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즐거운 설 명절 보내셨나요? 저는 이번 연휴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본가에 다녀오지 못했어요. 그 덕에 돈 주고 한다는 '어른들의 잔소리'도 안 들었네요 😁 

돈 주고 하는 잔소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른들의 말씀은 가끔은 듣기 싫은 잔소리지만, 이상하게 나이가 들어갈수록 어른들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때가 잦아지는 것 같아요. 인생 선배의 발자취를 따라간다는 막연한 든든함이랄까...?  

 그래서 연휴 동안 이 시대의 지성인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을 읽어보았는데요. 이 책은 김지수 기자가 죽음을 앞둔 이어령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나눈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단어, 한 문장이 주옥같아서 그 의미를 곱씹고 곱씹어야 했던 영양가 높은 책이었습니다. 그중에서 저에게 많은 울림을 준 문장들을 구독자님과 공유해보려 해요.

원문읽기

Who is 이어령?

- 1934년생이며, 국문학자, 소설가, 정치인이자 기호학자이다.

- 노태우 정부의 초대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다.

- 1982년 일본어로 집필한 책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에서 한국인이 쓴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 1988년의 서울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을 총괄 기획했다. "그" 굴렁쇠 소년 역시 그가 기획했다.

- 2006년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생하는 '디지로그'시대가 올것 임을 예측했다. (현대 먹방 콘텐츠의 유행이 대표적 '디지로그'이다.)

- 그의 딸은 변호사이자 목사인 이민아 목사였고, 2012년 암 투병 끝에 아버지 이어령보다 일찍 생을 마감했다. 

이어령의 말들

그 사람만의 생각, 그 사람만의 말은 그 사람만의 얼굴이고 지문이야.

 그는 자기 머리로 생각하면 겁날 게 없다고 했다. 그는 평생을 본인의 머리로 생각하며 살았기에 위대한 철학자도 무섭지 않다고 하였다. 나는 얼마나 내 머리로 생각하며 살고 있을까?

 최근 SNS를 멀리했음을 말한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 이유는 '내가 나로서 살고 있지 못함'에 있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일상에서 나로서 사고하는 시간이 없었으며, 나의 뇌와 시간은 SNS 속 타자에 의해 채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얼굴과 지문을 되찾고 싶었다. 구체적으로 이를 찾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이 뉴스레터였다. 

 이어령 작가는 글을 쓰는 행위를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을 인용해 설명했다. 인간은 세 가지 부류가 있다. 개미처럼 땅만 보고 달리는 부류. 거미처럼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사는 부류. 마지막으로 화분으로 꽃가루를 옮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꿀을 만드는 꿀벌 부류. 글을 쓰는 것은 이 중에서 꿀벌이라고 했다. '여기저기 비정형으로 날아다니며 매일매일 꿀을 따는 벌' 

 글을 쓴다는 것은 내 머릿속에 비정형으로 날아다니는 상념들을 정리하여 나의 얼굴로 만들고, 지문으로 만드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나로서 살고 싶은 욕구로 선택한 방법이 글쓰기였음이 참 잘한 선택이었다고. 훌륭한 현인에게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 참 좋았다.

우리가 감쪽같이 덮어둔 것. 그건 죽음이라네. 모두가 죽네. 나도 자네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그는 우리가 죽음을 덮어두고 멀리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진짜 살기 위해서는 죽음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와야 한다고 했다. 

 나 역시 서른이 된 지금까지 죽음에 대해 많은 거리를 두어왔다. 시체를 내 두 눈으로 직접 본 적도 없으며, 오히려 보면 안 되는 것이라 여겨왔다. 책 속에 인터뷰어를 맡은 김지수 기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가 인터뷰한 장의사는 숨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목격하거나 시신을 마주한 경험 없이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가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고는 있는 걸까?

 이어령 작가의 말처럼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죽음'을 멀게, 그리고 가벼이 여겼다. '죽겠다.' '죽인다.'와 같은 장난 섞인 말은 기본이며, 어린아이들은 야단치는 어른에게 '누가 낳아 달랬어?'와 같은 말을 하며 생명을 하찮게 취급한다. 그러나, 코로나가 발병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땠을까? 마스크 한 장 사기 위해서 몇십 분을 기다리지 않았는가? 잊고 있던 죽음 앞에서 우리는 퍼뜩 정신을 차린 것이다.

