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연휴 동안 쌓였ㅇㄹ 메일 속에서 음악단어편지를 찾아 주셔 고맙습니다. 저는 영기획(YOUNG,GIFTED&WACK Records)를 운영하는 하박국입니다.
초등학교 체력장. 대부분의 종목을 싫어했지만 그중 최악은 오래달리기 였습니다. 당시엔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왜 문명화된 사회에서 사람이 오랫동안 달리기를 해야 하는지 말이에요. 오래달리기가 시작되고 저는 주변 사람들이 제 앞을 지나치는 걸 보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유유자적하게. 친구들이 흩날리는 흙먼지를 마시며.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평소 걷는 보폭으로 천천히. 억지로 힘들게 달리는 것보다는 그편이 제게는 더 우아해 보였어요. 아마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제 주변으로는 클래식이 BGM으로 흐르고 있었을 거예요. 그렇게 저는 '싫증'이라는 감정을 온 몸으로 드러내며 꼴등으로 마지막까지 걸었습니다.
김새녘의 '싫증'을 듣고 위의 순간이 떠올랐어요. 나는 이미 싫증 났고 더는 여기에 관심을 갖고 싶지 않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지만, 공격적이라기보다는 방어적인 태도. 김새녘은 인터뷰에서 '싫증'이라는 곡에 대해 '연애나 인간관계 혹은 그 외에 어떤 대상이든 싫증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에 더 신경 쓰고 싶지 않고 신경이 쓰이게 하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대상을 떨쳐내고 비워내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 '놓지 못하면 더 아프고 힘든 것들이 있을 테고요. 어느 대상에 싫증이 난 것이 꼭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니까요.' 라고도요. 이 말을 듣고 나니 위로가 되더라고요.
김새녘 '싫증' 후렴구는 이렇게 시작돼요.
"매일매일 사랑을 받지 않아도
내일 또 내일 좋을 일이 없다 해도
왜인지 모를 슬픔을 마주한 대도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겠죠"
싫증을 느끼고 그걸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싫증이라는 감정에 대한 대가나 상대의 싫증 역시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거겠죠.
싫증 (demo)
가느다란 사랑 하자며
나를 쫓아 따라오지 말아요
나는 줄 수 있는 것이 없어요
같은 생각 나눌 수도 없어요
인사를 나누지도 말아요
괜한 표정 낭비하지 말아요
그렇게 나를 보고 싶다면
다른 핑계거릴 데려오세요
기약할 새로움도 없어요
남은 마지막도 올해까지죠
그렇게 나를 보고 싶다면
다른 핑계거릴 데려오세요
매일매일 사랑을 받지 않아도
내일 또 내일 좋을 일이 없다 해도
왜인지 모를 슬픔을 마주한 대도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겠죠
미안하다 말하지도 말아요
실은 나도 나를 아직 몰라요
아무 대답 않고 있는 걸 알면
며칠 뒤엔 모두 떠나가겠죠
기약할 새로움도 없어요
남은 마지막도 올해 까지죠
그렇게 나를 보고 싶다면
다른 핑계거릴 데려오세요
매일매일 사랑을 받지 않아도
내일 또 내일 좋을 일이 없다 해도
왜인지 모를 슬픔을 마주한 대도
아프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겠죠
김새녘 '싫증' 인터뷰
Q. ’싫증’은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평소에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멜로디를 음성메모에 저장해 놓는 편이에요.
싫증의 작업을 시작하기 전쯤 ‘꽤 좋은 후렴 멜로디’라는 제목으로 저장해놓은 메모가 유난히 떠오르더라고요. 더 늦어지기 전에 얼른 작업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곡의 후렴 멜로디와 가사를 우선으로 만든 후 본격적으로 살을 붙이게 됐습니다.
Q. ’싫증’에서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는?
제목의 뜻 그대로 싫증이 난 사람의 감정을 담고 싶었어요.
연애나 인간관계 혹은 그 외에 어떤 대상이든 싫증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에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고 신경을 쓰이게 하고 싶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대상을 떨쳐내고 비워내도 괜찮을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놓지 못하면 더 아프고 힘든 것들이 있을 테고요. 어느 대상에 싫증이 난 것이 꼭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니니까요.
Q. 최근 가장 싫증 났던 순간은?
싫증이 나서 떨쳐내고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곡 작업의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어떤 곡이든 쉬운 건 없지만 만들어 놓은 곡 중 유난히 ‘싫증’의 곡 중 도입부와 함께 이어지는 파트를 만드는 것이 정말 어려웠던 것 같아요 ;)
초반 작업에는 반복되는 멜로디가 너무 단조롭게 느껴진다고 생각이 들어서 이래저래 변화를 주려고 몇 날 며칠 애를 썼는데 결국에는 처음에 만들었던 멜로디를 사용하게 됐어요.
그 작업의 과정이 참 험난했지만 곡에 애정을 갖게 되는 계기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어요.
Q.’싫증’을 듣는 분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곡의 가이드 작업 후 가까운 친구에게 들려주고는 ‘싫증’의 느낌이 어떤지 물었던 적이 있는데 가사의 덤덤한 표현들이 오히려 슬프게 들려서 저의 다른 곡들보다 유난히 우울하게 느껴진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우울함을 자극하려는 의도가 특별히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요.
사람마다 받아들여지는 모습이 참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분들의 다양한 반응이 궁금해지기도 해서 많이 들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
음악을 들으시고 어떤 감정이 느껴지셨든 간에 위로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말을 늘어 놓는 것보다 하나의 음악을 들려주는 게 더 효과적인 소통 수단일 때가 있죠. 그런 노래를 제작하게 되어 기쁩니다. 여러분에게 찾아올 수 많은 싫증의 순간에도 이 노래가 좋은 위로가 되길 바라요. 다음 주에 다시 만나겠습니다. '싫증' 들으시며 노래 만큼은 싫증나지 않는 한 주 보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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