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전시회가 시작하자마자 가는 편이신가요? 저는 주말에 부랴부랴 김기린 작가(1936)의 개인전 <무언의 영역UNDECLARED FIELDS>을 보고 왔어요. 갤러리 현대에서 7월 14일까지 열려요. 전시 마무리 2주를 앞두고 다녀왔는데요. 전시 기간에 여유를 두고 보러 가는 습관은 언제쯤 생길까요?
김기린의 반복
장르로 구분하기 시작한 한국의 단색화가 지닌 특징은 ‘반복’이죠. 대체로 이 반복을 “수행의 결과”나 “정신의 초월”로 해석해요. 그러나 저는 늘 단색화 앞에 서면 노동자로서 작가를 생각합니다. 거대한 캔버스 앞에 서서 끊임없는 반복 노동을 하는 작가요. 김기린의 회화는 격자 무늬를 그리고 그 안에 붓터치를 채워넣는 과정을 떠올립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보이는 회화는 흔치 않죠. 그래서 대체로 작가와 작품은 유리되어 있지만, 김기린을 포함한 한국의 단색화는 그 과정이 한데 모여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김기린의 반복은 조금 더 논리적이에요. 박서보의 반복이 흐르는 듯한 선, 작가의 마음이 가는대로의 선이었다면 김기린은 반듯한 격자무늬 안에 붓터치를 채워넣습니다. 비슷한 색일 때도 있고, 전혀 다른 색일 때도 있으며 완전히 같은 색일 때도 있죠. 2000년대에는 그리드 없이, 자유롭게 붓터치를 가져간 작품도 있어요. 이렇게나 엄격하게, 논리적인 회화를 구성하는 반복에는 무슨 마음이 깃들어 있을까요?
이번 전시에 인용된 김기린의 말입니다.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도불하였고, 글로 된 시를 쓰려던 김기린에게 격자 무늬(그리드)는 사실 가장 안락한 공간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글을 오래 써오면서 가장 불안할 때에는 아무것도 없는 백지에 글을 쓸 때거든요. 한 줄이 예쁘게 나오지 않고, 치우쳐 있는 원고를 보고 나면 내 마음도 비뚤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리드를 ‘갇힘’으로 해석하지 않고 ‘안정’으로 받아들이면, 조금 더 김기린의 반복되는 노동이 다른 의미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격자 무늬의 안정감
한 3년 전부터 평소에 쓰는 공책을 바꿨어요. 밑줄만 있던 공책에서 방안지로 바꾸었는데요. 확실히 방안지가 글씨를 더 잘 쓰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글씨를 칸에 맞춰서 쓰게 되면서 오히려 생각을 하는 것도 더 구조적으로 바뀌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백지 노트는 주로 마인드맵을 그리는데 썼었는데요. 오히려 아무 것도 없는 백지 위에서 시작하려니 시작도 못하겠는 때가 많았어요. 지금은 완전히 방안지에 정착을 했습니다.
문학을 공부하는 김기린에게 원고지 형태의 그리드는 조금 더 ‘조형미’에 가까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려서 글씨를 처음 배울 때, 큼직한 네모 칸 안에 점선으로 중심을 잡아주잖아요. 그리고 그 중심에 맞춰서 글씨를 쓰고 배우죠. 받침이 있는 한글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잘 맞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이 보조도구로서 점선이 필요하죠. 알파벳처럼 옆으로 계속 이어지는 글자가 아니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김기린의 그리드는 붓자국 하나하나가 글자 하나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수한 반복, 그러나 하나도 같은 것은 없죠. 점을 찍는 한 번, 한 번이 모두 다른 힘이었을 테니까요.
김기린의 그림을 볼 때는 오히려 격자 흔적이 또렷하게 보이는 작품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지는데요. 김환기의 전면 점화에서 그리드는 밑그림으로, 점과 색을 쌓는 밑작업이었다면 김기린에게 격자는 그림의 일부처럼 느껴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캔버스에 그리드를 그리는 것부터 그림의 시작인 느낌이죠. 이런 점에서 제가 느끼는 김기린의 <안과 밖>은 서구의 논리구조로 보이는 그리드와는 조금 다른 것 같이 느껴집니다. 일부러 색을 다르게 하기도 하고, 격자를 숨기기도 하고, 먹처럼 그려 수묵화의 느낌을 내기도 하죠. 격자마저 회화의 구성요소로 생각했다는 점이, 김기린의 작업을 시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네모 칸 안에 가득 들어찬 타원형의 붓 모양. 그리고 마띠에르가 생기고, 시간이 지나면서 갈라지기도 하죠. 단어는 기표와 기의 사이에서 정확한 대칭을 이뤄야 한다면, 이미지는 기표와 기의 사이의 무수한 가능성을 나타냅니다. 저는 그 붓터치에서 고도의 집중력과 단순 반복의 노동을 읽어냅니다. 산업 혁명 이후, 예술가는 한명의 육체 노동자로 바뀌는 모습을요. 그러면서도 완벽한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그런 장인이요. 수많은 기의를 가지고 있는 여러번의 붓터치야말로 관람객을 다양한 가능성의 세계로 끌어들이죠. 현대미술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유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추상화를 비롯한 단색화가 왜 좋냐면, 생각에 잠기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무것도 모르겠다”라고 할지라도요.
완결성
희곡 작법 중에 “체호프의 총(Chekhov’s gun)”이 있죠. 1막에서 총이 등장했다면, 2막 혹은 3막에서는 쏴야 한다. 곧, 작품에 무의미한 장치는 없어야 한다는 뜻인데요. 김기린의 작품은 그런 점에서 완결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완결성은 “가장 정확한 단어만을 사용해 본질을 구현”하는 행위의 결과물이죠. 김기린의 <안과 밖>은 회화 안에서 그리드, 붓터치, 색이 각자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고 있어요. 회화 바깥에서 작품을 그리는 작가 본인까지도요. 그래서 보고 있으면 잘 짜여진 세계의 평화로움이 느껴지죠. 때로 한국의 단색화 중에서 가장 평화로운 그림은 오히려, 화려한 김기린의 <안과 밖>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채도가 높은 색으로 이룩한 평화로운 세계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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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Guiline 김기린 : Undeclared Fields (Jun 5 - Jul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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