인도의 마니까르니까 화장터(Manikarnika ghat)

 얼마 전, 즐겨봤던 태계일주 2에서 인도의 마니까르니까 화장터를 방문한 기안 84의 모습이 그려졌다. 힌두교인의 최대 성지로 여겨지는 이 화장터는 사진처럼 갠지스강 강변에 그것도 사람들의 삶의 터전의 중심에 위치해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한강변에 화장터가 있는 셈이다. 한 줌의 재로 변해가는 수많은 시신 앞에서 기안 84는 삶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젊은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수많은 암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본 서울대병원 김범석 의사도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라는 책을 쓰며, 죽음 앞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고 했다. 죽음의 의미를 잊는다는 것. 어쩌면 삶의 의미를 잊는 것과 같을 수도 있겠다.

살아 있는 것은 물결을 타고 흘러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네.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죽은 물고기는 배 내밀고 떠밀려가지만 살아 있는 물고기는 작은 송사리도 위로 올라간다고 했다. 제자리에서 풀을 뜯어 먹는 아흔아홉 마리 양은 목자 뒤꽁무니나 졸졸 쫓는 양들이지만, 호기심 많은 길 잃은 양 한 마리는 낯선 꽃향기도 맡아가며 낯선 세상에 대면하는 놈이라고 말했다.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은 누구일까?

 세상의 중력에 순응하기는 쉽다. 물결에 쓸려가기는 쉽다. 그러나 중력을 거스르고,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어렵다.

 회사 생활 3년 차 즈음 되었을 때부터 번아웃이 찾아왔다. 회사 생활만 안정적으로 하는 것도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평생을 주어진 목표를 위해 살다가 취업하고 나니 더 이상 거슬러 오를 목표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생동감을 잃어버렸다. 똑같은 내일이 기대되지 않았다.

 거슬러 오르는 것은 힘든 일이다. 고통을 수반한다. 그러나 그 고통은 생동감을 선물해 준다. 내 인생을 살게 해준다. 최근 읽었던 '도파민네이션'의 저자도 자발적 고통을 통해 진정한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올해 나는 많은 도전을 할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잡아주는 기름진 양보다 가시밭길 헤매다 굶주림 속에 따먹은 썩은 아가베 열매가 더 달았어요.'라는 앙드레 지드의 단편 소설 속 탕자의 말처럼 세상의 이치와는 맞지 않는 도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도전과 고통이 내가 이 세상에 나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음을 보여줄 것이라 굳게 믿어본다.

걱정하지 마. 나 절대로 안 죽어

 김지수 기자가 이어령 작가와의 대화를 기록하는 작업을 끝낸 후, 이어령 작가에게 갑작스러운 전화 한 통을 받았다고 한다. 눈 감기 전에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오래전 숙명여대에서 신입생 강연을 한 그를 한 여학생이 애타게 주차장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그 여학생은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선생님, 돌아가시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 당황한 이어령은 '죽고 사는 문제를 어떻게 내 맘대로 하나?'라며 차갑게 말했다. 그리고 죽음을 앞둔 그는 그때를 후회한다며 그 여학생을 다시 만나 이야기해 주고 싶다고 했다. 

'걱정하지 마. 나 절대로 안 죽어' 

'걱정 마. 절대로 안 죽어'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말을 들은 아이처럼 여학생은 기뻐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죽음을 기억하라고 말하던 그는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 '절대로 안 죽어'라고 말했다. 88년 간의 삶 속에서 괴롭게 생각하고, 소년기의 고독과 지적 분투를 잊지 않았던 그의 관찰력으로 그는 지혜로운 생을 선택했다. 그 생의 끝에서 그의 육신은 죽을지언정 그의 지혜와 말은 절대 안 죽지 않을까.

 본인이 영화 감독이라면 엔드 마크 대신 장미 꽃 한 송이를 올려놓겠다던 그는 그답게 생을 마감했다.

 책을 읽는 내내 단어 하나하나에서 작가님의 지혜와 고민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습니다. 선물처럼 주어진 삶 속에서 죽는다는 사실을 끝까지 기억하며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가야 한다고... 

 이어령 작가님의 마지막 인사를 남기며 이번 레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