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단어편지 #14] 핑계 👉🏻👈🏻

책임은 적당히, 핑계도 적당히

2021.10.05 | 조회 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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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단어 편지

하나의 단어를 매개로 새로운 음악을 보냅니다.

안녕하세요. 구독자 님. 졸지에 2주 만에 보게 되었네요. 지지난 주는 휴가를 쓰고, 지난주는 병가를 냈습니다. 병가는 갑작스레 찾아와 미처 알리지 못해 죄송해요.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 주에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이라는 표현으로 편지를 맺었는데 무색하게 됐네요. 공기가 차가워지고 있습니다. 부디 모두 건강하시길 바라며 음악 단어 편지 시작합니다.

안타까운 건 여전히 제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겁니다. 혹시 지난주 금요일에 폭우 보셨나요? 마른하늘에서 번개가 치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우수수 쏟아지는 비와 맹렬하게 부는 바람. (다시) 안타깝게도 저는 이를 보지 못하고 중심에서 경험했어요. 라디오 출연을 위해 일산에 가는 길이었는데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폭우가 쏟아졌거든요. 버스에서 내린 후 방송국까지는 1km. 가까운 거리라 택시도 잡히지 않아 평소 걸어 다녀요. 생방송이기에 방송국엔 늦지 않게 도착해야 하고. 근처에는 우산을 살 만한 편의점도 없고. 별 수 있나요. 폭우를 뚫고 그날 틀 LP 레코드가 젖지 않게 품 안에 안은채 1km를 걸어 방송국에 도착했습니다. 온몸이 젖은 채로 대기 시간 포함해 2시간 동안 방송하고 1시간가량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며 빌었습니다. 제발 감기만 걸리지 않기를. (역시) 안타깝게도 제게는 3시간 동안 비에 젖은 몸을 견뎌낼 만한 체력과 면역력이 없었고, 당연하다는 듯 감기에 걸렸습니다.

이렇게 구구절절이 적고 나니 마치 핑계를 대는 듯한데요. 이건 여기서만 이야기하는 비밀인데 저는 그럴듯한 핑계를 떠올리는 걸 좋아해요. 그걸 늘어놓듯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아주 친한 사람을 제외하고 이걸 늘어놓는 경우는 드뭅니다만) 제게 주어진 일을 다 잘한다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잖아요. 당연히 주어진 일을 제대로 못 한다면 사과하고 다시 그 일을 제대로 하는 게 최선이겠지만 어쩔 땐 그게 불가능할 때도 있단 말이죠. 그럴 때 좋은 핑계거리를 찾는 건 빡빡한 삶에 숨 쉴 구멍을 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일을 엉망으로 하는 것보다 좋은 핑계를 대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핑계를 대는 건 아니고요.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얼마 전 클럽하우스에서 아는 분께 사주를 봤어요. 내년에 명품을 걸치고 비싼 차를 타면 일을 덜 할 수 있고 부가 들어온다는 거였어요. 하지만 제게는 들어올 부를 바라기 전에 당장 명품이나 비싼 차를 살 부가 없단 말이죠. (운전면허도 없고요) 근데 그렇게 단정 지어 버리면 또다시 안타까워지 잖아요. 그래서 명품을 걸치지 않고 비싼 차를 타지 않을 핑계거리를 생각해봤어요. 마침 다행히도(?) 제가 지금 거주 중인 곳은 임대 아파트예요. 임대 아파트 거주자는 일정 금액 이상의 재산을 가지거나 일정 금액 이상의 차를 소유하면 거주 자격이 박탈됩니다. 맞아요. 저는 명품을 가질 수도, 비싼 차를 몰 수도, 그리고 부를 축적할 수도 없는 자격이기에 그에 맞게 행동하는 것 뿐입니다. 아니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집값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부를 한꺼번에 축적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그러고 보니 지금 감기 때문에 이명과 어지럼증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갑자기 50억이 생기거나 하진 않겠죠?

자, 지금까지 쓴 글은 모두 음원 홍보를 위한 핑계였습니다. 10월 8일 영기획에서 오랜만에 신인 음악가가 데뷔해요. 이름은 김새녘이고 곡 제목은 '싫증'입니다. 곡에서 제가 좋아하는 구절이 있는데요. '다른 핑계거릴 데려 오세요'라는 부분입니다. 다른 이유, 다른 구실, 다른 명분 같은 표현이 아니라 다른 핑계거리 라는 표현이 참 마음에 들더라고요. 아직 곡을 들려드릴 순 없어 대신 곡의 일부가 포함된 티저를 가장 먼저 보여드릴게요. 마음에 드신다면 10월 8일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들어 주세요.


핑계거리로 가득했던 음악단어편지지만 저는 구독자 님이 그 핑계마저도 품을 만큼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주는 내내 비가 온다고 하니 비 맞지 말고 감기에도 걸리지 않고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고 여길 수 있는 한 주가 되길 바랍니다. 다음 주에 만나요. 다른 핑계거리를 또 데려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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