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자수와 프랑켄슈타인의 관계

예술은 젠더의 한계를 찢고 개성을 표현한다

2024.08.13 | 조회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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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예술, 방문하고 보이는 것들에 대해 씁니다.

구독자, A.I. 사용하시나요? A.I. 시대에 접어들자 생성형 A.I.로 만들어낸 이미지, 동영상, 음악도 예술로 볼 수 있는지 논쟁에 불씨가 붙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며 그 안에서도 창의성을 발휘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시대적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여성들이 그랬죠. 그들은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고 자신의 역할이 물리적으로 제한당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고자 했습니다. 한계를 넘어서는 창작자의 모습을 “규방공예에서 찾아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렸던 전시,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이야기입니다.


자수는 규방의 담장을 넘어서고

"이게 자수야?"라는 화제성 만큼이나 관람객으로 붐볐던 전시장. ⓒ차영우

자수는 색실을 바늘귀에 꿰어 직물을 장식하는 공예입니다. 어렸을 때에는 집에 자수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요. 좌우로 대나무가 빼곡한 배경에 가운데일심(一心)”이라고 적혀있었어요. 어머님이 학생 배워서 놓은 작품이라고 했는데요.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집에 비슷한 작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미루어 보아, 학교에서 공통 교육 과정이었던 같기도 해요. 이렇게나 생활에 밀착해 있었기 때문에 자수는 흔히예술보다는기술 더욱 초점이 맞춰진 논의됩니다. <한국 근현대 자수: 태양을 잡으려는 새들> 역시 기술로 서술되는 자수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오려는 시도였죠. 서울공예박물관이 있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자수 전시를 진행했다는 점에서 그렇죠.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알려진 것은 자수의회화성보다 자수를 놓은 작가들이었습니다.

 

"자수는 사회로부터 차단된 삶 속에서 여인들이 꿈을 쏟아부을 수 있는 예술 세계로 발전하였으며, 조선 여인들은 자수를 통해 자기와 가족의 부귀영화를 빌었다."

김지영, 김문진 『규방공예 -오방 색실과 천으로 잇는 천연세상』, 컬처라인, 2000, p.28.

 

16~17세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에 성리학적 이념이 자리잡으며, 내외법이 강력해지기 시작했어요. 남녀를 구분짓는 이러한 풍습은 여성의 정체성을 안채, 규방 안에 가두어 버리죠. 그러나 여성들은 그러한 한계에 무너지지 않고 자유로운 창의성을 규방공예를 통해 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16~17세기에 접어들면서 조선에 성리학적 이념이 자리잡으며내외법이 강력해지기 시작했다남녀를 구분짓는 이러한 풍습은 여성의 정체성을 안채즉 규방 안으로 한정해 버린다그러나 여성들은 그러한 한계에 무너지지 않고 자유로운 창의성을 규방공예를 통해 풀어내기 시작한다. 

김소희「조선시대 규방 공예에 담긴 사회문화적 의미와 창조적 계승」『동학학보 제70호』, 2024, p.331.


자수를 비롯한 규방공예가 예술의 한 장르가 되지 못하는 것은 수방 소속으로 수를 놓던 궁수(宮繡)의 실력이 떨어져서였을까요? 혹은 그것이 결국 ‘여성’의 일로 치부되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전시의 발문을 읽어보죠. “자수는 규방에서 자급자족되는 ‘여기(女技)’에 머물지 않고, 근대적인 문명국가를 가능케하는 기술, 공업, 산업으로 간주 되어 국내외 박람회에 출품되기 시작했다.”(1. 백번 단련한 바늘로 수놓고, 전시 발문) 그러나 자수를 비롯한 규방공예는 이미 조선시대 후기에 이르러 “가정경제의 범위를 넘어 상업 등의 경제활동으로 이어졌고 자연재해를 입는 농사와 비교해도 안정적이며 수익성과 환금성이 높은 산업"(김소희, p.326)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여기(女技)”로 치부되었지만, 규방공예의 작가들은 자수를 자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바탕으로 여겼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공평하지 않은 평가의 규칙

메리 셸리(Mary Shelly)의 초상과 문학동네판 프랑켄슈타인 표지. ⓒ위키피디아, ⓒ문학동네
메리 셸리(Mary Shelly)의 초상과 문학동네판 프랑켄슈타인 표지. ⓒ위키피디아, ⓒ문학동네

메리 셸리(Mary Shelley) 18세에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인의 프로메테우스』를 출간합니다. 1818년의 일이었죠. 그러나 당시에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지 못하고 익명으로 책을 냅니다. 3 뒤, 1821년에 메리 셸리는 자신의 이름을 책에 기록하죠. 이때 작가의 나이가 어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프랑켄슈타인』은 혹평을 듣게 됩니다. “어린 여성의 병적인 상상력”, “불경스럽다”, “어둡다”, “기괴하다 평가를 받고 남편이 『프랑켄슈타인』의 편집에 관여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어, 메리 셸리는 저자가 아니라는 비난을 최근까지 받아왔죠. 그러나 당대에도 메리 셸리는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최후의 인간』(1826), 『로도어』(1835), 『포크너』(1837), 여러 소설과 여행기를 출간합니다. 문학에서도 여성 작가는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작품이라고 인정받기 어려웠습니다. 문학에서 여성 작가는 남성 작가와 동등한 지위를 보장받지 못했지만 미술에 비하면 형편이 나은 편이었죠.

