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let point

2023.07.30 | 조회 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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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의 주석

말보다 글이 유창한 인간의 주절주절

 

  •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

 

베일에 가려져 이미 흐려진 일들이 있는 반면, 같은 자리에서 반짝이는 일들도 헤일 수 없이 많다. 십여 년 전쯤 40명에 육박하는 대가족이 총집합한 날이었다. 나는 같은 항렬 중 가장 나이가 많았기에, 그냥 ‘해도’, 뭐든 ‘해낸’ 것으로 역시 '해낼' 것으로 여겨지곤 했다. 그날은 입대 축하 파티였기에, 민방위도 끝난 아저씨들이 달려들어 경례부터 보직까지 세세하게 알려주셨다. (그들은 육군, 나는 공군이었기에 실로 쓸데 없는..크흠..)

약주 기운에 아저씨들이 곯아떨어지고, 동생들과 막계천을 걷다가 아무 평상에나 벌러덩 누웠다. (발 아래엔 7월의 흥겨운 물소리 샤-샤-샤-) 명절에 말쑥한 인사 정도 주고받고 각자 방으로 흩어지는 터라 대화 소재는 금세 떨어졌다. 꺼내지 말아야 할 진짜 고민을 꺼내고 만 이유는 어색한 기운 탓이리라. “너희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피카츄 돈가스 하나도 아껴서 먹는 애들한테 사랑이 뭐냐고 물어보다니…왜 그랬을까…)

자답은 이랬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보여주고 싶은 것, 그게 사랑이야.” 당시 나는 첫사랑 중이었다. 누군가에게 온 마음을 준다는 일이, 내 시간과 노력을 모두 한 사람에게 쏟아부어도 좋다는 확신을 생애 처음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다른 말로 설탕으로 절여지던 중) 아마 모든 가족들 앞에서 ‘내 사람입니다.’하고 소개하고 싶었을 것이다. (스무 세 살의 패기가 참 부러운 마음)

 

  • 소중한 사람을 위한 감내

 

지난 주말 사랑하는 때로는 존경하는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했다. 전문성을 가진 직업인, 사려 깊은 친구, 살가운 자식으로서 살아가기 위해 지난 십 년동안 서로에게 피드백을 아끼지 않았던 우리였다. 그날은 9월의 신부가 되는 친구에게 축하를 전하고, 벌써 딸둘맘이 된 친구의 육아 이야기를 재미나게 들었다. 친구들은 반려인, 엄마, 시누이 혹은 올케라는 역할을 맡았고, 역시나 열심히 수행 중이었다.

‘역할의 심상’이랄까? 내가 경험해 본 자식이나 친구 같은 역할이야 머릿속에서 쉬이 그려진다. 하지만 일인분의 삶을 꾸리는 중인 내게 남편, 사위, 장인의 이미지는 주말 연속극의 한 장면뿐일 테다. 친구가 전해주는 상견례 이야기를 들으며, (당장이라도 숨고 싶지만) 어색한 미소를 띠며 아무 말이나 주절거리는 내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소개하는 일, 소개받는 일, 보통 일이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광화문 거리를 걸으며 친구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행동하고 현명하게 말하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일 한정 대답이겠지만) 누군가 내게 사랑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소중한 사람을 위해 기꺼이 감내해나가는 일”이라 대답했겠다.

 

*어느 때보다 ‘사랑’이 필요한 요즘입니다. 돌아가신 분들께 그리고 우리에게.

 

**7월엔 ‘사랑’을 주제로 네 편의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모두 발행하고 보니 지난 사랑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후련한 마음만 남았네요. 이런 이유로 글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거겠죠? 비우기 위해 채우고 돌아오겠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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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며 들은 노래 / Feng Suave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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