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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29 | 조회 2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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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의 주석

말보다 글이 유창한 인간의 주절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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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얼 하며 연말을 보내고 계시나요? 가족과 식사를 하고, 연인과 여행을 떠나고,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고 계시겠지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으로 요약해 볼 수 있겠네요. 연말, 그 자리에 빠지지 않는 것이 ‘복기’와 ‘다짐’입니다. 우리는 지나간 한해를 돌아보고, 취할 것과 뱉어낼 것을 고르는 일에 신중을 기하죠.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대대로 내려온 전통이라도 된 양 말입니다.

 

저는 꽤나 ‘반복’을 좋아합니다. 계절마다 할 일 몇 가지를 정해놓고, 수년째 되풀이하고 있죠. 겨울이 찾아오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주최하는 <올해의 작가상>을 관람합니다. 어쩌다 보니 올해는 두 번이나 다녀왔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작품이 여럿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차를 내면서까지 재관람을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요. 막상 가선 ‘참 잘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올해의 작가상>은 2012년 시작했고, 저의 <올해의 작가상>은 2018년 시작되었습니다. 시리즈의 절반을 본 셈입니다. 매년 관람하는 이유는 바로 ‘키워드’에 있습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작가들이 던지는 키워드를 손에 쥐어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들과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손쉽게 생각할 거리를 얻을 수 있으니 참 마음이 후한 전시입니다.

 

얼마 전 다녀온 두 번째 관람에서는 권병준 작가의 작품이 있는 4전시실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습니다. 로봇의 움직임에 따라 눈동자가 바삐 움직였고, 로봇을 비추는 빛과 그림자의 춤을 오래 관찰했습니다. 아마 드라마 한 편은 볼 수 있을 시간이었을 겁니다. 앉았다가 서고, 움직이다가 이내 멈추곤 하는 로봇은 요즘 말로 ‘뚝딱’거리고 있었습니다.

 

‘뚝딱’거리는 걸 1시간이나 본 이유가 궁금하신가요? 일종의 안도일까요, 가슴을 쓸어내리느라 그랬습니다. 컵라면에 끓는 물을 붓고, “시리야. 3분 타이머.”라고 하면, 시리는 “3분, 시작합니다.”라고 대답하죠. 그럼 저는 언제나 “고마워.”라고 대답합니다. 제발 시리가 “별말씀을요.”라고 대답하지 않길 바라면서 말이죠. 로봇의 임무는 타이머 맞추기에서 끝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늘.

 

관람 중 로봇이 갑자기 멈추는 해프닝도 벌어졌습니다. 몇 명의 스태프들이 다급함을 감추지 못하고 무대로 뛰어들었고, 그들은 로봇의 팔을 이리저리 꺾고, 레일 위로 로봇을 굴리기 시작했습니다. 상승과 하강 운동만 반복하는 지능이 낮은 로봇이 고장까지 나니 흐뭇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관객의 입장에선 하나의 고장 퍼포먼스를 본 것과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로봇의 순기능까지 배척하는 모진 사람은 아닙니다. 도쿄에 위치한 카페 ‘DAWN’은 로봇을 종업원으로 고용하고 있습니다. 로봇은 직접 출근할 수가 없는 장애인이 맡아 원격으로 조종합니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통해 손님과 이야기하고, 카메라와 화면을 통해 눈을 맞춥니다. 로봇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럼 무엇이 걱정이길래 로봇을 혐오하는 중이냐고 물으시겠죠? 저의 걱정은 ‘사람의 성질’이라 하겠습니다. 길게 풀어보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이랄까요. 그것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칼부림 예고에 덜덜 떨었던 사건, 중학생에게 마약을 탄 음료를 건넨 사건, 모두 올해였죠. 공습과 전쟁으로 얼룩진 세계의 일화도 방금 일어난 역사로 기록 중이고요.

 

상상 속 재앙은 늘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올해도 우리는 어김없이 여러 슬픔을 목격했고요. 요새 로봇은 스스로 학습한다고 하죠? 생활 깊숙이 파고든 로봇이 어디까지 배울지 무서울 따름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사람 된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저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성질’ 그대로 살자.

 

작은 전시장을 맴도는 동안 지난 일 년을 여행하듯 복기했습니다. 그리고 다짐을 마음 곳곳에 붙여두었습니다. 마치 부적처럼 말이죠. 그곳에 가야만 했던 분명한 이유를 느끼게 된 셈이죠. 여러분은 2023년을 어떻게 복기하고, 어떤 다짐으로 2024년을 맞이할 예정이신가요? 여러분의 발이 뿌리내린 곳, 그곳에 서있는 이유가 보다 선명해지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2023년 12월 28일

발행인 정주석 드림.

 


 

*저는 슬플 때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주석의 주석> 11월 호의 마지막 글을 오늘에서야 발송하게 된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슬픈 것은 아닙니다.

**내년에는 슬픔을 잊기 위해 글을 쓰기보단 기쁨을 나누기 위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건강하세요!

 

 

글을 쓰며 들은 노래 / THAMA -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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