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조카에게 뇌 구조를 그려 달라고 했습니다.

구독자님 안녕하세요!

날이 조금 따뜻해지다, 다시 조금 쌀쌀해지는 걸 보니 떠나기 싫은 겨울의 시샘이 느껴집니다. 곧 봄이 오긴 오려나 봐요☘☘

 일주일만 지나면 봄의 시작 3월이 와요. 3월은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얼었던 땅이 녹고, 새싹이 자라나는 봄의 생동감이 우리에게도 생기와 설렘을 주는 것 같습니다. 학교의 시작이 1월이 아닌 3월인 이유도 그에 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제가 정말 사랑하는 조카의 유치원 졸업식이 있는 날이에요. 정 들었던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딩으로서 새출발을 앞둔 8살 조카를 축하해주기 위해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졸업식에 다녀오려 합니다.

 안았는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저렇게 작았던 아이가 이제 초등학교를 들어간다고 하니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어느새 커서 요즘 저한테 '결혼은 언제 하냐...' '자기도 동생 보고 싶다...'라면서 면박을 주는 어엿한 어린이가 되었는데요. 저는 늘 이 친구의 생각이 궁금했어요.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 어디까지 기억을 할까? 저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래서, 과학적인 방법을 토대로 이 친구의 생각을 연구해 보려 합니다.

여덟 살 뇌 구조 그려보기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파악하는 최고의 방법은?

 90년대생들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바로 '뇌 구조 그리기'다. (T.M.I 중학생 때 처음 사귄 여자친구가 나의 뇌 구조를 그려준 적이 있었다. 그때도 가장 큰 부분은 '축구'였다....;;)

 아주 재밌는 놀이를 할 거라며 조카를 꼬셔 '뇌 구조 그리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 해당 뇌 구조는 '완중일기'에 사용할 것을 창작자로부터 허락 받았습니다.

 어찌나 저리 많은 생각을 하며 사는지, 생각이 뇌 뿐만 아니라 상반신 전체를 덮쳤다. 다 그리고 나더니 본인만 한 게 억울한지, '삼촌도 해!'라고 해서 나도 억지로(?) 30살 완중일기 뇌 구조를 그려보았다.

 억지로 시작했는데 순도 100% 진심으로 내 뇌 구조를 그렸다. 그래서 구독자님에게 보여주진 못하겠다.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 것 같아서...)

 어찌 됐든 나의 여덟 살 조카는 100% 진심으로 열심히도 본인의 뇌 구조를 그려줬다. 생각나는 대로 대충 그린 것 같아도 '생각의 크기가 클 수록 그림 상에도 크게 그려줘야 해' 라는 뇌 구조 그리기 원칙을 잘 이해하고 준수하여 그렸다.

 그래서 이를 좀 더 구조화하여 카테고리별로 생각의 크기 가중치를 감안해 재구성해보았다. (생각의 크기에 따라 1~10 사이의 가중치 분배)

산리오 스티커가 갖고 싶다 !🤍

 여덟 살 조카가 뇌 구조에서 처음으로 그린 생각은 '산리오 스티커가 갖고 싶다!'였다. 크기도 제일 크다. (30살 완중일기도 소유욕이 제일 크다. 재테크 잘해서 차 바꾸고 싶다 !🤍)

 (T.M.I) 산리오가 뭐냐고? 2~30대에게는 헬로 키티로 알려져 있는 산리오 캐릭터즈는 일본 회사 'San Rio'에서 제작하고 있는 만화 캐릭터들이다. 현재, 티니핑(=파산핑)과 함께 캐릭터 산업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어린이의 소유욕

 무언가를 갖고 싶다고 생각하는 감정은 언제부터 드는 것일까?

 아이는 생후 5개월까지 엄마와 자신을 구별하지 못한다. 엄마와 내가 한 몸이라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5~12개월 후 엄마와 자신을 점차 구별해나가기 시작하고, 12개월이 지나 조금씩 걷기 시작하며 세상을 탐색하게 된다. 생후 18개월이 지나면서 자아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고,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며 소유욕을 느끼게 된다. 

 아이가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는 순간부터 소유욕을 느낀다는 것은 소유라는 개념이 어쩌면 '나를 나타내는 수단'이기 때문 아닐까. 조카는 산리오로 나는 멋진 차로 나를 나타내고 싶은 것이다.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간다는데, 생후 18개월 만에 소유욕이 생겨버리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소유는 뗄 수 없는 본능이다. 서른 살인 나에게도 무언갈 갖고 싶다는 소유욕은 나의 뇌 속 22%나 차지했다. 나이가 들면서 산 리오는 멋진 차로 티니핑은 멋진 시계로 바뀔 테지만, 소유하고 싶은 욕구는 아이나 어른이나 같은 것이다.

