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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는 밥을 먹고 산책하기도 했는데, 이제는 더워져서 나가기 무섭더라고요! 구독자님도 찾아올 더위에 지치지 않도록 건강 관리 잘해봅시다!🦾
오늘은 최근에 읽었던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의 내용과 더불어 미술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나누려고 해요. 사실 미술에 관심도 많지 않고, 여행 가면 유명한 미술관 둘러보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문가만 미술을 즐기라는 법은 없잖아요? 그래서 지극히 일반인의 시선에서 미술을 바라보고 구독자님과 생각을 나눠보려 합니다😇
잘나가던 대기업 직원, 미술관 경비원이 되다.
저자인 패트릭 브링리는 'Newyorker'라는 미국의 유명 잡지 회사에 입사한 촉망받는 젊은이었다. 그러나, 그의 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스물 다섯. 그의 삶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예정대로라면 그의 결혼식이 열렸어야 할 날, 그는 형의 장례식을 치렀고, 완전한 절망에 빠졌다. 그는 자신이 숨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 숨기로 했다. 바로 어릴 적 즐겨가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었다.
미국에서도 잘나가는 청년이 미술관의 경비원이 된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창창한 청년이 잘 다니던 현대자동차를 퇴사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의 경비원이 되는 일과 흡사하다. (라임을 노린 것은 아니다...)
그는 왜 이 길을 택했을까?
사랑하는 이를 잃은 그는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매달려야 하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온종일 아름답기만 한 세상인 미술관은 그가 숨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침묵 속에서 서성거리고, 교감하고, 감정을 느끼는 그 곳. 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되기로 했다.
그를 위로해준 9천 명의 주민들
미술관 문을 누구보다 먼저 빨리 열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그에게는 8,496명의 주민이 함께했다고 한다. 바로 메트(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작품 속에 살고 있는 인물들이다. (경비원으로 10년 간 일하며 작품의 배경에 있는 인물까지 직접 하나하나 다 세어 8,496명의 호구조사를 완성했다...)
그의 친구들은 보티첼리, 렘브란트, 1230년에 태어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등이다.
훌륭한 주민들에게 그는 참 많은 위로를 받았다. 벨라스케스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는 저자가 생각하는 메트에서 가장 슬픈 그림이다. 그는 이 그림이 '고통' 그 자체를 그렸다는 점에서 예술의 진수라 말한다.
나 역시 슬픔은 슬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직면할 때,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미술은 뻔한 사실을 우리에게 그대로 되새기게 하는 역할을 한다. 회피하는 것이 아닌 현실을 직면하고, 그 고통을 감내한 끝에야 깊은 공감과 위로를 느끼도록 한다.
저자의 어머니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만난 '피에타' 작품을 보고 가슴을 저미는 고통을 느끼며 통곡했다고 한다. 예수님을 떠나 보낸 고통과 어미의 사랑이 담긴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보며, 아들을 잃은 현실을 직면하고 거대한 바위 같은 고통을 받아들인 것이다.
희노애락이 담긴 9천 명 주민의 모습을 보며 그는 냉혹하고 직접적인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얻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깊은 위로를 얻었다.
미술관을 즐기는 방법
10년 간 메트에서 일한 그는 메트에 오는 관람객들에게 아래와 같은 조언을 하고 싶다고 했다.
- 가능하면 미술관이 조용한 아침에 오세요.
- 눈을 크게 뜨고 모든 것을 감각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허락하세요.
- 예술품의 제작자, 문화, 의도된 의미에 관해 알아낼 수 있는 건 모두 알아내세요.
- 자신의 의견을 내세워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주저하지 마세요.
사실 미술은 굉장히 고상한 취미로 여겨지고, 엄청난 교양과 지식이 있어야 하는 영역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미술관에 간다고 하면 괜히 폼 잡는 것 같고 젠체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나도 성인이 되기까지 국내에서 미술관에 가본 경험이 없었고, 미술을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몰랐다. 그러다 처음 가 본 미술관이 바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겨울궁전이라고 불리는 '에르미타쥐 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이지만 미술 작품 컬렉션이 많아서 미술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세계 3대 박물관이라고도 불리는 곳에 가게 됐으니 미술 초짜인 나에겐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오디오 가이드'였다. 미술 교양과 지식이 없는 나에겐 천군만마 같았으나 내게는 이 오디오 가이드를 활용할 역량도 없었다.
처음 가는 미술관이었으니 미켈란젤로니 렘브란트니 유명한 예술가의 작품은 죄다 보고 싶었고, 그야말로 인증샷 관람을 하다 보니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와닿거나 기억에 남는 작품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렇게 지쳐가던 중, '아 미술은 이렇게 즐기는거구나'라는 생각이 든 순간이 찾아왔다. 너무 많은 인파에 지쳐서 인적이 드문 한 전시관에 찾아갔는데 한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삐쩍 마른 중년 남성을 어린 여성이 안고 밥을 먹이는 그림이었다. 남성의 표정은 매우 지쳐 보였고, 어린 여성의 표정은 안쓰러움과 동시에 사랑이 느껴졌다. 부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서둘러 오디오 가이드를 켰다. 나의 해석이 맞는 순간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중죄를 저지른 아비에게 굶겨 죽이는 형벌이 내려졌는데, 딸이 면회를 갈 때마다 아버지에게 밥을 먹였고, 이를 통해 아버지가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내가 작품명과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그 작품의 작가가 위대한 거장이 아니라는 법은 없지만, 에르미타쥐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의 작품도,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아'도 아닌 그 그림이 나에게 가장 큰 영감을 주었다는 것은 꽤나 흥미로웠다.
