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 전시 보기 좋은 가을날입니다. 연달아 해외 유수의 작품 및 미술관 소식을 전한 김에, 유럽에서 온 작가들을 서울에서 만나면 좋을 것 같아요. 곧 시작할 전시 중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불멸의 화가 반 고흐> <빛의 거장 카라바조&바로크의 얼굴들>, 이미 진행 중인 마이아트뮤지엄 <툴루즈 로트렉 몽마르뜨의 별>까지 세 개의 전시를 소개합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고흐의 시선으로 1886년에서 1888년 사이의 파리 시절 즈음을 이야기하려고 해요.
<불멸의 화가 반 고흐> 전은 네덜란드에서 시작해 파리, 아를, 생 레미를 거쳐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 고흐의 생애를 연대기적으로 조명합니다. 그 중 파리 시절은 몽마르뜨에서 고흐가 동생 테오와 함께 생활하며, 폴 고갱과 툴루즈 로트렉 등을 만나 친분을 쌓고 전시를 열기도 한 때죠. 이후 로트렉의 권유로 아를에서 작업한 짧은 시기를 거쳐, 생 레미 정신병원에 입원한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이번 레터에서는 작품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파리 시절 전후 고흐의 편지 글, 그리고 곧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고흐의 작품을 미리 살짝 보여드릴게요. 아울러 동시대를 살아간 친구였던, 파리의 벨 에포크 시대 사교계를 보여주는 로트렉의 작품도 한 점 소개합니다. 또 고흐는 렘브란트를 롤모델로 자주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명암 대비를 극적으로 활용하는 카라바조의 작품을 통해 고흐가 사랑한 옛 이탈리아, 바로크의 일면을 함께 감상하는 것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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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에서 솟아오르는 인물을 그리기 위해
내 습작과 다른 동료들의 습작을 비교해 보면 거의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는 게 놀라울 정도이다. 그들은 그림에 맨살과 똑같은 색을 쓰는데, 가까이서 봤을 때는 그들이 옳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조금만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면 그들의 그림은 지독할 정도로 밋밋해보인다. 분홍색, 섬세한 노란색 등의 부드러운 색조들은 거친 효과를 만들어내니까. 반대로 내가 그린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면 초록빛을 띤 빨강, 노랑이 섞인 회색, 흰색과 검은색, 그리고 많은 색들이 뒤섞여보인다. 하지만 조금만 뒤로 물러나서 바라보면 인간의 살이 물감에서 튀어나오는 듯 주변에 공간이 생기며 진동하는 빛줄기가 그 위로 쏟아진다. 아주 조금의 채색만으로도 효과가 강조되는 것이다.
생명이 깃든 색채
모델에게 지불할 돈이 없어서 인물화는 완전히 포기했네. 그 대신 유화로 채색하는 연습을 위해 빨간 양귀비꽃, 파란 수레국화와 물망초, 하얀 장미와 분홍 장미, 노란 국화 등 꽃 그림을 그리고 있네. 파란색과 오렌지색, 빨강과 초록, 노랑과 보라의 대립을 추구하기 위해서지. 회색빛 조화를 피하고 강렬한 대립을 조화롭게 다루기 위해 강렬한 색을 사용하려 노력하고 있다네. 이런 훈련을 마치고 최근에는 두 점의 두상 습작을 그렸는데 빛과 색에서 전에 그린 것보다 훨씬 낫다고 감히 말할 수 있네. 예전에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색에서 생명을 추구해야 한다고, 진정한 데생은 색과 함께 틀이 만들어진다고 말일세.
네 자신을 즐겨라
옛것이 아름다운 만큼 새것도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과거나 미래는 우리와 간접적인 관계밖에 맺지 않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서는 직접 행동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내가 가장 불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글을 쓰려면 공부를 더 해야한다는 네 믿음이다. 제발 그러지 말아라, 내 소중한 동생아. 차라리 춤을 배우든지, 장교나 서기 혹은 누구든 네 가까이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하렴. 한 번도 좋고 여러 번도 좋다. 네덜란드에서 공부를 하느니 차라리, 그래 차라리 바보짓을 몇 번이든 하렴. 공부는 사람을 둔하게 만들 뿐이다. 공부하겠다는 말은 듣고 싶지도 않다.
나는 아직도 말도 안되는 연애사건을 일으키곤 한다. 대개는 그런 사건으로 창피와 망신만 당할 뿐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한 것이 전적으로 옳았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종교나 사회주의에 심취한 적이 있는데, 그때 사실은 사랑에 빠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사랑에 빠지지 못해서 종교나 이념에 깊이 몰두하게 된 것이지. 그때는 예술도 지금보다 더 성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종교나 정의나 예술이 그렇게 신성할까? 자신의 사랑과 감정을 어떤 이념을 위해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더 거룩한데. 그건 그렇다 치고, 글을 쓰고 싶다면 행동을 해라. 인생에 대해 무언가를 담고 있는 그림을 그리든지.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살아있어야 한다.
「씨뿌리는 사람」,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
실제로 대지가 어떤 색인가에는 별로 관심이 없네. 낡은 달력에서 볼 수 있는 소박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거든. 나이든 농부의 집에서 볼 수 있는 달력에는, 눈이나 비가 오는 장면이나 날씨 좋은 날의 풍경이 아주 유치한 양식으로 묘사되어 있지 않나. 앙크탱이 추수에서 성공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그런 양식 말일세. 솔직히 내가 시골에서 자라 그런지 시골 풍경에 대해 반감은 전혀 갖고 있지 않네. 과거의 단편적인 기억은 아직도 나를 황홀하게 하며 영원한 것에 대한 동경을 갖게 한다네. 씨 뿌리는 사람이나 밀짚단은 그 상징이지. 언제쯤이면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별이 빛나는 하늘을 그릴 수 있을까? 가장 아름다운 그림은 침대에 누워서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서 꿈꾸는, 그러나 결코 그리지 않은 그림일지도 모르지. 압도될 것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함 앞에서 아무리 큰 무력감을 느끼더라도 우선 시작은 해야겠지.
영생의 예술
성경은 때로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고 분노하게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전염될 수 있는 어리석음과 편협함으로 우리를 공격하고 혼란스럽게 하네. 결국 우리를 깊은 슬픔에 잠기게 만들고. 그러나 성경이 주는 위안도 있지 않은가. 딱딱한 껍질 속에 숨어 있는 쌉쌀한 과육과도 같은 위안. 그것은 그리스도라네. 오직 들라크루아와 렘브란트만이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얼굴을 그렸네. 그리고 밀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그렸지.
(중략)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생을 확신했고, 시간의 무한성, 죽음의 무의미함, 평온과 헌신의 필요성과 의미를 인정했지. 그는 다른 모든 예술가보다 더 위대한 예술가로서, 대리석, 점토, 물감을 경멸하면서 살아있는 육신으로 일했고 평온하게 살았네. 신경질적이고 둔한 우리 현대인의 두뇌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이 두려움 없는 예술가는 조각을 하지도, 그림을 그리지도, 글을 쓰지도 않았네. 단지 자신의 말을 통해 살아있는 사람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지.
여보게, 베르나르. 이런 생각은 우리를 예술 자체를 넘어서 아주 멀리 있는 세계로 데려가네. 그래서 생명을 창조하는 예술,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있는 예술을 볼 수 있게 해주지.
*뉴스레터 속 고흐의 편지 글은 <반 고흐, 영혼의 편지>(신성림 엮음, 위즈덤 하우스, 2000)에서 재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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