 우리는 가끔 아이들에게 '물건에 대한 집착이 심하다. 소유욕이 강하다.'는 오해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인간은 본능적으로 누구나 소유하고 싶어한다. 단지 어린 아이들에겐 아직 절제력이 부족한 것 아닐까. 조카에게 욕심쟁이라고 그만 놀려야겠다.

태은이랑 많이 놀고 싶다!ㅋㅋㅋㅋㅋ

 30살 완중일기의 [인간관계 + 가족]의 비중이 15%인 반면, 8살 조카의 [인간관계 + 가족]의 비중은 무려 34%다. 8살 조카 머릿속의 1/3이나 차지한다.

 이렇게 비교하니, 나는 관계는 생각도 안하는 나 밖에 모르는 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내가 서른 살 꿈 많은 싱글이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요즘 자기 계발에 많은 중점을 두고 있다. [커리어 + 자아]가 무려 54%다. ) 

어린이의 인간관계

 어찌 됐든, 8살 조카의 머릿속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1/3이나 차지한다는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 4세를 기점으로 아이는 가족과의 관계에서 점차 또래 친구 관계로 사회적 관계를 넓혀가기 시작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같은 곳에서 또래와의 단체 생활을 시작하게 되나, 친구 한 명을 지속적으로 사귀기는 어려워한다고 한다.

 만 8살 조카의 뇌 구조에도 '단짝이 생겨 너무 좋다'라는 내용이 있는 걸 보면 이 쯤 되어야 소위 단짝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 자아의 형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단짝을 만든다는 것은 나에게 단짝이라는 1명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나 역시도 그 친구에게 1명의 특별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본인을 개별적인 독립체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 8살 조카는 그 시기를 막 지난 것이 아닐까.

가족에서 친구로

 사람들과의 관계로 묶은 조카의 [인간관계 + 가족] 34%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인간관계(=친구)는 18%, 가족은 16%였다. 아마 초등학교를 가며 친구에 대한 생각이 더 커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 경험했다.)

 오래된 2013년 조사 자료이긴 하지만, 500명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어린이들은 비밀 이야기 상대를 부모에서 친구로 바꿔가는 경향을 보였다.

 '회사를 다니는 아빠를 낮에도 보고싶다.'는 8살 사랑둥이 조카가 사춘기가 들어 방문이 쿡 닫혀 있을 걸 생각하면 생각하면, 아빠도 아닌 삼촌이 벌써부터 맴이 찢어진다...(우리가 잘할게...)

 그런데 나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나의 고민 상대가 부모에서 친구로 바뀌어감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다. 그 때의 나는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혼나기 싫어서 ▲부끄러워서 ▲부모는 공감을 못 해줘서 등의 이유였던 것 같다.

 부모가 친구의 역할을 존중해주고, 아이의 시선에서 공감해 준다면 아이도 방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나는 삼촌이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여덟 살 뇌 구조를 보고 든 감상

 지금까지 내 멋대로 여덟 살 조카의 뇌 구조를 해석해보았다. 여덟 살 조카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은 서른 살 나의 생각과는 디테일하게는 차이가 있었지만, 크게 보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간 사는 게 다 똑같구나.

 그리고 한 가지 인상 깊었던 것은 조카가 모든 생각에 대해 설명해주었다는 것이다. 그 생각이 설령 본능에만 충실한 생각이라 할 지라도 본인만의 ‘생각의 근거‘가 존재했다. 놀라운 깨우침이었다. 여덟 살 조카도 자연인으로서 충분히 사고할 수 있구나!

 '어린이'라는 말이 세상에 나온 지 이제 막 100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그 전에는 어린이라는 인격체를 별도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훌륭한 어른들이 있었기에 100년 간 어린이에 대한 이해와 존중은 많이 발전해왔다. 

 지금의 나는 어른이다.('어른이'다?) 나는 어른으로서 미래의 우리를 책임질 어린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존중하고 있을까?  

*여유가 된다면, 위 강연을 꼭 시청해보길 추천한다. (사진 클릭 시 유튜브 링크로 이동)

우리 생활 속에 '노키즈존' 이슈가 나온지는 꽤 오래됐다. '노키즈존'의 피해자는 누구일까?

 부끄럽지만, 나는 아이들 때문에 이용하지 못하는 부모만 떠올렸다. 저 공지를 보고 발걸음을 돌려야 할 또 다른 존재 ‘키즈’를 떠올리지 못했다. '노키즈존' 찬성/반대 여부를 떠나서 당사자인 아이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있었는지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내려다보는 것은 든든한 보호의 울타리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때때로 너무 높아 어린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수도 있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쓴 김소영 작가는 말했다. '인류의 역사는 어린이의 역사'라고. 앞으로의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 어린이라면 우리는 좀 더 쉽게 우리의 허리와 무릎을 내어 눈높이를 맞춰줄 수 있지 않을까.

2월의 마지막 주인 다음 주는 쉬어갑니다 !

따뜻해진 3월의 봄과 함께 돌아올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