당시에 내가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아서였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유를 알 수 없게 20분 넘게 그 그림을 사유하고, 탐닉했던 기억이 난다. 이것이 내가 미술을 즐긴 첫 번째 경험이다.
그 경험을 토대로 나름 미술에 재미를 붙인 것 같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 바르셀로나 피카소 미술관 등 여행지에 유명한 미술관이 있다면 들러보려 했고, 전문가와 함께하는 가이드 투어를 꼭 신청했다.
저자가 말하는 '예술품의 제작자, 문화, 의도된 의미에 관해 알아낼 수 있는 건 모두 알아내세요.'의 재미를 에르미타쥐에서 느낀 덕분이다.
그림의 의도된 의미를 알아내는 것은 감상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사실, 글이나 영화, 음악 등 모든 예술의 배경을 알아내는 것은 모두 그 예술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주지만, 그림에서 그 효과가 더욱 도드라지는 이유가 있다.
간단한 이유이지만 그림은 멈춰있기 때문이다. 글, 영화, 음악은 '기-승-전-결'이라는 것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비교적 쉬워 공감하기 쉽다. 그러나, 그림은 멈춰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숨겨진 '기-승-전-결'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하고, 가이드가 필요하다. 어쩌면 그래서 숨겨진 의도를 파악했을 때 찾아오는 감동이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보물찾기처럼.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166p,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이라는 말. 그리고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이란 말. 이 말의 진수를 느낀 순간이 있다. 바로 바티칸 시국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다.
시스티나 성당에는 라파엘로, 보티첼리 등 르네상스 시대의 저명한 예술가들이 그린 프레스코(벽화) 작품이 많은데, 그 중 압권은 역시나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다.
'천장화'는 말 그대로 천장에 그려진 그림인데, 높이가 무려 20.7m(아파트 4-5층 높이)이며, 크기는 40m X 13m 라고 한다. 이 곳에 입장하면 웅장한 그 규모에 압도되고 만다. (아래 링크 클릭 시 VR로 천장화를 둘러볼 수 있다.)
엄청난 스케일에 압도된 것은 물론이었지만, 이 '천장화'가 내 머릿 속에 오랫동안 남는 이유가 따로 있다.
이 '천장화'는 미켈란젤로에게 엄청난 도전이었다. 앞서 말했던 아파트 4-5층 높이에서 4년 간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해보라. 그의 목과 허리는 늘 젖혀져 있었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우울하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 속에서도 미켈란젤로의 예술가 정신은 빛났다. '천장화'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무렵, '천장화'의 모서리 부분을 불편한 자세로 열심히 작업하고 있던 미켈란젤로에게 친구가 말했다.
'이보게 자네, 잘 보이는 구석까지 그렇게 열심히 그릴 필요가 있나? 그렇게 완벽하게 그려봤자 누가 알겠나?'
그러자 미켈란젤로가 대답했다.
'내가 안다네'
'미켈란젤로의 동기'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일화는 위대한 그림에 '삶'이라는 한 글자를 더해주었다. 함께한 가이드가 이 일화를 말해주었고, 정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일이며 그 일에 내 신념이 있기에 끝까지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그런 순간은 있었다. 내가 사랑하고, 잘하고 싶기에 오로지 나의 동기를 연료 삼아 매진하고 몰두했던 순간들.
미켈란젤로라는 위인에 빗댈 나는 아니고, 그의 위대한 그림에 빗댈 실력도 없지만, 모든 사람의 삶이 닮아있듯, 나에게도 그를 닮을 10%의 여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위대한 그림을 통해서 말이다. 그래서 미술과 예술이 흥미롭다.
이 미켈란젤로의 동기를 알게 된 것이 6년 전인데, 그 후로도 여러 일을 하면서 '천장화'와 미켈란젤로의 동기를 떠올린 순간은 많았다. 그리고 그 순간마다 내 삶과 내 일에 연료가 되어주었다.
이것이 사람들이 그림 앞을 몇 십분씩 서성이고, 미술을 공부하는 이유가 아닐까?
저자인 패트릭 브링리는 10년간의 미술관 경비원 생활을 통해 명상과 같은 고요함을 즐겼고,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으로부터 안온함을 느꼈다.
삶을 채울 연료를 가득 안고 그는 여행 가이드라는 새로운 도전을 진행하고 있다.
무너질 것처럼 좌절스러운 삶의 위기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숨는다는 발상. 참 신박하고도 위험하다. 그 발칙한 행동은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되짚어보라는 조언처럼 들리기도 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 중심의 시대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예술이란 가명을 쓰고 있는 삶에 존재하는 것 같다. 예술을 놓지 않고 살아야 하는 이유다.
구독자님에게 미술과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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