 기술을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인간이 자신의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고, 기술은 인간의 도구라고요. 👨🔧
우리가 무언가 필요해지면 머리를 써서 뚝딱뚝딱 그것을 실현할 기술을 만들어요! 🤓
하지만 하이데거 가라사대, 부족하다
... 저희끼리 평화롭게 이야기하고 있으려니, 여기 또 시끄러운 철학자 하이데거가 끼어드네요!
하이데거는, 기술이 단순한 도구나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지적해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걸로는 기술이 무엇인지 다 드러낼 수 없다는 건데요. 하이데거가 주목하는 부분은, 기술이 ‘탈은폐(Entbergen)’의 한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은폐란 보이지 않도록 숨기는 것이지요. 🙈
하이데거가 생각하는 ‘탈은폐’란 말 그대로 눈 앞에 나타나지 않던 것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에요. 은폐되어 있던 것🙈을 열어젖혀서, 해명해 밝힌다는 뜻입니다. 🔍
존재하고 있던 것이 탈은폐를 통해서, 인간에게 처음으로 어떤 의미를 갖고 앞에 놓이게 되어요. 👀
자연을, 세계를 '드러나게' 하는 것이 바로 기술입니다.
하이데거가 생각하기에, 기술은 세계의 드러나지 않던 것들을 드러나게 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새로이 규정해요.
철학자들이라면 웬만하면 기술을 비판하는 줄 알았는데...🤔 이런 하이데거의 설명은 좋은 뜻으로 들리지 않나요?
현대 기술은 달라!
그런데 하이데거는, '현대(modern)' 기술의 탈은폐는 더 이상 이런 자연스러운 방식이 아니라고 봐요. 😤
단순히 우리 눈 앞으로 가져오는 것을 넘어서, 대상을 부품으로 취급하고 자연에게 에너지를 내놓으라고 닦달👿한다는 거예요.
잠깐 하이데거의 예를 들어 볼까요? 👏
옛날에 농사를 지을 때, 농부들👩🌾은 땅에 씨를 심고 기다렸어요. 곡식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그동안 열심히 돌보았습니다. 🌾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근대 이후로 농사 짓기는 그런 것이 아니게 되었어요. 화학 비료, 대형 경작기, 살충제 등으로 땅에게 "빨리 곡식을 내놓으란 말이야! 더 많이! 더 크게!🤬" 하고 '닦달'합니다. 🍚
이런 농사에서, 땅은 그저 인간에게 식량이 나오는 공장, 자연은 공짜로 에너지가 나오는 곳, 인간 역시 그런 거대한 식량 산업의 부품⚙️에 불과해요.
한 마디로, 인간이 자연의 사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 쓰이도록 주문한다는 건데요.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자연을 바꿔버리는 거예요. 🤖
인간은 세계를 대상으로, 자기 자신을 주체로 삼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왕👑이라는 거지요.
즉 기술은 '탈은폐'를 통해 사물들을 원하는 방식으로 고정해서 인간들에게 제공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자연은 인간에게 일종의 부품⚙️이에요.
필요한 때에 필요한 대로, 가공해서 사용할 뿐입니다. 그 자연의 수많은 다른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고요. 🥺
강물🌊도 에너지 자원🏭이고, 숲🌳도 종이📃의 재료이고... 우리는 모든 것들을 인간이 관리하고 밝혀낼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
세계가 부품이 된다는 건 결국 언제든지 무엇이든 서로를 대체할 수 있고, 마음대로 쓰일 수 있다는 뜻이네요. 😥 어쩐지 조금 슬프지 않나요?
하이데거의 섬뜩한 질문
하이데거는 여기서 섬뜩한 질문을 남겨요. '과연 자연만 부품일까?' 하는 질문입니다.
"인간이 탈은폐를 위해서 도발되고, 주문되었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인간은 자연보다도 더 부품에 속하지 않겠는가?"
인간이 핵심 수행자로서 기술의 '주체'로 기능하지만... 결국 기술의 탈은폐 과정에서 인간도 기술에게 '이끌려 가고 있다'⛓️고 하이데거는 강조해요.
이런 세계에서는 우리 모두 무언가의 부품으로 존재할 뿐이에요. 인간의 주체성, 자연에 대한 인간의 남다름을 하도 강조했더니 결국 인간이 대상이 되어버린 아이러니한 결과입니다. 🥵
환자를 살리기 위한 기술을 연구하는 병원에서, 결국 실험과 연구의 재료로 쓰이는 것은 인간이에요. 과학기술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들은 어떤 것의 잠재적 재료들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자연을 기술의 대상으로 여기고 부품 취급했지만, 돌고 돌아 우리도 스스로 기술의 대상이 되어 기술에게 종속되어갈 뿐⛓️이라는 것이 하이데거의 진단이에요. 기술은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인간성을 파괴합니다! 🔪
모두 부품으로...
그렇다면 결국 모든 것이 부품이 되고 있다는 말인 걸까요? 하이데거는 정확히 그렇다고 봐요.
존재하는 모든 것이 부품이 되어가고 있다는 결론🤯, 하이데거는 이를 현대 기술 속에 숨어 있는 힘이 온 세상을 지배한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세계를 지배하려다가 기술에게 지배당하게 되었어요! 😨
구독자: 아니 그럼 우리는 어떡해요
그러니까요. 우리는 어떻게 살면 좋죠? 이미 지배당하고 있다잖아요! 🫨
하이데거가 간절히 제안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왜 기술이 위험한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
기계가 위험해서, 단순히 인간에게 물리적 해를 끼칠 수 있는 기술이 너무 많아서, 이런 이유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부품'⚙️으로 규정해 버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기술을 단순히 인간에게 종속된 도구로 생각하면 안 되겠지요. 이런 위험을 놓치게 되니까요. 기술은 인간의 지배 하에 있지 않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
그래서 하이데거는 우리가 능동적으로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탐구해야 한다고 봐요. 🖋️ 자신의 연구도 이런 목적이었고요.
그렇다고 하이데거가 마냥 '생각하라!'는 뻔한 말만 한 것은 아니에요.
지면이 부족해 다 싣지는 못했지만, 하이데거는 실제로 인간이 기술을 오해하지 않도록, 진리(episteme)와 예술적 의미를 모두 포함하는 고대 그리스의 '테크네techne' 개념을 제시합니다. ✍️ 지난 형이상학의 역사를 모두 되짚으면서요! 🥵
이번 레터를 통해 기술이란 대체 뭘까! 하고 탐구심이 생기셨다면, 하이데거에 관한 서적을 직접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
... 바쁜 현대인의 삶에 대고, 너무한 요구라고요? 😢
구독자님께 책 한 권 여유롭게 읽을 시간도 주지 않는 현대사회가 미운 날이네요! 😡
그렇지만 괜찮아요. 바쁜 목요일, 저희 필진이 열심히 고민하며 소개하는 작품들을 함께 들여다보는 것으로 대신해요! ⬇️
w. 레테💭
이번 달에도 구독자님을 위해 준비한 작품들을 소개할게요!🤹 이번 달엔 세 개의 작품을 다채롭게 준비했답니다.
천 개의 파랑: 어쩌면 이미 친숙한 경마장의 풍경 ⬅️ 클릭❗
아일랜드: 우리의 "아일랜드"는 어디에 있나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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