20세기 초반으로 거슬로 올라간다면 떠오르는 여성 미술가의 이름은 손에 꼽힙니다. 조지아 오키프나 프리다 칼로같은 작가만이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죠. 여성 미술가는 자신의 작품과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지워지기도 합니. 1971 린다 노클린은 이러한 미술의 불공평한 규칙을 고발하는 논문 한 편 발표합니다.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Why have there been no great women artists?) 질문은 근본적으로위대함이라는 규칙이 얼마나 불공평한지에 대한 반증이었습니다.

 

문학에서는 여성이 남성과 훨씬 더 동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었고 심지어 혁신가가 될수도 있었다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전통적으로 미술 제작은 구체적인 기법과 기술을 익혀야 하고특정 순서에 따라야 하며가정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제도적 환경의 도움을 받아야하고도상학적 의미와 각종 모티브가 가진 상징적 어휘에도 익숙해져야 한다결코 시인이나 소설가의 경우와 같다고 할 수 없다언어는 누구라도 당연히 배우기 때문에 심지어 여성도 예외없이 읽고 쓸 수 있었으며 개인적인 경험을 자신의 방에서 종이에 기록할 수 있었다물론 이 말은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없이 훌륭하고 위대한 문학을 창조하는데 수반되는 실제 어려움과 복잡함을 완전히 무시하고 단순화한 것이다하지만 여성작가인 에밀리 브론테나 에밀리 디킨슨이 문학계에서 가능했음을 말해줄 수는 있을 것이다.

린다 노클린『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었는가?이주은 옮김아트북스, 2021, pp.56-57.

 

린다 노클린의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문학에서조차 여성 작가의 작품은 무시당하고, 멸시받기 일쑤였죠. “교육에서조차 배제되고 사회와 격리된 여성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미적인 것들을 그들의 힘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그것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남성(백인)의 기준으로만 갖추어져 있었죠. 그렇기 때문에 메리 셸리가 ‘갈바니즘’에 기인하여 상상력을 발휘한 이야기는 현재 평가와 달리 “어린 여성의 병적인 상상력”이라는 평가에 갇히고 맙니다. 자수 역시 작품이 지니고 있는 기술적 성취, 아름다움을 보기 보다는 쓰임새, 근대화의 산물, 산업화의 첨병 등으로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이번 자수 전시에 출품된 170여점의 작품은 시대의 흐름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문화유산이면서 당대의 작가들이 자신의 창의성을 표현해낸 작품이었죠.


예술은 어떻게든 작가의 창의성을 담아낸다

궁중 자수의 화려함이 담겨있는 자수병풍. 김규진 외, <자수 매화도 병풍>, 1870년대-1930년대. ⓒMMCA
궁중 자수의 화려함이 담겨있는 자수병풍. 김규진 외, <자수 매화도 병풍>, 1870년대-1930년대. ⓒMMCA

조선시대에 규방에서 자수를 놓던 여성들이 지닌 창의력은 지금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민간의 자수인 민수(民繡)는 민화와 함께 한국적 미감을 표현합니다. 민수에는 "자유분방한 구도와 강렬한 원색대비"가 특징적으로 나타나며, 민화와 비슷한 미감을 자아냅니다. 자수는 조선시대 궁중의 화려하고 섬세한 기술을 포함하는 한편 일제 강점기에 접어들어 일본 자수의 영향을 강력히 받았지만, 광복 이후 한국적 색채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더 나아가 예술 장르로 독립하기 위해 담론을 쌓아왔죠. 그러한 담론의 집합이 이번 <한국근현대자수태양을잡으려는새들>에 고스란히 담겨있었습니다. 훗날, 이 전시를 새로운 미술사의 시작으로 보게 될 지도 모릅니다.

형제들이여, 잘못은 별들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호르몬, 월경주기, 또는 우리 내부의 공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잘못된 것은 제도와 교육인데, 여기서 교육이란 사람이 의미있는 상징과 기호체계, 그리고 신호의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사람에게 발생할 있는 모든 경우를 망라한다. 과학, 정치학, 예술 등은 백인 남성이 특권을 누리는 분야다. 그들이 여성이나 흑인에 비해 성공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을 고려한다면 여성과 흑인이 순수하게 뛰어난 성과는 사실상 기적에 가깝다.” (린다 노클린, p.32.)


참고문헌

  • 김소희, 「조선 시대 규방 공예에 담긴 사회문화적 의미와 창조적 계승」, 『동학학보 제70호』, 2024.
  • 린다 노클린,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이주은 옮김, 아트북스,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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