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는 이야기

2024.06.09 | 조회 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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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의 주석

말보다 글이 유창한 인간의 주절주절

 

출근하자마자 칠판에 ‘책상 서랍과 사물함 정리하기’라고 썼다. 하나 둘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칠판을 가리키며 “오늘은 부모님이 오시는 날이죠?” 했다. 짧은 협박인 셈. 학부모 공개수업이 예정된 날이었기에 아이들은 분주해졌다. 꾸깃 해진 학습지를 펴서 파일에 넣고, 흐트러진 교과서를 가지런히 세우기 시작했다. 막상 부모님이 오시자 아이들은 들뜬 기색으로 바뀌었다. 여자아이들은 부모님께 달려가 안기고, 남자아이들은 보란 듯이 사물함 위에 올라가 날뛰었다. 특별한 날이면 여학생들은 더 잘하려고 애쓰고, 남학생들은 더 망가진다. 아들 녀석들이 그렇다.

 

수업을 보기 위해 연차를 내고 온 학부모도 있었다. ‘자식이 학교에서 손들고 발표하는 한 장면이 얼마나 귀할까? 옆 짝꿍과 토의하여 만든 결과물이 얼마나 빛나 보일까?’ 그런 생각으로 모든 학생에게 발표할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수업을 정돈했지만, 선생님의 바람일 뿐이었다. 공개수업이면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망설이고, 쭈뼛대고, 주눅이 들기 마련이니까. 학부모들이 돌아가고 난 뒤 발표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아쉽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대뜸 한 학생이 이렇게 반문했다. “엄마 앞에서 발표하는 거 엄청 부끄러워요. 선생님 엄마가 보는데 수업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렇구나. 엄마 앞에서 수업이라니. 나도 무척 부끄러울 것 같았다.

 

정식으로 발령이 나기 전, 한 달짜리 6학년 담임을 했던 때였다. 시간강사임에도 남들 퇴근하는 시간까지 꿋꿋하게 자리를 지킬 만큼 사는 요령이 없던 내게 이것저것 알려주시던 남자 선생님이 있었다. 보통 체격에 보통 얼굴, 약간 구부정한 자세였다. 수업 후에는 전체 소등을 하고 재즈를 정말 낮은 볼륨으로 틀고 있었다. 말소리는 작았고, 웃음소리는 더 작았다. 선생님들끼리 모이면 꼭 해야 할 말만 하고, 주로 듣고 있었다. 다만 아이들에게는 엄격했고, 그 선생님의 고함 소리가 복도를 타고 와 우리 반 아이들까지 긴장하게 만들었다.

 

10여 년이 지난 오늘, 거울 앞에 그 선생님이 서있다. 흔한 인상, 소리와 빛에 민감해진 성격 그리고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까지 닮았다. 아이들에게 엄해진 결정적 시기가 있었다. 친구들에게 아이들을 ‘직장동료’로 명명하기 시작했던 즈음부터였다. “요새 직장 동료들이 일 끝나고 나만 빼고 놀아.”, “너네 직장 동료들도 자주 싸워?”같은 농담에서 시작됐던 것 같다. 돈벌이로 여기자 가르치는 판 자체가 바뀌었다. ‘마감 기한을 지키지 않는, 자주 거짓말하고 남을 따돌리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료’와 같은 공간에 있기 힘들어졌다. 떠나기엔 너무 늦었고, 바꾸기엔 힘이 없는 내가 현실을 비약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한 학생이 쉬는 시간에 노점을 벌여 학급이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었다. 문방구에서 장난감 싸게 떼와 친구들에게 비싸게 팔았다. 아이들은 비싸다는 것은 알았지만 예쁜 봉투에 담기니 혹했다고 했다. ‘어린놈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학교에서 장사를 하고 있었단 말이야?’하는 생각으로 상담을 했다. 좋은 말이 나올 리 만무했다. 가뜩이나 무인 상점에서 엄마 카드로 친구들에게 쏘는 문화 때문에 학부모들 민원이 빗발치는 시기인데다 경제 교육은 조금 뒤로 미뤄놔도 된다는 생각도 한 몫 했다.

 

“경제 수업 연구한 선생님이 담임이었으면 걔는 오히려 칭찬받지 않았을까?” 내 이야기를 찬찬히 듣던 친구의 말이 그럴싸하게 들렸다. 1인 1역을 직업으로 만들어 월급을 받도록 한다는 선생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주식 교육을 본격적으로 시킨다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대뜸 떠올랐다. 내게 너무 먼 이야기긴 했다. 공을 두고 경쟁하기가 싫어서 구기 종목 시간마다 겉돌았던 내가 딱 한 번 경기 판도를 바꾼 적이 있었다. 딱 5분간의 강렬한 집중. 그 집중을 깬 것은 체육 선생님의 한 마디였다. “그래! 할 줄 알면서 왜 그랬어 지금껏.”

 

아이들을 보내고 사물함 위를 손으로 슥 쓸어봤다. 먼지 자국이 선명했다. 솔로 쓸고 물걸레로 깨끗하게 닦았다. 캐비닛에 들어있던 수행평가지를 과목별로 분류하고, 책상 위 어지러운 펜들을 정리했다. 마치 엄마한테 책상 검사 맡는 사람처럼. 엄마에게 혼이 날까 전전긍긍했던 오늘 아침 우리 반 아이들처럼. 부모님은 나에게 딱 하나만을 바라셨다. “사랑해라.” 딱 네 글자. 믿지 말고 위하지도 말고, 그저 사랑하라 하셨다. 그것이 부끄러운 이유였을 것이다. 교실 안에 그 누구도 사랑하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시 사랑하기 위해 꼭 필요한 질문 두 가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답해본다.

 

  • 정의나 정직 같은 가치를 말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있는가? 내가 하는 일, 선생님.

 

  • 선생님이었던 적이 있는가? 바로 지금.

 

 

글을 쓰며 들은 노래 / AKMU - ‘케익의 평화 (Peace of C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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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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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sistance

    0
    3 months 전

    사랑하세요.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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